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더위가 제대로 익어가던 어느 여름 날 그는 내게 곧 있을 와인 시음회에 함께 가자고 했다.
그 말을 듣고는 몇년 전에 참석했던 그 가게의 와인 시음회 장면들이 슬라이드처럼 하나씩 밀리듯 떠올랐다.
가보고 싶은 마음과 그렇지 않은 마음이 딱 반반으로 왔다갔다 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에게 대답했다.
"아냐. 됐어."
퇴사하고 나름 다른 커리어로 자리를 잡아가는 상황에 그 저녁시간을 더 밀도있게 작업을 하는 데 써야겠다고 생각을 했고, 어차피 먹을 술도 회사 다닐때 다 먹어서 생각도 없었다.
그러하다보니 돈을 굳이 써가면서 가야하나 싶었던 것이다.
"왜. 전에 와인시음회 괜찮지 않았어? 이번에 조지아 와인이래. 가자."
그렇게 문답식으로 몇번의 대화가 핑퐁처럼 오갔고 난 뭔가에 떠밀리듯 가겠다고 대답을 해버렸다.
시음회가 있는 당일 서울에서 약속을 마치고 서둘러 고속버스를 타고 집에 도착해 간신히 짐을 내려놓은 후 와인바로 달려갔다.
길이 방향으로 네댓개의 테이블이 놓여있었고, 그 사이에 사람들이 마주앉았는데 서로의 얼굴을 피해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우리는 제일 끝자리 테이블에 앉아 슬라이드 모니터가 켜진 앞쪽에 한 중년 신사느낌의 강사분이 계신 곳으로 눈을 돌렸다.
그분은 조지아라는 나라의 역사부터 와인 제조 방법, 그나라의 문화, 사람까지 광범위한 주제를 종횡무진 넘나들며 하나로 아우르는 능력이 있었다.
게다가 강의 내내 그 분의 눈빛과 표정, 행동에서 와인과 조지아라는 나라에 얼마나 진심인지 그 애정이 결결이 느껴져 또 한번 놀랐다.
'아 이 분 진심이구나.'
별로 탐탁치 않은 마음으로 참석했던 나는 점점 그 강의 내용에 몰입하게 되었고, 준비된 음식의 맛을 보면서 마음이 슬슬 풀리기 시작했다.
프랑스나 이태리가 아닌 조지아가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와인의 발상지로 밝혀졌다는 사실도 놀라웠지만 특히 크베브리 와인의 제조방식은 마지막에 걸쳐져 있던 마음의 빗장까지 풀어버릴만큼 매력적이었다.
마치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김장을 담그는 방식과도 비슷했던 그 와인 제조법은 수확한 포도를 압착해 즙과 포도껍질 그리고 줄기, 씨의 혼합물을 땅 밑에 묻힌 크베브리라고 불리는 점토 항아리에 채워 숙성시킨다.
이건 사람 손을 거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것이었다.
요즘처럼 다 기계나 인공지능이 인간의 세상에 어떻게든 침범하며 파고드는 세상에서 자연의 순수함을 그대로 지키고 있다는 생각에 조금 울컥한 감정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