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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마이 Jun 04. 2022

정기용의 '감응'

<말하는 건축가> 리뷰


<말하는 건축가>


(Talking Architect, 2011)


한국/95분/다큐멘터리


감독 : 정재은


출연 : 정기용



























하느님이 당신의 목소리를 질투하셔서 목소리를 빼앗아갔다며 너스레를 떠는 정기용 씨의 모습으로 영화는 시작된다. '말하는' 건축가라는 제목에 걸맞게 영화에서 정기용 씨는 계속해서 '말한다.' 당신이 일평생 사랑한 ‘건축이라는 예술에 대해 끊임없이 성찰하고 말한다. 무엇인가를 새로이 짓는 것이 아닌, 존재하던 것과 어우러지는 건축을 꿈꾸며 결국 건축의 주인공은 '사람' 이라 말한다. 그의 작품들인 무주 프로젝트, 기적의 도서관 등 공공을 위한 건축, 사람을 위한 건축에 그 누구보다 힘쓴 건축가라 할 수 있다.







이른바 '돈'이 안 되는 건축을 하며 당신이 생각하는 진정한 의미의 건축을 꾸준히 역설하던 그의 모습에서는 어딘가 비장함까지 느껴지는 듯하다. <감응>이라는 그의 마지막 전시회를 위해 회의를 하면서도 그는 끊임없이 '화합'을 강조한다. 당신의 건축물이 자연과 화합하는 것과 같이, 사람들끼리의 갈등도 화합으로 이끌고자 부단히 노력한다. 누군가는 그의 건축을 '사랑의 건축'이라 평한다. 기적의 도서관이 아이들에게 사랑을 주는 건축인 것처럼, 그의 건축은 사람들을 향한 사랑이 가득 담겨 있다는 것이다. 당신의 이런 태도는 건축뿐만이 아니라, 삶의 태도로도 이어진다. 평범한 가정집에 사는 건축가. 이 집이 좋은 이유가 그저 평범하기 때문이라 답하는 그의 모습은 건축가가 무엇인지에 대해 우리로 하여금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만든다.




















초등학생 시절, 할머니를 따라 온 가족이 동대문에 있는 교회에 다녔다. DDP가 지어지는 것을 보면서 할아버지께서 무어라 짜증 아닌 짜증을 냈던 것을 기억한다. 당시의 나는 그저 멋있어 보이는 외관에 흉물스럽다며 혀를 차는 할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했다. 동대문을 사랑한, 동대문에 존재했던 사람들을 위하지 않은 건물임을 깨닫지 못했던 것이다. 영국 출신의 건축가가 담당해 지어진 DDP는 여전히 동대문에 존재한다. 평당 2500만 원을 들어가며 만든 저 값비싼 건물이 어떤 가치를 지니는지는 사람들마다 다를 것이다. 다만, 동대문을 사랑했던 사람들에게 DDP가 주는 의미가 얼마나 거대할지는 의문이다.








당신의 마지막 전시회 <감응>. 어떤 느낌을 받아 마음이 움직인다는 의미이다. 그의 건축이, 그의 삶이 그러했다. 나무를 베어 그 자리에 건축물을 올리는 것이 아닌, 나무와 함께 어우러지는 건축물을 짓는다. 나는 건축에 무지했고 무지하다. 유명한 건축가가 지었다는 건축물에 가도 별다른 느낌을 갖지 못했다. 부끄럽게도 전시회를 가는 사람들을 비난하기도 했다. 그저 본인의 교양 있음을 뽐내기 위한 행위로 여겼을 때도 있었다. 그런데 <말하는 건축가>를 보며, 그간 일말의 관심도 없던 ‘건축’이라는 복합 예술에 대한 경외감이 들었다. 그 쉰 목소리로 목이 터져라 말하는 건축이라는 것들을 들으며, 당신이 건축에 대해 어떤사랑을 지녔는지 느낄 수 있었다. '감응'이 일어난 것이다.













목욕탕을 이용하는 할머니들에게 정재은 감독은 묻는다. 이 목욕탕을 지은 사람에 대해 아느냐고, 당연히 그들은 알지 못한다. 바로 옆에 그 사람이 있다. 그는 그저 함께 어우러져 더위를 피한다. 이것이 당신이 꿈꾸는 건축이었을 것이다. 바람, 햇살, 나무, 공기에게 감사하며 살았던 그는, 이런 건축을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리고 나 역시 당신에게 감사하다고 말하고 싶다. 당신이 건축에 대해 말함으로써, 나라는 사람은 '감응'을 느낄 수 있었다고, 앞으로 건축을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고 말이다.







나는 무엇인가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부럽다. 무엇인가에 열중하고, 그것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모습을 보면 존경심, 열등감, 경외감이 느껴진다. 그런 사람들을 꿈꾸며 늘 사랑 없는 삶을 살고 있다. 정기용 씨가 그러했다. 건축이라는 것에 이토록 큰 사랑을 가지고 평생을 산 사람에게 경외감을 표하고 싶다. 이렇게 멋있는 사람이 있다는 건, 알게된 건 정말이지 큰 행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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