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파데이 Jan 29. 2024

정시퇴근이 잘못

올해도 도래한 연봉계약 시즌. 

1년에 한두 번 보는 담당임원에게 들은 모욕적인 언사에 상처를 많이 받았다.


데이씨가 우리 회사에서 근무시간이 제일 짧아. 성실한 직원들이랑 너무 비교되잖아. 근태 관련으로 올해부터는 고과 반영할 거야.


사무실 문 활짝 열어놓고 직원들이 들락거리는데서 큰 목소리로 내게 창피 주기를 서슴지 않는 행동에 아, 작정을 했구나. 싶었다.

고작 1년에 한두 번 보는 사람이 내 성실도를 운운하다니.

그렇다고 내가 지각을 밥먹듯이 했는가? 아니. 퇴근 시간 전에 사라지는 게 빈번한 가? 이것 또한 아니다.

정시퇴근이 문제인 것이다.

정시에 컴퓨터를 끄고 겉옷을 챙겨 일어나 현관까지 가는 시간이 보통 1분 안 쪽. 

막상 퇴근할 때 보면 내 뒤로 다 줄줄이 퇴근 찍어서 인사 나누고 헤어지는데 뭔....


뭐 알람 맞춰 놓고 다녀?


아이를 데리러 가야 해서 입사할 때부터 내가 일하게 될 부서 임원, 팀장님하고 다 얘기가 된 부분이었는데. 

입사 초에 처음 봤을 때부터 언사가 무례했던 사람이라 인상이 좋지 못했는데 면전에서 그런 막말을 듣고 있자니 대꾸도 하기 싫어서 나는 입을 다물었다. 

서류에 싸인을 마치자 그래도 진급은 하네? 투 카운터 펀치가 날아들었고

그리고 내가 데이씨한테 개인적으로 부탁 좀 하려고 해. 마지막 카운터 펀치가 날아왔다.


내가 꼰대라서 그런가? 저번에 보니까 치마가 계단에서 되게 민망하더라고?


나는 실소했다.

대학교 4년, 대학원 2년, 경력단절 기간을 빼고 직장생활 총 8년째. 실험실에서 내내 생활한 사람 중에 짧은 미니스커트를 입으시는 분들이 계실까? 

물론 취향 차지만, 반응기 살피고 실험기구 나르고 하려면 몸을 숙이는 일이 종종 있는데 일단 나는 그런 옷이 너무 불편하다. 거의 바지만 입고 원피스나 치마가 있어도 전부 무릎 아래 종아리에 오는 길이다.

어디 바닥에 누워계셨을 때 올려다 보신 걸까.


여긴 회사잖아. 복장 좀 단정히 했으면 좋겠어.


곧 사춘기 오는 아이를 둔 나이에 나는 그런 말을 들을 줄은 몰랐다. 평생 어디 가서도 그런 얘기 들은 적도 없고.

억울해 뒤지겠는데 흠잡자고 작정을 하는 사람한테 말을 더 얹기가 너무 싫어서 그냥 고구마 백 개 처먹은 답답한 마음으로 돌아섰다.


최근에 회사 경영관련해서 이런저런 말들이 들려와서 애매한 내 포지션에 나 좀 위험할지도? 하고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훅 들어올 줄은 몰랐다.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까.

하이가 종종 속상했던 일을 토로할 때 그냥 무시해 하이야, 너 기분 나쁘라고 하는 소리에 반응하면 걔가 원하는 대로 된 거잖아. 그러니까 무시해. 하고 가르쳤다. 

하이는 아는데. 그러려고 하는데 그래도 너무 속상해. 하고 대답을 한다.

나는 그러면 대답한다. 알지 그럼. 물론 속상하지. 그런데 그런 아무것도 아닌 일에 속상하지 않도록 단단해지기 위한 과정이야. 


개뿔. 나 조차도 못 하고 있다.

주말 내내 발로 이불 뻥뻥차며 곱씹으며 씩씩댔는데 누가 누구한테 훈수를 둬.


23년 마지막 날 아프기 시작한 하이가 1/1 독감 진단을 받고 고열에 시달리는 애 간호하다 독감이 옮아 나도 같이 앓아누웠다 일어나서 새해 초부터 정말 너무 하다, 했는데. 참...


연 초부터 너무 마음이 복잡하다.

인생. 언제쯤 편해질까.





작가의 이전글 성조숙증 치료의 시작 - 검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