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바람의 그림, 고려불화]를 출간하다
어쩌다보니 출판사 등록부터 편집 디자인, 인쇄와 제본까지 끝마치고 내 손으로 책을 세상에 내놓게 되었다. 다른 출판사를 통해서 낼 수도 있었겠지만, 새로운 경험을 해보고 싶은 마음이 이런 결과로 이어졌다.
이 책은 석사 학위 논문을 발전시켜 만든 것으로, 그 기획은 석사 학위 논문 연구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나는 디자인 전공으로 대학에 다니면서 불교를 주제로 작업을 많이 해왔기 때문에, 교수님과의 상의 끝에 석사 졸업 논문과 작품 주제를 고려불화로 정하게 되었다. 고려불화의 연구에는 여러 가지 측면이 있었는데, 우선 종교 미술이기 때문에 불교 사상을 잘 이해하고 교리와 사상을 기반으로 해석해보는 연구가 기본이 되었다. 또한, 한국미술사와 동양미술사의 관점에서 고려불화의 양식적 특징을 바라볼 수 있었다. 그리고 시각예술가이자 디자이너의 시선으로 볼 때 고려불화의 작품들은 고유한 아름다움의 특징을 지닌 예술 작품이기도 하다. 이 아름다움과 조형의 특징을 분석해보는 것도 의미가 있었다. 불교, 한국미술사, 동양미술사, 디자인 등은 모두 내가 관심있는 분야이기 때문에, 흥미를 갖고 진행할 수 있었다.
이미 고려불화에 대한 훌륭한 연구들이 있었기 때문에, 기존 연구들을 단순히 종합하고 정리하는 선에서 그치는 것은 피하고 싶었다.(물론 이것들을 종합하고 정리하는 것만으로도 간단한 일은 아니었다.) 디자이너이자 시각예술가의 시선으로 새롭게 분석하고 분류하고, 또 재해석하여 일러스트로 표현하는 작업을 했다. 고려불화와 관련된 많은 논문들, 책, 도록, 그리고 경전과 역사 기록, 옛 스님들의 시와 글귀를 찾아보았다. 이러한 과정이 내게는 매우 재미있고 흥미로웠다.
학위 논문을 쓰면서 각 도상들에 담긴 이야기들을 백과사전식으로 풀어보고 싶다는 생각은 했으나, 학위 논문이나 작품에 이를 반영하지는 못했다. 다만 도상들의 형태를 재해석하여 표현한 엽서를 만들었는데, 졸업 후에는 여기에 이를 설명하는 해설서와 엽서 케이스를 추가하여 문화상품으로 만들었다.
감사하게도 이 엽서집은 전통문화우수상품공모전에서 입선을 하기도 했다.
이후, 엽서집 해설서에 있는 내용을 더 보완하고 논문의 내용도 적절하게 정리하고 함께 엮어 책으로 만들게 되었다. 이 책은 서울국제불교박람회 기간에 맞추어 한정판으로 50권만 제작하여 판매하였는데, 박람회 기간동안 대부분이 팔렸고 칭찬도 많이 받았다. 그 날의 호응에 용기를 얻어 증쇄를 계획하게 되었다.
사업자 등록과 출판사 등록은 어렵지는 않았다.
사업자 등록은 이미 해놓은 상태였는데, 엽서와 아트 포스터의 온라인 판매를 위해 했던 것이어서 출판업은 업종 추가를 해야했다. 출판업 업종 추가를 하기 위해서는 증빙 서류로 출판사 등록증이 필요했다.
출판사 등록은 구청에 가서 신청을 하면 됐다. 출판사 이름은 사업자 이름과 달라도 되는데 나는 동일하게 '스튜디오 무상'으로 등록했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이름을 조금 달리 할 걸 그랬나 싶은데, '스튜디오'를 떼고 '무상' 혹은 '도서출판 무상' 등이 더 적절하게 들리기도 한다. 그러나 이미 정한 이름을 바꾸면 독자들도 헷갈리고 여러모로 번거로워서 그대로 두고 있다.
