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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어나다 Nov 20. 2022

엄마라서 차마 따를 수 없었던 말

말 느린 아이 키우기

브런치에 공개하는 것이 맞을까,

“공개”라는 거창한 표현을 적는 것이 맞나,


말이 느린 아이를 키우고 있다 하면 “그러게 엄마가 좀 잘하지 그랬어” 하는 평가만 돌아오는 게 아닌가.


내면의 목소리가 나를 어지럽힌다.


그럼에도 글을 써보기로 마음을 정한 건

비슷한 아이를 키우며 고민하는 누군가에겐 도움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나중에 허허~ 하며 별것도 아니었는데 그땐 고민 많이 했지~ 하는 순간이 오면 이 글이 오히려 의미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다.





만 10개월 경, 둘째 아이는 영유아 건강검진을 앞두고 있었다. 친정엄마가 둘째가 이름을 부르면 잘 안 돌아본다는 얘기를 하셨다. 친정엄마는 그 당시 9 to 6로 우리가 사는 집으로 출근하셨다가 육아와 살림을 도와주시고 다시 퇴근하시는 삶을 사셨다. 아이들의 두 번째 주양육자셨다. ‘괜찮을 거야’ ‘그래도 귀담아 들어야겠다’ 두 가지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그로부터도 한참 후에 영유아 건강검진에 가서 선생님께 아이가 호명이 잘 안 된다고 말씀드리며, 동영상을 보여드렸다. 영상 속 아이는 5번 정도 불러도 소리가 나는 쪽을 돌아보지 않았다. 선생님께서는 발달선별 검사표 2회기분을 출력하시더니, 작성해보라 하셨다.


이 시기에 발달선별검사표는 영유아건강검진은 1회더라도 8~9개월용, 10~11개월용, 12~13개월용으로 나뉜다.


결과표를 보시더니 대뜸

“남편도 뭐 하고 있을 때 부르면 다 대답 안 하잖아요?” 하시며 웃으신다.

“아.. 그렇죠”


아이 이름도 불러보신다.

“000아~

지금 또 보는데요?”

아이가 선생님을 쳐다봤나 보다.


나는 다행이다 라는 마음과 괜히 유난스러운 엄마가 된 것 같은 무안함을 동시에 느끼며 진료실 밖으로 나오려고 했다.


선생님께서 한마디 덧붙이신다.

“자폐 아이들은 이렇게 낯을 안 가려요.”


낯가림이 하나의 지표가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 둘째는 진료실에 들어가기가 무섭게, 아니 병원에 들어서자마자 울어재끼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원래 그러려니 하면서도 걱정도 되었던 심한 낯가림에도 긍정적인 측면이 있구나 하며 안도했다. 사실 심한 낯가림 그것도 병원에 대한 것은 첫째도 그래왔고 남편도 그랬었다고 해서 유전적인 부분이라 생각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긴 했었다.


한편으로는 의사선생님께서 엄마인 내가 지금쯤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지 알고 계시고 그것을 직접적으로 시원하게 얘기해주셔서 감사했다.







돌이 될 무렵부터 아이는 걷기 시작했다. 아이는 기는 것을 거의 하지 않았다. 길 때면 오른쪽 다리는 잘 기는데 왼쪽 다리는 앞의 다리에 이끌려서 쓱- 따라만 와서 골고루 두뇌발달이 안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을 또 했었다. 그럼에도 돌 이후에 걸었던 첫째와 달리 돌 즈음 걸어서 다행이라 여겼다.


돌 전에 많이 속상하면 울다가 마지막 순간에 “엄마”라고 하였지만 돌이 지나면서부터는 그것조차 하지 않았다.


아이는 사람 챙기는 것을 좋아했다. 언니에게 본인이 좋아하는 간식을 주라 하면 기꺼이 먹여주는 아이다.  9개월 즈음이었다. 배워서 알게 된 배려가 아니라 타고난 성격이었다.


사회적 웃음을 잘 지었다. 웃는 사진을 찍기가 참 어려웠던 첫째와 달리 둘째는 눈을 마주칠 때마다 웃어줬다. 이런 것까지 유전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라니. 어릴 때 나타나는 모습들은 학습이나 환경에 의한 것이라기보다는 유전에 의한 것일 가능성이 크니, 인간을 탐구하는 재미를 느끼기도 했었다.






주변에서는 말이 조금 느릴 수도 있다며, 귀하게 잘 키우고 있으니 괜찮다고, 괜찮을 거라고 했다. 그렇지만 자신의 자녀가 말이 느렸던 경우는 없었다. 또는 본인 이 말이 늦어서 부모님이 걱정을 했다는 사람도 없었다.


남편이 어느날은 이런 말을 했다.

“내가 걱정을 안 하는 이유는 다른 게 잘 되고 있기 때문이야. 잘 걷고, 소리가 나면 잘 돌아보고, 안된다고 하면 울고.. 다른 게 안되면 나도 걱정을 했을 거야”


“….”



나는 엄마였다.

엄마인 나는 그냥 기다리기만 할 수는 없었다. 답을 하지 못했다.


다른 누구도 대신해줄 수 없는 자리. 그게 바로 이 아이에게 나라는 사람의 역할이었다.


엄마인 나는 그 말을 차마 따를 수 없었다.


아이가 잠들고 나면, 느린 맘 카페와 유튜브, 관련 책들을 조금씩 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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