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게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이유 : 99도와 100도 -
2022년 9월 모 일간지에 말기 전립여선암으로 시한부 판정을 받았다가 맨발로 걸은 지 두 달 만에 완치 판정을 받았다는 박모 씨의 이야기를 다룬 기사가 났다. 그야말로 대서특필이었다.
그 기사가 기폭제가 되어 전국적으로 맨발 걷기 광풍이 불었다. 암 환자나 지병을 앓고 있는 사람 등 기적이 필요한 사람들은 물론이고, 맨발 걷기로 건강을 지키려는 사람들까지 합류하면서 전국의 산책로나 등산로에는 맨발의 행진이 끝없이 이어지기 시작하였다.
‘두 달만 맨발 걷기를 하면 기적을 경험할 수 있다’니 얼마나 매력적인 이야기인가? 너도나도 다음 기적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희망에 부풀기에 충분하였다. 하지만 기사가 나고 6개월이 지난 지금, 모든 사람이 기적의 주인공이 되지는 않았다. 가끔 제2, 제3의 기적의 주인공이 나타나기도 하지만, 아무런 변화가 없다는 사람도 있고, 숫제 맨발 걷기를 그만둔 사람도 적지 않다.
왜 누구는 기적을 체험하고, 왜 누군가는 그렇지 못한 것일까? 박모 씨 기사를 찬찬히 다시 읽어보았다. 그리고 우리 동네 맨발 걷기 동호회 회원 중 기적을 체험했다는 사람들의 체험담도 복기해 보았다.
박 씨는 정상 판정을 받을 때까지 두 달간 매일 4~5시간씩 맨발로 산길을 걸었다고 한다. 한 달쯤은 다리에 힘이 없어 100~200m 정도를 기다시피 하며 걸었고, 다리에 힘이 붙으면서는 4km를 걸었다고 한다. 완치 판정을 받고 건강해진 지금은 매일 8km를 4~5시간에 걸쳐 걷고 있다고 한다.
우리 동네 맨발 걷기 동호회 회원 중 60대 초반의 남자 회원은 맨발로 걷기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250을 넘나들던 혈당 수치가 정상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2시간 이상 맨발 걷기는 기본이고, 요가에 스트레칭에 등산까지 틈만 나면 운동을 해왔다고 한다.
사고로 오랜 기간 해오던 마라톤을 그만두고 대신 맨발 걷기를 시작했다는 85세 어르신은 사고 후유증으로 생긴 사시 증상이 맨발 걷기 한 달 만에 완치된 데 이어 6개월 가까이 지난 지금은 전립선염이며 고혈압 등 지병이 몰라보게 좋아졌다고 한다. 매일 오전 오후 두 번에 걸쳐 하루 3시간 이상 걷는다고 한다.
암을 이겨낸 박모 씨와 지병을 극복한 우리 동네 동호회 회원들의 공통점을 생각해 보았다. 셋 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시간을 투자하여 걸었다는 점 외에 공통점이라고 할 만한 것을 찾을 수 없었다. 얼마나 빨리, 얼마나 멀리 걸었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시간을 맨발로 흙과 접하였냐가 답이란 생각이 들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몸속 활성산소는 최소 40분은 걸어야 없어진다’는 말을 40분만 걸어도 충분한 것으로 오독(誤讀) 하고 적당히 걸으면서 기적을 꿈꾸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이 수증기로 변하기 위해서는 100도의 온도가 필요한데 90도는커녕 50도도 되지 않는 물이 끓기를 고대하는 격이다.
피겨스케이팅의 전설 김연아 선수의 말이 맨발 걷기의 기적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하나의 교훈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99도까지 온도를 올려놓아도 마지막 1도를 넘기지 못하면 영원히 물은 끓지 않는다. 물을 끓이는 건 마지막 1도. 포기하고 싶은 바로 그 1분을 참아내는 것이다”란 말 말이다.
한 번쯤 들어본 말일 것이다. 김연아는 자신의 실력이 타고난 재능이 아니라 끊임없는 연습과 훈련의 결과라고 강조한다. 마지막 1도를 위해 자신을 모질게 채찍질한 결과라는 것이다. 맨발 걷기의 기적 역시 99도와 100도의 차이, 바로 그 1도의 차이가 가장 큰 이유라면 지나친 비약일까?
전립선암이 완치된 박모 씨도, 우리 동네 맨발 걷기 회원들도 물을 끓이는 마지막 1도를 위해 많게는 하루 4~5시간, 적어도 하루 2~3시간 이상을 맨발로 걷고 노력한 것이다.
물론 ‘4~5시간’ 또는 ‘2시간 + α’가 정답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다. 그런 연구가 진행된 적이 있다는 말도 아직 듣지 못하였다. 다만, 들인 시간과 노력에 비례해 결과가 나타나고, 물이 끓는 것만은 분명하다.
안 그래도 사는 게 바쁜데 하루 네댓 시간씩이나 어떻게 시간을 내고, 어떻게 걸으란 말이냐고? 그건 인생의 우선순위를 조정하면 풀 수 있는 문제다. 아니, 그래야만 풀리는 문제다. 극단적인 비유이긴 하지만, 내게 남은 삶이 두 달 뿐인 시한부 인생이라면 인생의 우선순위를 어디에 둘 것인지 생각해 보라. 단, 모든 사람이 그렇게 많은 시간을 낼 필요가 있는 것은 아니다. 기적이 간절하다면 생각해 보고 조정할 문제일 뿐이다.
맨발 걷기로 기적을 꿈꾸고 있다면, 지금 내 주전자 속 물의 온도가 몇 도인지 확인해 보자. 99도의 뜨거운 물도 마지막 1도를 올리지 못하면 영원히 끓지 않는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그리고, 필요하다면 인생의 우선순위도 점검해 보자. 진짜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는 순간, 아무리 아끼고 쪼개어도 부족했던 시간이 선물처럼 주어지는 것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