1인 출판사를 하시는 분들이 어려워하실 수 있는 부분은 이 부분일 것이다. 나는 디자인을 전공했기 때문에, 인디자인을 다루고 편집 디자인을 하는 것이 익숙했다.
판형은 논문 판형에서 크게 바꾸지 않았고, 서체는 마루부리로 정했다. 마루부리는 네이버에서 개발한 서체로 화면상에서도 보기 좋은데, 인쇄용 서체로도 좋았다. 전에 대학원에서 산학 연구를 할 때도 인상 평가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던 서체였다. 부리꼴(명조체)이면서도 민부리꼴(돋움체)의 또렷함과 경필 서체의 부드러움이 느껴진달까? 새로 나온 서체여서 그런지 신선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산돌 서체를 구독하고 있었기 때문에 더 다양한 서체들을 사용할 수 있었는데, 인용구의 경우 산돌 단편선을 사용하여 본문 서체와 차이를 주었다.
표지는 도상들의 실루엣을 넣어서 디자인했고, 은박으로 찍기로 했다.
회사를 다닐 때 생각해보면, 몇백 페이지의 두꺼운 카탈로그는 거의 전 직원이 돌아가면서 검수를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나 혼자 모든 것을 해야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혼자서 여러 번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보는 수 밖에 없었다. 그걸로 부족하게 느껴져서 아내에게도 부탁해서 어색한 문장과 몇몇의 오탈자를 수정할 수 있었다(아내는 나름 서울대 박사로서 학술적인 글을 써본 경험이 많기 때문에...). 오탈자가 많지는 않았지만 그 소수의 오탈자가 발견될 때마다 매우 안도했다.
한 권의 책은 인류의 소중한 지적 자산의 일부가 된다. 그렇기 때문에 전세계적으로 국제표준도서번호(isbn)을 부여하여 기록하고, 우리나라에서는 국립중앙도서관에서 2권을 납본 받아 보관한다.
발행처로서 출판사 등록이 되어있다면, isbn은 관련 홈페이지에서 신청할 수 있고 며칠 내로 발급이 된다. 나의 경우에는 하루만에 나왔던 것 같다. 추가 자료를 요청하는 경우도 있는데 제대로 된 출판물로서의 가치가 있는 책이라는 게 확인되면 isbn이 발급된다.
납본은 발행일로부터 한 달 이내에 해야하는데 택배도 가능하고 직접 가서 낼 수도 있다. 나는 이런 저런 일로 바빠서 납본을 기한의 마지막 날 하게 되어, 직접 가져가서 제출했다.
디자이너로서 인쇄와 제본을 진행하는 것은 여러 경험이 있었지만, 회사를 다닐 때는 우수한 거래처가 있었기 때문에 업체 선정에 고민할 일이 없었고 개인적으로 소량으로 할 때는 가성비가 좋은 곳을 선택하는 편이었다. 그렇지만 이번에는 수많은 사람들 앞에 선보이는 최소 1000부 이상의 책을 만드는 일이었기 때문에, 인쇄 품질도 좀 더 신경써야했고 단행본 인쇄를 많이 하는 인쇄소를 새롭게 알아봐야했다. 네이버 '책공장' 카페에서 후기들을 좀 살펴보았고 몇몇 업체들에게서 견적을 받았다. 최종 선정한 업체는 많은 출판사들이 이용하는 규모가 꽤 있는 곳이었는데, 가격도 괜찮았고 품질도 우수했고 응대해주시는 직원 분들도 좋았다. (그리고 이곳의 직원 분께서 알려주신 덕에 인쇄를 넘기기 전 아주 중요한 오타 하나를 수정할 수 있었다....)
