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히읗 Apr 23. 2022

30대 중반, 여자 사람 백수의 오늘.

프롤로그 그 어디쯤.



나는 백수다. 30대 중반 여성이고, 심지어 미혼이다. '심지어'라고 강조할 이유는 딱히 없지만, 나는 부러 힘을 실는다. 밀레니얼 세대 특유의 소심함, 그리고 '눈치보기'성 방어기제 따위의 것을 버리지 못하는 까닭이다. 마치 논문 끝에 달린 각주처럼, 구태여 설명을 달고야 마는 일종의 병이랄까. 하지만 병이고 뭐고 그런 건 전혀 중요하지 않다.

왜냐, 지금의 나는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로 꽤나 행복하기 때문. 7개월 차 미혼의 백수로 살아가는 바로 지금이 말이다.




21년 9월 말, 입사한 지 정확히 2년 6개월을 채우던 날 나는 직장을 나왔다. 자발적이면서도 비자발적인 퇴사였다. 어찌나 마음이 고되고 지치던지, '프로 이직러'라는 별명이 무색할 만큼 정신이 아득해지는 나날이었다. 퇴사와 이직에 있어선 꽤 마음 근육을 키웠다고 생각했는데. 근육은 개뿔. 실은 쥐뿔도 없었던 거다.

 

백수가 된 지, 어언 7개월 차. 확신의 캥거루족으로 전락한 (아빠 피셜) 늙은 딸은, 생각보다 바쁘게, 얌전히, 또 최선으로 현재를 살아내고 있다.


백수로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 중, 가장 열심인 것은 단연 '글쓰기'다. 왕복 4시간은 기본이요, 업무 특성상 노트북과 한 몸이 되어 살아온 지난한 세월. 항상 무언가 끄적이고픈 심상이 가득했지만, 심신은 현실의 무게와 피곤에 철저히 무릎을 꿇었다. 그래서 결심했다. 지금  보자고. 어쩌면 지금이, 나에게 온전히 주어진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르니까. 다시 포기한다면 영영 후회할 것을 알기에, 나는 그렇게 무작정 글쓰기를 시작했다.


근데 이게 참 아이러니한 것이, 백수라서 마땅한 글감이 없다. 아뿔싸. 그렇게 원하던 시간이 생겼는데, 백수라서 쓸거리가 없다니. 글감 마련을 위해 다시 일을 한다면? 그럼 다시 시간은 먼 길을 떠날 것이다. 이런 나약한 존재 같으니라고. 나란 인간은 쓸데없는 생각의 고리를, 그냥 싹둑 끊어버리기로 했다.




앞으로의 이야기는, 30대 7개월 차 백수의 현재이자 과거이자 '아무 말' 일 수 있다. 매일 밤 내일의 일과를 텍스트로 꾹꾹 눌러 담아 준비하고, 성실히 또 맹렬히 그 일과를 수행하고야 마는, 과로사 직전의 백수인 바로 나. 그런 내가 살아내는 이야기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