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경산책여행 #1
4년 만에 도쿄에 왔다.
길었던 유럽여행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온 지 두 달, 나는 다시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도쿄를 가기로 마음을 먹은 건 어느 저녁, 파리의 뛸르히정원에서 예린이와 얘기를 나누면서였다.
영국에서의 농장 생활을 마치고 예린과 나는 파리에 왔다. 이곳에서 10일 정도를 보낸 뒤 스페인에서 2주를 보낼 예정이었다. 시골 농부에서 관광객이 된다는 건 곧 한국으로 돌아갈 날이 점점 다가온다는 의미였다.
우리는 별말 없이 커피를 마시고 있었지만 머릿속에는 ‘앞으로 내가 하고 싶은 게 뭘까’라는 생각이 뭉글뭉글 피어나기 시작할 참이었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말이 나왔다.
“나 아무래도 일본에서 한번 살아보고 싶어. 근데 있잖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두려워”
“뭐가 두려운데?” 예린이 말했다.
“흔해 빠진 이유지. 괜히 해보고 싶은 거 한다고 남들보다 너무 늦어질까 봐. 난 벌써 너랑 이렇게 유럽여행까지 왔잖아. 다들 취직할 때에.”
예린은 잠깐 말이 없다가 입을 열었다.
“근데 지후야, 우린 이미 늦었어.”
웃음이 터졌다. 너무나도 예린이 다운 위로였다.
“네가 생각하는 남들의 기준이 뭔지는 모르지만, 만약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살아가는 속도에 비교하는 거라면 우린 진작에 늦었어. 고등학교 때 입시 공부를 해서 명문대에 간 것도 아니고, 대학교를 휴학 없이 빨리 졸업한 것도 아니잖아. 근데 언제가 되었든 무엇이 하고 싶든 지금이 제일 늦지 않은 순간이야.”
예린이의 말에 속이 시원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갑자기 일본에서 살아볼 용기가 생기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신이 생겼다. 일본에 가지 않으면 후회할 거라는 것을. 내가 지금보다 더 어른이 되었을 때, 반짝거렸던 청춘의 순간을 모두 지나왔을 때 후회할만한 게 있다면, 그건 두려움 때문에 포기했던 수많은 선택일 것이다.
확신이 생기자 도쿄행 비행기를 예약할 만큼의 용기는 생겼다. 그래, 진짜 내가 이곳에서 살고 싶은지 아닌지는 도착해 보면 알겠지.
유럽 여행을 하면서 통장 잔고는 점점 줄어들고 있었지만 다행히 일본을 다녀올 만큼은 남아있었다. 돌아오면 잔고는 완벽하게 0원이 될 테니 그땐 돈을 벌기 위해 무슨 일이든 주저 없이 할 수밖에 없다.
오히려 일석이조라는 생각이 들었다. 중요한 건 무슨 일을 하고 싶은지보다 일을 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지니까.
비행기 안, 잠깐 눈을 붙였더니 곧 나리타 항공에 도착한다는 안내음이 들려왔다.
마음을 움직이는 건 그렇게 오래 걸리는데 몸을 움직이는 건 순식간이구나. 사계절이 네 번 바뀌는 동안 만날 수 없었던 친구들과의 재회를 떠올리자 굳어버린 마음이 조금씩 풀리고 있었다.
다시, 일본에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