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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밥반찬 다이어리 Sep 10. 2024

한국의 작은 도시에서 베를린까지

2화

강의를 계속 듣고 있자니 강사님은 조지아라는 나라를 동서로 가로지르며 이 사람 저사람과 어깨동무를 하고 와인을 홀짝거리며 춤을 추듯 그 곳을 여행하는 사람 같았다.

나 또한 한번도 가보지 못한 그 곳에 강사님이 가이드하는 루트대로 따라다니며 와인도 한잔 걸치고, 조지아의 순수한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상상을 불러일으키게 만들 정도였다.


한참동안 열띈 강의가 이어지는 가운데 우리 테이블의 시음 와인도 거의 바닥이 나고 있었다.

우리 부부는 음식이며 술이며 모자라는 꼴을 잘 못보기도 하는데다 급한 성격의 그는 내가 고민할 시간도 주지 않고 결국 와인 한병을 더 주문했다.

이름은 잘 기억이 안나지만 가격이 좀 나가는 와인이었다.

우리 테이블 앞자리에 앉은 인상좋은 분에게도 모른 채 할 수 가 없어서 한잔 따라주고 술도 좀 마셨겠다 약간 흐트러진 김에 같이 잔을 들어 짠을 했다.


피피티 슬라이드 안과 그 너머로 조지아 여행을 마친 강사님은 강의를 다 마치고 참석한 손님들의 곁에 다가가 질문이 있는지 물어보셨고, 우리 테이블에 합석하여 같이 와인에 대한 얘기를 하며 담소를 나누게 되었다.

"이 와인을 마시니 어떤 느낌이 드세요?"

"음. 뭐랄까 양조법이 자연적이라 그런지 정말 깨끗하고 신선한 느낌인 것 같아요."

내 옆의 그가 갑자기 나를 쿡 찌르며 마치 그게 정답이 아니라는 듯 신호를 주었다.

'아니 내가 느끼는 걸 말한다는데 정답이 무슨 상관?'

나는 쿡 찌르는 그를 향해 어깨와 팔을 휘저으며 제지했다.


두런두런 한참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와인의 취기가 어깨를 타고 흘러 근육을 이완시키고, 그 담엔 눈동자로 이동해 쥐고 있던 힘을 풀어뜨렸다.

강사님도 우리와의 대화가 나쁘지 않으셨는지 한참동안 우리 테이블에서 즐겁게 얘기하시다가 남편이 입은 티를 보더니 말씀하셨다.

"그런데 그 핑크 티셔츠가 예쁘네요. 저도 핑크 참 좋아하거든요."

"아. 이거 제가 디자인한 거에요."


강의하실 때 좀 중후하고 정갈하게 입고 계셔서 이런 핑크 바탕에 특이한 프린트가 된 디자인을 좋아하실 거라 생각하지 못했다.

꽤나 그 티를 맘에 들어하시는 것 같아서 우리는 기념으로 선물을 드리자고 얘기를 하고 남편은 집으로 건너가 얼른 티셔츠를 가져왔다.

"선물이에요. 이거 예쁘게 입으세요."

"아니 그 티셔츠 구매할게요."

"아니에요. 알아봐 주셔서 디자이너로서 정말 기쁩니다."


강사님은 흐뭇하게 티셔츠를 바라보시더니 우리에게 비싼 조지아 와인을 선물로 화답하셨다.

기대치 못한 내 디자인에 대한 반응에 너무 기뻤고, 뜻하지 않은 와인 선물로 모처럼 참석한 와인시음회는 의외의 이벤트를 만들어 주었다.

더불어 강사님은 나에게 이 말씀을 남기셨다.

"제가 7월에 독일 와인 페어때 이 티셔츠 입고 갈게요."


세상에나. 내게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 실제 그 티셔츠를 입으시면 얼마나 기쁠까 풍선처럼 기대감은 계속 부풀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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