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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읗 May 30. 2022

소심좌의 메모장 사용법

굳이 거창하게 적어보는 '나의 메모 습관'에 대한 고찰



때때로 스마트폰 속 메모장을 꺼내 일상을 기록하는 오랜 습관이 있다. 사실 기록이라기 보단 짧은 메모에 가깝고, 마냥 메모라고 하기엔 꽤나 구구절절하. 당연하게도 규칙성이라곤 찾아보기 힘들고, 난감하게도 의미 해석이 불가능한 경우도 있다. 분명 '쓴 이'는 데, 메모장의 어느 한 구석은 어째 매우 낯설기도 .


메모의 이유는 (업무나 개인 정보 저장을 제외하더라도) 참으로 다양하다. 그것은 삶의 희로애락과 결을 같이 하기 때문인데, 거창한 표현을 사용했지만 사실은 단순히 '갑자기' 쓰고 싶을 때 쓴다는 의미와도 같다. 다양한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번뜩 무언가 활자로 남기고픈 그런 찰나의 순간들이 있는데, 난 그럴 때 주저 없이 메모장을 꺼내 든다.


대개 이런 경우는 '화가 나거나, 억울하거나, 또는 불합리하다'라고 느끼는 순간의 감정이 단골 소재로 쓰인다. 어찌할 바를 모르겠는 순간이 찾아오면, 언제부턴가 그때의 감정과 상황을 짧은 단어, 문장, 혹은 구절들로 남기곤 했다. 복잡한 마음이 타이핑을 통해 텍스트화 되는 과정은 실로 묘한 느낌을 준다. 그리고 그렇게 나의 찰나의 감정과 경험이 하나의 기록이 되어 내 스마트폰 속 메모장에 남겨지는 순간, 표현하기 힘든 개운함과 함께 나를 짓눌렀던 마음의 짐도 조금은 그 무게를 던다. 마치, '이제 괜찮다'라고 마음에 아로새기는 느낌이랄까.


내가 가장 잘 아는 나만의 최약점들이 있다. 그런 나의 최고 나약해 빠진 구석이 세상에 알려질까 항상 노심초사했었다. 나의 업무나 성과가 비난의 대상이 될까 염려하던 많은 시간들 속에서 나의 메모 습관은, 어쩌면 일종의 탈출구였고 한 줄기 빛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구차하지만 그렇게라도 토해내면 꽤 상쾌했다. 그리고 조금씩 이겨내는 힘이 됐다. 의미를 알 수 없는 단문의 메모가 남겨진 날은, 아마도 너무 심하게 토해내 마음이 많이 힘들었던 날이었으리라, 그렇게 자위한다.


물론, '막연히 또 잔잔히 행복한 순간'에도 나는 여지없이 메모를 한다. 일상 속에서 잔잔한 행복을 마주하는 순간은 생각보다 귀하다. 그 대상은 가족일 수도, 연인일 수도, 혹은 동식물일 수도 있다. 진심으로 마음이 동하는 은은한 행복에 취하면, 멋(?) 없고 무뚝뚝한 나는 표현보다 주로 기록으로 남기는 선택을 한다. 그래서 내가 얼마나 잔잔히 행복했는지는 나 혼자만 안다. 외롭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잔잔한 마음의 행복이, 기쁨이, 사랑이 내 메모를 통해 내 안에 깊이 아로새겨지는 그 느낌이 나는 꽤 즐겁기 때문이다. 이게 바로 무뚝뚝하다는 숱한 비난(?)에도 불구하고, 표현 대신 조용한 메모를 즐겨 온 이유이기도 하다.




명색이 작가가 된 나에겐 어느덧 브런치라는 새로운 메모장이 생겼다. 2-3년 주기로 교체하는 스마트폰, 끊임없이 과거로 밀려 올라가는 카카오톡 어플 속 나와의 채팅은, 이상하게 더는 손이 가지 않는다. 반면, 이제 고작 6편의 글을 발행한 새내기 작가의 서랍 속엔 어느덧 10개가 넘는 다양한 글감들이 살아 숨 쉰다. 글감이라고 하기엔 뭐한 수준의 단어 나열이지만, 괜히 뿌듯하면서도 자꾸 어루만져 주고픈 애달픈 마음이 일렁인다. 당장 살을 붙이지도, 문장을 엮어보지도 않을 거면서, 자꾸 들여다보고 눌러보게 된다. 이제 와서 깨닫지만, 아마도 메모는 내가 가장 솔직해질 수 있는 '자아실현'의 창구였는지도 모르겠다. 언제든 진심을 토로하고 일러바칠 수 있는 든든한 '키다리 아저씨' 그 비슷한 것도 고.


아마도 브런치 서랍 속 모든 글감이 글로 발행되지는 못할 거다. 잘 가공하여 모든 이야기에 마침표를 찍는다는 건 어쩌면 완벽한 삶을 살아내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 아닐까. 인생이 불완전한 만큼, 아마 나의 메모도 계속해서 불 완전히 나와 함께 할 것이다.


허나 분명한 건 있다. 작가라는 과분한 자격을 부여받았던 그 순간부터, 내가 브런치라는 이름의 '대나무 숲'을 관장하는 주인이 되었다는 것이다. 주인이라고 다 노련하고 능숙한 것만은 아니지 않나. 나의 어리숙하고 다듬어지지 않은 감정의 파편을 잘 담아낼 수 있는 나만의 열린 '대나무 숲'이 생겼다는 것만으로도, 사실은 마음 한 구석이 꽤나 평화로워짐을 느낀다. 


언젠가 '쓰는 일'에 꾸준히 매진하다 보면, 잘 가꿔진 대나무 숲의 주인이자 노련한 작가 나부랭이 정도로는 성장해 있지 않을까. 그런 단 꿈에 굳이 젖어 본다,라고 오늘도 거창한 메모를 남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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