풍화(風化)가 되고 있거나, 좀비가 되고 있거나
한 시간 반쯤 운동을 하고 들어와 혼자 늦은 점심을 먹고 책상 앞에 앉는다. 보람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하루를 아무 의미 없이 보냈다는 자괴감은 느끼지 않을 정도의 위안거리를 만들어야 한다. 금세 졸음이 쓰나미처럼 덮쳐온다. 운동이 과했던 탓일 수도 있고, 식곤증 때문일 수도 있다. 어떻게든 참고 버텨볼까 하다가 이내 백기를 든다. 화급을 다투는 일도 아닌데 잠깐 눈 좀 붙이고서 맑은 정신에 하면 되지.......
잠깐만 눈을 붙여야지 한 것이 어느새 해가 뉘엿하다. 2시간 가까이 자버렸다. 다소 과한 낮잠이었지만 그건 운동을 열심히 했다는 증표고, 게다가 저녁에는 달리 약속이 있는 것도 아니니 저녁밥 먹고 정신 바짝 차리면 낮잠 잔 것을 벌충하고도 남겠지. 꿀잠 덕분인지 컨디션이 그만이다. 다시 책상 앞에 앉아 컴퓨터를 켠다. 절반쯤 써놓고는 며칠째 한 줄도 더하지 못하고 있는 글을 어떻게든 마무리해 보려 하지만, 자판 위의 손가락들은 얼어붙기라도 한 듯 좀체 움직일 줄을 모른다.
잠시 머리를 식히다 보면 뭔가 실마리가 잡히지 않을까 싶어 알아도 그만 몰라도 그만인 뉴스 기사들을 훑는다. 한참이 소리 없는 바람처럼 휙 지나간다. 그새 저녁 시간이다. 배가 고픈 것은 아니지만, 포만감은 행복의 다른 이름. 뱃속 가득 행복을 채우고, 위장으로 몰렸던 피가 제자리로 되돌아갈 때를 기다리며 소파에 앉아 리모컨을 집어 든다. 이리저리 채널을 돌려봐도 볼만한 것이 마뜩잖다. 넷플릭스에서 2시간짜리 영화 한 편을 고르고, 모로 눕는다. 계획과 다르지만 머리를 비우고, 메말라가는 감정에 물을 주고, 복잡한 인간사를 이해하는데 영화만큼 좋은 것도 드물지....... 그렇게 포만감과 예술로 충만한 밤이 깊어간다.
물론 매일 그런 것은 아니지만, 점차 이런 날들이 늘어가고 있다. 때때로 ‘이게 아닌데......’ 하며 저항해보기도 한다. 하지만 시도 때도 없이 들려오는 어떤 속삭임에 쉬 무너져 버리곤 한다. “퇴직자가 너무 빡빡하게 사는 것도 일종의 강박이야”
이상하게도 딱히 하는 일도 없으면서 시간이 점점 부족해져 가고 있다. 하루 열몇 시간씩 바깥 생활을 하면서도 빼놓지 않고 해오던 것들 - 잠깐의 명상, 몇 장의 독서, 짧은 스트레칭 등 - 조차 미루거나 포기하는 경우가 드물지 정도로 시간이 부족해졌다. 그 많은 시간이 어떻게 부족하게 된 것일까? 바빴던 시절을 떠올려본다. 그리고 더없이 여유로운 지금의 일상을 곱씹어본다. 무위(無爲)에 내어준 시간만큼 시간이 부족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시간이 부족하게 만드는 것, 인생을 짧게 만드는 것은 무엇으로도 채우지 않고 흘려보내는 텅 빈 시간임을 알게 되었다.
당장이라도 명문(名文) 몇 편쯤은 쓸 수 있을 것 같던 의욕과 열망도 6개월 남짓 지나면서 예봉이 무뎌져 버렸다. 그나마 뭔가 하는 것처럼 보이게 해 주었던 맨발 걷기 동호회 활동도 기온이 내려가고 마른 잎새들이 꽁꽁 언 황톳길을 채워가면서 어떻게든 해야 할 이유보다는 미뤄야 하는 이유들을 찾기에 급급해졌다. 나 자신에게 관대 해지는 것에 비례해 삶은 참 단조로워지고, 삶이 단조로워지는 만큼 나의 시간을 갉아먹는 무위의 시간은 늘어만 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풍상에 깎여 희미한 윤곽뿐인 돌부처처럼 부지불식간 무위의 시간들에 깎이어 눈도 코도 입도 흐릿해져 가고 있다.
‘좀비’. 후배의 전화를 끊고 나서 한참이나 ‘좀비’라는 낱말에 사로잡혔다. ‘무얼 하면서 지내고 있냐’는 물음에 차마 아무것도 하는 일 없이 놀고 있다는 말을 하는 게 싫어서 글도 끄적이고 책도 읽고 운동도 하고 맨발 걷기 동호회도 운영하면서 잘 지내고 있고, 새 학기 출강을 목표로 전문경력인사 초빙활용지원사업에도 공모했다고 있는 것 없는 것 다 끄집어내 대답을 했다. "모 선배님과 통화를 했는데, 좀비처럼 지내고 있다고 하시던데 선배님은 잘 지내고 계시네요"라며 인사치레 말이 따라왔다.
좀비라, 살아있는 시체라....... 열정도 의지도 희미해진 데다 자신에게 관대해질 대로 관대해진 게으른 퇴직자를 정의하면 딱 ‘살아있는 시체’ 일 것이다. 죽었지만 죽은 것이 아니고, 살아있지만 살아있는 것 또한 아니고, 그런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살아있는 생명을 물어뜯어야 하는 비생비사(非生非死)의 존재.
누구인지 모르지만, 후배에게 자신이 좀비처럼 살고 있다고 말한 퇴직 선배의 심정을 헤아릴 수 있을 것 같다. 서글프지만 그의 말은 자조(自嘲)가 아니라 진심이었을 것이다. 자신에 대한 무한한 관대함, 이성보다는 감정과 본능에 익숙해지는 몸과 마음, 두부조차 썰지 못할 정도로 무뎌진 의지의 칼날, 꽁꽁 얼어버린 열정, 그리고 텅텅 비어 가는 시간의 창고........
나는 요즈음 풍화가 되어가고 있거나, 좀비가 되어가고 있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