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일 보러 서울을 나온 김에 호텔에서 1박을 한 후 체크아웃을 하고 나오니, 눈을 뜨기 힘들 정도로 햇살이 강했다.
이마 근육을 위로 들어 움직여 눈을 크게 떴다.
고개를 사방으로 돌려 주변을 스캔하듯 쭉 둘러보았는데 낯선 동네라 어디로 가야할지 잘 모르겠다.
그럴 땐 그냥 느낌대로 가보는 거다.
그리하여 나는 숙대 입구 그러니까 남영역 주변의 골목을 발길 닿는대로 걸어갔다.
보이는대로 큰 길을 한 5분 정도 걸었을까 우측으로 돌아서니 큰 골목이 나왔고, 조금 더 걸어갔더니 아주 작은 골목이 보였다.
그 골목은 사람들이 분주하게 다니는 골목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시간이 일러서일까 골목이 꽤 한산했다.
나는 그 한산하고도 후미진 골목길을 따라 마치 보물찾기를 하듯 호기심을 품고 더 깊숙히 들어가 보았다.
"여기는 뭐가 있을까"
사실 골목길로 들어선 목적은 분명했다.
배가 고팠고, 살면서 가장 충실하게 쌓은 나만의 빅데이터를 가열차게 돌려 숨겨진 맛집을 찾아내는 것이었다.
그 때 눈에 잘 띄지도 않는 작은 규모의 식당 문이 비스듬히 열려있는 것을 발견했고, 그 앞에 가까이 다가가서 빠르게 내부를 살폈다.
최종적으로 나의 빅데이터로 추출한 결과값은 "이 집은 맛집입니다" 였다.
식당엔 아무도 없었다.
"사장님 혹시 지금 밥 되나요?
연세가 꽤 되보이는 할머니께서 주방에서 파를 다듬다가 커튼을 열어젖히시고 나오시며 대답하신다.
그것은 오랜 세월 손님을 맞아온 경험으로 몸에 밴 서비스 태도였다.
"제육 하나 주세요."
그런데 가격표를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제육백반이 6000원이었고, 생선구이가 가장 비쌌는데 7000원 이었다.
"아니 요즘같이 고 물가시대에 이건 말이 안되는데"
식당 벽에는 김치도 매장에서 직접 담근다고 안내 문구가 붙어있었다.
간신히 허기를 참고 기다리니 드디어 반찬 5가지와 밥 그리고 제육볶음이 나왔다.
꾸미지 않은 할머니의 밥과 반찬 그 자체였다.
숟가락을 들어 허겁지겁 밥과 제육볶음을 먹었는데 간이 삼삼하고 자극적이지 않았다.
또한 반찬의 종류와 구성도 좋아서 점심밥으로 먹기에 완벽한 식단이었다.
"사장님 잘먹었습니다. 요즘같이 물가가 많이 올랐는데 너무 저렴하게 파시네요"
나는 식당에 가서 밥맛이 좋으면 평소에 없던 붙임성이 생겨나와 사장님께 이런저런 말을 한다.
만족스럽게 밥을 먹고 나와 한층 여유로워진 맘과 눈으로 주변을 이리저리 둘러봤다.
식당과 같은 방향으로 조금 더 걸어가니 벽을 타고 담쟁이가 붙어있는 낡은 건물이 보였고, 옛날 시장같은 느낌이었다.
식당보다 더 좁은 담쟁이 건물 입구 속으로 걸어들어갔는데 마주친 첫 장면부터 놀라웠다.
"저기는 전부터 알던 유명한 바베큐 집인데. 와 그게 여기에 있었구나."
몇년 전부터 눈여겨오던 바베큐 식당이 그냥 이끌리는대로 걸어들어간 골목에 위치해 있었다.
흐뭇해졌다.
언젠가는 먹어야지 하는 생각에 바베큐 식당 바깥에서 기웃기웃 하다가 또 발걸음을 옮겼다.
범상치 않은 분위기의 작은 카페가 그 옆에 붙어 있었다.
보자마자 나는 뭔가에 이끌리듯 들어갔고, 처음에는 앉을 자리가 없다고 생각이 들 정도로 장소가 협소했고 흔히 보던 테이블도 보이지 않았다.
카페 내부를 조금 더 살펴보니 직원이 커피를 내리는 쪽에 빠처럼 좁고 긴 테이블이 설치되어 있었고, 의자 역시 발이 닿지 않는 높이가 높은 빠 의자가 있었다.
벽쪽에는 좁은 서랍장같은 모양의 협탁이 붙어있고 역시 높은 의자가 가게 안쪽을 향해 놓여져 있었다.
그나마 이 곳이 독립된 공간이었다.
나는 한 발로 의자 발걸이를 딛고 올라서 앉았고, 커피와 바질토마토 스콘을 주문했다.
적당히 어두운 실내에 오렌지 빛 조명을 달아 안정감이 느껴지면서도 따뜻한 느낌이 들었고 세련된 가구와 오래된 것을 조화시켜 자연스런 멋이 있었다.
마치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에 있는 느낌이랄까.
그런데 사면이 막힌 좁은 테이블과 반대 방향으로 놓여진 높은 의자에 반쯤 걸쳐진 자세로 앉아있으니 불편했다.
그래도 난 그 곳을 떠날 수가 없었다.
"이렇게 힙하다니"
오랜만에 고소하고 향 좋은 커피를 음미하며 맛 좋은 스콘까지 천천히 먹으면서 오감을 충족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