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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사람들

구두수선 사장님 이야기

by 밥반찬 다이어리

약속이 있어 충무로에 갔다가 을지로로 향했다.

충무로는 인쇄 때문에도 종종 가는 곳이고 동료나 친구를 만나기에도 적당한 위치라 좋다.

게다가 이 부근은 오래된 역사가 새 건물에 눌려 파괴되지 않고, 오히려 새로운 것들이 오래된 건물에 숨어 들어가 있다는 점이 흥미를 끓게 만든다.

부조화 스럽다가도 그 이질감이 새로운 매력으로 다가오니 충무로와 을지로 일대를 호기심있게 두리번거리게 되는 이유다.


올 겨울 내내 가죽 앵클 부츠는 나의 외출용 비지니스 구두가 되어주었는데, 오늘 역시 이 신발을 신고 충무로와 을지로 일대를 활보하고 다녔다.

질 좋은 가죽과 고무굽 덕분에 착화감이 좋아 편한 걸음을 걷게 해주는 만큼 하루를 무난하게 보낼 수 있도록 해주는 신발이다.

오래 신은만큼 굽이 닳아서 보수 조치가 필요했는데 눈에 띄지 않는 곳은 뒷전으로 내밀리기 쉽다.

걷는데는 지장이 없어서 무시하기도 했지만 철지난 유행처럼 구두수선점을 찾기도 어려웠다.

충무로에서 우연히 지나가다 ‘구두수선’이란 작은 푯말이 보여 다시 걸음을 돌이켜 들어갔다.


신발 상태를 말씀드리고 수선을 맡긴 후 멍하니 핸드폰을 보다가 사장님께 말을 걸었다.

“사장님. 여기서 오래 하셨나봐요.”

사장님은 잠시 무언가를 회상하는 눈빛으로 과거의 기억을 찾아가는듯 머뭇거렸다.

“사실 제 아들놈이 공부에 집중을 못해서 최면을 좀 배우라고 시켰는데 그 뒤로 제가 그걸 한참동안 공부했었어요.“

“최면이요?”

“최면도 단계가 여럿이 있는데 마지막엔 코마까지 갑니다.

그런데 제가 전생에 군인이었더라구요. 두번이나. 그래서 사람을 많이 죽였어요. 그래서 내가 업보로 이일을 벗어나지 못하고 계속 하는거 같아요.“

“사장님. 근데 군인이면 임무 수행이지 그게 잘못된 행동은 아니라 업보로 보긴 어려울 것 같은데요.”

뜻밖의 스토리로 대화가 이어지는 바람에 구두 수선시간이 짧게 느껴졌다.


이런 숨겨진 스토리를 가진 50년 장인에게 가격을 여쭙고 수선비를 내려는데 요즘 세상에 고작 이 가격이라니 기가 막혔다.

대체 세상은 왜 이렇게 기울어져 있어야 하는지 서글프고 화가 났다.

왜 묵묵히 성실하게 쌓아올린 선한 역사들은 그 존재를 축소시켜야 하는가. 왜이렇게 겸손해야 하는가.

“사장님. 저야 좋지만 너무 가격이 저렴한데요. 원자재 가격도 많이 올랐고 사장님 인건비를 생각해서 더 높게 받으셔야 될거 같아요.”

얼마 안되지만 조금 더 현금을 얹어드리고 챙겨먹던 영양제를 선물로 드리고 나왔다.


사람은 뚜껑을 열어보기 전까지 그 역사를 알 수 없다.

오래된 건물 사이를 비집고 들어앉은 초현대식 트렌디한 카페를 갈망하는 나도. 이 오래된 거리에서 머무르는 그 누군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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