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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마이 Jun 03. 2022

이 사랑스러운 안드로이드

<애프터 양> 리뷰


<애프터 양>

(AFTER YANG, 2021)

미국/96분/드라마

감독 : 코고나다

출연 : 콜린 파렐, 저스틴 H. 민 외
















계속되는, 계속되어야 할 정상가족 담론




중국계 딸을 입양한 흑인과 백인 부부, 그리고 중국 문화가 '입력된' 안드로이드 '양'으로 이루어진 이 특별한 4인 가족은 4인 가족 댄스 배틀에 참가한다. 영화는 다양한 4인 가족들이 열심히 춤을 추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영화가 지닌 정상 가족에 대한 담론이 명확하게 드러나는 시작점이자 주제이다. 영화는 이 가족에게 특별한 당위성이나 어째서 이런 모습의 가족이 되었는지 등의 이유를 묻지 않는다. 그리고 사실, 우리는 그 이유를 알 이유도, 자격도 없다. 그들은 그저 그 가족일 뿐이다.




양은 동생 '미카'에게 중국 문화에 대해 알려주고, 자신의 뿌리를 잊지 않게 해주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양은 완벽하고 멋진 '안드로이드'였다. 양은 미카의 멋진 오빠이자 친구이며, 바쁜 부모님을 대신하는 보호자이며 동시에 뿌리이기도 하다. 자신의 '진짜' 부모님이 누구냐며 혼란스러워하는 미카에게 양은 나무의 접목을 보여주며 미카의 뿌리, 그리고 현재를 모두 긍정하며 자존감을 북돋는다. 참으로 완벽한 안드로이드일 것이다.




한국계 캐나다인 코고나다 감독은 <파친코>, <애프터 양>과 같이 가족에 대한 담론과 동시에, 아시아인에게 갖는 고정관념에 대해 끊임 없이 고민하는 감독이다. 감독은 중국인으로 프로그래밍 된 양의 모습처럼, 아시아인들도 미국인이 만든 '아시아인'의 틀에 맞추어 살아가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아마도 미래로 추정되는 영화의 배경은 동서양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다. 등장인물들은 인종에 관계 없이 흔히 '동양'적이라 칭하는 복장을 주로 입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복제인간과 안드로이드가 흔해진 시점에도 여전히 인종차별과 입양에 대한 폭력적인 시선이 존재한다는 것이 놀랍기까지 하다.


















안드로이드는 인간이 되고 싶어하는가?






안드로이드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SF 영화들이 있다. <에이 아이>, <아일랜드> 등 우리들에게 익숙한 영화들의 주인공은 모두 안드로이드이다. 그러나 <애프터 양>은 제목처럼 '양'의 죽음(또는 고장) 이후를 이야기하는 영화이다. 그래서 영화의 주인공은 안드로이드인 양이 아닌, 그(것)와 함께 지낸 인물들이다. 결국 죽음을 맞이하는 것은 안드로이드이지만, 그 죽음을 기억하고 느끼는 것은 망자의 주변 인물들이다. <애프터 양>도 그러하다.




양은 기억장치가 삽입되어 있었다. 그 기억장치를 통해 양은 자신이 기억하고 싶은 순간을 촬영한다. 이 시스템이 작동하는 방식은 무엇일까? 양이 '인간'이 아니라고 볼 수 있는 것일까? 양의 가족들은 고민한다. '인간적'인 것이 무엇일까? 양이 인간이 되고 싶어했냐고 제이크는 묻는다. 그러자 그 질문은 굉장히 인간중심적인 관점이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어째서 인간은 안드로이드들이 인간이 되고 싶어한다고 생각하냐는 질문이다. 참으로 오만한 생각일 터이다. 이렇듯 <애프터 양>은, 그동안 안드로이드 영화가 공식처럼 다루던 '인간을 갈망하는 안드로이드'의 공식을 뒤튼다.




우주와도 같은 양의 기억을 추출하는 장면은 황홀하기까지 하다. 양은 정말 오랜 시간 자신이 보고 느낀 것을 '기억' 해왔다. 그 기억들을 통해 가족들은 서로의 소중함을, 양의 소중함을 깨닫는다. 양은 제이크에게 말한다. '제게도 차(茶)가 그냥 지식이 아니면 좋겠어요, 진짜 기억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안드로이드를 프로그래밍하는 미래의 기술이 얼마나 발전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기억'에 대한 양의 갈증이 무섭고 슬프게 다가오는 장면임에는 틀림 없다.











After 'AFTER YANG'






양은 '애벌레에겐 끝이지만 나비에겐 시작'이라는 노자의 말을 인용하며 말한다. 자신은 끝 뒤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한다고, 'After YANG' 뒤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말이다. 이와이 슌지 감독이 만들어낸 릴리 슈슈는 양에게, 혹은 감독에게 기억되어 미래에 재생산된다. 슈이치의 18번 <Glide>는 양과 미카를 이어주는, 양의 기억을 상징하는 노래로 재생산된다.




양은 결국 '테크노 사피엔스'의 전시에 활용되는 마지막을 맞는다. 제이크는 말한다. 양의 존재와 기억은 '인간들'을 위해 꼭 필요할 것이라고. 복제인간을 탐탁치 않아하는 제이크는 결국 인간들을 위한 '애프터 양'을 바라고, 그것이 자신의 희생이라 말한다. 양이 바라는 '애프터 양'은 무엇이었을까? 자신은 끝 뒤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말했던 양이기에 전시되는 양은 괜찮은 것일까? 아니면 끝 뒤에는 아무것도 없기를 바랐던 양에게 잔인한 '애프터'를 만드는 것일까?




지구상 가장 똑똑한 동물이라고 하는 '인간'은, 가장 오만한 동물임에는 틀림 없다. 지금도 지구 곳곳에서는, 당장 나조차 인간 중심적인 사고는 뿌리깊게 작용하고 있다. 인간이 아닌 존재는 '감히' 인간이 되고 싶어한다는 오만방자한 자의식을 내려놓고, 최소한 인간들보다는 사랑스러운 양의 기억들을 되새기며 성찰하며 살아가고자 다짐하게 된다. 이렇게 결국 나에게도 '애프터 양'이 작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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