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직을 했다.
남들은 20년씩 근속하는데 나는 경력란에 다섯 번째 줄을 추가하게 되었다.
일이야 내 능력껏 하면 되는 부분이니 어딜 가나 똑같은 거고
편도 2km. 회식강요 없음. 자유로운 연차사용. 점잖은 팀 분위기.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었던 회사였지만 퇴사 결심을 한 것은 올해 초.
말도 안 되는 생트집을 잡으며 모욕적인 폭언을 서슴지 않은 감사 때문이었다.
그렇게 나이만 먹다가 나중에 칼국수 서빙밖에 못해.
손발이 부들부들 떨렸다. 칼국수 서빙이 잘못이라는 뜻이 아니라 (칼국수 좋아함)
내 커리어를 한 순간에 바닥에 패대기친 것에 대한 모욕감이었다.
일 년에 한두 번 볼까 말까 한 사람이 내게 불성실하다느니 생트집을 잡으며 할 말은 전혀 아니었다.
회사 내부 사정으로 굉장히 불리해진 본인 입지 때문에 뭐라도 실적이 필요해서 제일 만만한 사람 건드린 건데 그냥 한 귀로 듣고 흘리지 그러냐. 다들 입을 모아 말렸다.
그냥 들이받지. 회사 생활 일이 년 한 것도 아닌데 이 좋은 조건 두고 관둔다고 바보냐는 소리도 들었다.
근데 그렇게 십수 년 근속한 사람을 어떻게 이겨요.
야망도 뭣도 없는 소시민인 난 치열한 에너지가 없다.
보통 때라면 환승이직을 시도했겠지만 심리적으로 매우 지쳐서 그만두고 한 달만 쉬겠다고 남편에게 이야기를 했다. 그러라고 흔쾌히 허락해 준 남편에게 매우 고마우면서도 미안했다.
내가 만약에 가장의 위치였다면, 참고 다녔겠지?
남편은 껄껄 웃으며 아니어도 다들 참고 다녀. 대답했다.
어쩌겠어. 내 멘탈이 순두부 같은 걸. 니 선택이다. 나를 견뎌. 농담을 하며 나는 한결 홀가분해졌다.
그렇게 퇴사를 완전히 마음먹었다.
쉴 생각에 갈까 말까 고민했던 면접을 보게 되었고, 운 좋게도 합격 안내를 받았다.
또다시 새직장, 첫 출근.
챗바퀴 같은 인생이라지만, 이쯤이면 좀 평탄하고 시시한 챗바퀴를 굴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