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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윤구 Jan 03. 2023

두리 미역 사더가 국 끌려 먹어

오늘은 어머니의 81번째 생신입니다. 지난 주말에 미리 부모님께 다녀왔습니다. 얼마쯤 넣은 얄팍한 봉투를 선물 대신으로 드리고 몇 끼 식사를 같이하고 왔습니다. 돌이켜보니 30년 넘게 제날짜에 생신을 모신 적이 없었네요. 심지어 회갑과 칠순, 작년 팔순까지도 나를 비롯한 자식들 편의대로 해 버렸습니다.      


사회생활 하려면 어쩔 수 없다는 핑계로 융통성 한 번 부려보지 못한 못남을 남한테 폐가 되는 일, 아쉬운 소리 못 하시는 두 분의 성정을 닮은 탓으로 돌려봅니다.      


이번에도 예외 없이 가으내 편치 못 한 다리로 뒷산을 누비며 주워두었던 도토리로 만드신 묵이며 콩과 시래기, 이틀을 고아 얼려놓았다는 사골국 등등 이것저것 바리바리 챙겨주셨습니다.      


집에 도착해서 짐을 풀던 아내가 “이건 뭐지? 아휴, 어느 틈에 넣어놓으셨데? 드린 것 그대로 다시 넣으셨네” 말을 합니다. 드렸던 봉투 그대로 짐 속에 찔러 넣어두신 모양입니다.      


하얀 편지봉투 위에는 ‘두리 미역 사더가 국 끌려 먹어’, 꾹꾹 눌러쓴 열두 자가 적혀 있었습니다. 당신의 생일 뒤로 이어지는 아들 내외의 생일이 걸려 국거리라도 사라고 되돌려 주신 모양인데, 이런 적이 없었던 터라 퇴직 후 일없이 소일하고 있는 아들이 드린 돈을 차마 받기가 편치 않으셨던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봉투 속 돈은 아내에게 주고 어머니의 글씨가 쓰여있는 봉투를 챙겼습니다. 어머니의 글씨는 한 획 한 획이 날카로운 듯 부드럽습니다. 비록 세월이 흐르면서 힘은 빠졌어도 30여 년간 내가 마음속에 깊이 간직하고 있는 ‘그 글’의 필적과 별반 달라진 것은 없습니다. 구겨진 부분을 펴고 사진을 찍었습니다.     


내 마음속에는 오래 간직하고 싶은 글이 한 편 있습니다. 아무리 애를 써도 온전히 기억나는 것은 채 한 줄도 못 되지만, 그래서 속이 상하지만, 어렴풋이 남은 기억만이라도 붙들어두고 싶은 글입니다.     

   

어릴 적 집안 사정은 늘 궁박했습니다. 특히 대학에 들어갈 무렵에는 더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학력고사를 목전에 둔 아들에게 “꼭 시험을 봐야겠냐?”라고 물으셨을 정도였으니까요. 그런 상황에서 어찌어찌 학력고사를 보았고, 장학금 덕에 진학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 글’, 어머니의 글을 보게 된 것은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대략 7, 8년쯤 지난 무렵입니다. 시골집에 내려간 차에 오래 묵은 전화번호부 등을 정리하다가 다이어리 한 권을 집어 들었습니다. 누렇게 바랜 것이 10년도 더 되었을 법한 다이어리였는데, 맨 뒷장쯤에 ‘그 글’이 쓰여 있었습니다.     


1985년 겨울, 아들이 대학에 합격한 날 밤 누구한테 말하지도, 드러내지도 못한 벅찬 감정을 적은 어머니의 글이었습니다.      


제대로 뒷바라지를 못 해준 데 대한 미안함과 그런 가운데서도 당당히 대학에 합격한 아들에 대한 자랑스러움이 가득 찬 글이었습니다. 자랑을 하고 싶어도, 미안하다 수고했다 말을 하고 싶어도 지질히 못 난 부모라는 생각에 어떤 말도 하지 못한 회한이 가득한 글이었습니다.      


오죽 벅차올랐으면 글로 쓸 생각을 하셨을까, 얼마나 미안하셨으면 자식에게 말 한마디를 못 하고 백지 위에 소리 없는 말로 이렇게 크게 외치셨을까 하는 생각에 눈물이 나고 가슴이 뻐근해졌던 기억이 선명합니다.

         

읽은 내색도 안 하고 그대로 찢어와 몇 년간 잘 간직하고 있었는데, 언제인가 자취를 감추고 말았습니다. 그리고는 점점 기억은 희미해져서 이제는 어머니의 필체만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20여 년 만에 비록 열두 자에 불과하지만, 어머니의 마음이 담긴 글을 다시 가지게 된 것입니다. 어머니의 그런 마음을 품고 살아온 때문인지 비록 한 줄짜리에 불과하지만, 그 짧은 글에서도 어머니의 마음을 넉넉히 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행여 챙긴다고 챙겨도 또 사라져 버릴까, 혹여 언제가 그 짧은 글마저 온전히 기억하지 못하게 될까 봐 사진을 찍었습니다.      


“어휴, 이제 어머니도 늙으셨네. 이렇게 철자도 틀리시는 걸 보니 할머니 다 되셨어......”      


안타까운 듯 혀 차던 아내의 시선도 어머니의 봉투 위에 한참 동안을 머물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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