책을 물류창고에 보관시키고, 각 대형 출판사에 입고시키는 일은 정말 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막막했다. 이것에 대해 알아보고 조사하기에는 다른 일들로 바빴기 때문에 여력이 없었다. 다행히도 주변에 이것을 대행해주는 일을 해주시는 분이 계셔서 그 분과 계약을 맺고 부탁을 드렸다.
나는 서점 웹사이트에 들어갈 등록 정보와 자료들을 만들어 보내드렸고, 그 분이 잘 진행해주셔서 순조롭게 모든 게 진행되었다. 교보문고, Yes24, 영풍문고, 알라딘 등 네 곳에 나의 책이 올라갔다. 오프라인 매대에도 예술 신간 코너에 이렇게 아주 잘 보이는 곳에 진열되었다. 신기하기도 하고 뿌듯하기도 하고.
이제 잘 팔리기만 하면 된다! 책을 꼭 상업적인 이유만으로 만든 것은 아니었지만, 어찌 되었든 돈을 떠나서 내가 많은 노력을 기울여서 탄생시킨 이 책이 아무도 모르게 묻혀버린다면 안 된다. 이 책의 가치와 의미를 느껴줄 수많은 사람들에게 이것을 선보여야 출간의 의미가 비로소 완성된다. 나는 내 책에 애착과 자신감을 갖고 있기 때문에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알아주고 봐주었으면 하는 마음도 있다. 우리의 문화유산, 고려불화가 지닌 여러 가지 면모가 대중적으로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부분이 많다고 생각하는데, 이 책을 통해 고려 불화와 한국 미술의 가치를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렇지만 내가 가장 모르는 부분이 바로 마케팅이기도 하다. 아직도 헤메고 있는 느낌이기는 하지만 지금까지 내가 해본 방법은 다음과 같다.
(1) 인스타그램 광고: 인스타그램에서 게시물을 광고할 수 있다. 비용도 생각보다 비싸지 않은 느낌이다. 도달 목표 인원과 기간에 따라서 비용이 달라지는데, 내가 지정한 조건으로는 대략 하루에 1000명에게 노출되며 하루에 만원 정도씩 내게 된다. 광고를 한 후에 알라딘과 Yes24의 판매 지수가 소폭 상승했다. 인스타그램 이용자가 대부분 젊은 층이어서(물론 광고 시 연령대를 지정할 수도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주로 10대~20대에게 노출이 많이 되었다. 인스타그램 게시글에는 책의 내용을 과장 없이 있는 그대로 소개하는 글을 썼다. 그것만으로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2) Yes24 리뷰 서평단 모집: Yes24에서 무료로 리뷰 서평단을 모집해준다. 출판사에서는 서평단 분들께 보내드릴 책만 제공하면 된다. 2권으로 하는 경우도 있고, 최대 30권까지 되는 모양인데, 나는 넉넉하게 20권으로 했다. 아마 이번 주 목요일부터 8일간 모집이 될 예정이다. 아무래도 책에 대한 리뷰가 있어야 책에 대한 관심이 생기고, 구매 의욕도 생기기 마련이다.
(3) 언론사에 보도자료와 책 보내기
불교 미술 관련 책이었기 때문에 불교계 언론사 5곳에 메일과 우편으로 보도자료와 책을 보냈다. 아직 보도가 되지는 않은 것 같지만, 어느 한 곳에서라도 소개를 해주기를 기다리고 있다....
여기까지가 내가 경험한 출판의 과정이었다. 좋은 홍보 방법이 더 있다면 적극적으로 해볼 생각이 있는데, 여러 가지 일과 함께 병행하려니 쉽지 않다. 그림책 작가, 디자이너, 일러스트레이터, 예술가, 출판사 대표 등 내 앞에 붙일 수 있는 직종이 은근 다양해졌는데, 이게 마냥 좋은 건 아닌 듯하다. 제대로 자리잡은 게 아직 없다는 뜻일지도. 내 소중한 책, 어떻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