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첫째의 스케이트 승급 심사가 있는 날이었습니다.
아이에게 쉬운 동작이기도 했고, 그 쉬운 동작을 오랫동안 단련이 되게 한 달 넘게 연습해왔습니다.
선생님께서도 통과는 문제 없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아이가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기에 저 또한 그것에 대해 크게 염두하지 않았습니다.
스케이트 대회를 두 번이나 나갔었고
긴장이 높은 아이임에도 불고하고 대회는 잘 치뤄냈기때문에
아이스링크에 서는 것만은 어려운 일이 아니구나 생각했었지요.
아이는 아침부터 짜증을 내기 시작했습니다.
아니, 주말부터 예민해져있었던 것 같아요.
이번 주말은 왜이렇게 힘든가..생각하며 저도 참고 참다 버럭도 했던 것 같습니다.
승급 심사에 대한 말을 아이가 꺼내지 않아서
이것이 원인일 거라고는 정말 생각하지 못했었어요.
그런데 승급 심사 당일,
학교를 다녀와서는 온갖 것으로 트집을 잡기 시작합니다.
그제서야 비로소 '아 심사 때문에 떨리는 구나.' 정도 생각이 들었습니다.
충분히 그럴 수 있겠다 싶었기 때문에 최대한 아이의 마음을 읽어주고 다독여 주었습니다.
어찌어찌 아이와 스케이트장에 도착을 했습니다.
가는 동안 긴장되는 마음을 풀어주기 위해서 영상을 틀어주었습니다.
생각해보니 영상을 보기 보다 심사를 앞두고 긴장되는 아이와
깊은 대화를 나누는 것이 더 좋았을 것 같네요.
언제나 지나고 나면 이 방법이 더 옳았을까 후회가 밀려옵니다.
이렇게 저렇게 궁리를 했던 방법이 아이에게 잘 통하지 않는 경우는 너무나 허다하더군요.
부모가 처음이다보니 늘 경험으로 학습하는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구나 싶습니다.
어쨌든 영상이 끝나갈때 즈음
아이는 긴장되고 떨린다. 걱정이 된다는 말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급기야 링크장에 도착하고는 차에서 내리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그런 아이의 모습을 보면 불안한 마음이 듭니다.
정말 차에서 안내리면 어떡하지.
오늘 승급 시험을 못보고 가는 것은 아닌가.
그런 마음이 들기 시작하니 아이를 설득하고 회유하고 다그치게 되었습니다.
제가 그렇게 할수록 아이는 더욱 완강히 거부하게 되었습니다.
차에서 내리지 않고, 절대 안갈거라는 말만 반복하였습니다.
이대로 집에 가야하나. 이대로 오늘의 경험이 실패로 돌아가면 어쩌나
걱정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대로 집에 갔다가는 아이가 스스로를 자책하는 것 밖에 남지 않겠다 싶었습니다.
긴장되는 마음 때문에 차에서 내리지도 않고, 집에 돌아간다..?
다른 시나리오를 열심히 짜 보았습니다.
오늘 승급 시험을 못보더라도 아이가 시험 현장만이라도 구경했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것은 그렇게 긴장 되는 일이 아니고, 억지로라도 구경을 하고 나면
생각보다 별거 아니네 라는 것을 깨닳을수도 있을 것 같았습니다.
아이를 거의 끌다시피 해서 대회장 앞까지 왔습니다.
이때도 최대한 유머를 쓰면서 싫다고 발버둥 치는 아이가 피식 웃음지을 수도 있게,
또 엄마탓을 하더라도 미안하다는 말을 적절히 써가며,
너로 인해 나는 힘들지 않다는 인상을 주려고 노력했습니다.
아이는 대회장 앞 문밖에 서있고 저는 마지막으로 아이에게
"대회는 이미 시작되었으니 어차피 스케이트화를 신는 일은 없을 거야. 하지만 오늘 그냥 가는건 안돼. 꼭 대회를 어떻게 하는지 보고가야해. 그걸 해야 집에 갈 수 있어. 안보고 가는 건 절대로 안돼."
라고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그리고 나서도 한참을 기다렸지만 아이는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많이 속상하더군요.
하지만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아까 보여줬던 단호함을 잠시 넣어두고
부드러운 말투로 다시 아이를 데리러 가서 손을 내밀었습니다.
"자 이제 들어가보자."
그렇게 발버둥치며 가지 않겠다던 아이가
제 손을 잡았습니다.
그리고는 순순히 제 발로 스케이트장에 들어가서 다른 친구들이 승급 시험을 보는 것을 함께 보았습니다.
승급 시험은 스케이트 장에서 아주 자유로운 분위기로 치뤄지고 있는 시험이었습니다.
어린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시험이라 그렇게 엄격한 분위기는 아니었고
자기 차례를 기다리며 줄서 있는 아이들이 우리쪽을 보며 안녕~~ 하고 손을 흔들며 인사도 해주는
그런 편안한 분위기였습니다.
저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성공이라고..
아마 그대로 집에 갔으면 실패한 아이를 북돋아 줄 말이 정말 없었을 것 같았습니다.
어떤 말로 북돋아 주었더라도 아이는 엄마가 쥐어 짜내어 하고 있는 말인 것을 눈치챘을 것입니다.
하지만 순순히 제 발로 스케이트장에 걸어들어온 것. 그리고 차에서 내리지 않을 것이라고 했지만 스케이트 장에서 승급 시험 치는 친구들을 보고 간 것. 이것 두가지를 아이는 해낸 것입니다.
떨리는 마음에 승급 시험을 치고 싶지도, 보고싶지도 않았었잖아요.
돌아오는 길에 아이에게 듬뿍 칭찬을 해주었습니다.
용기내어 스케이트장에 들어와주어 고맙다고.. 떨리는 마음 때문에 승급 시험을 보는 것도 힘들었을텐데
즐겁게 보고 온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말해주었습니다.
아이는 마음이 좀 불편하다고 했습니다. 자기가 그토록 열심히 준비했던 승급 시험을 치지 못했다는 사실을 마음에 담아두고 있었던 거에요.
엄마에게 자기 마음을 더 털어놓자면 친구들에게 오늘 승급시험을 본다고 자랑을 했는데 그것도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고 했습니다.
아이가 자신의 마음을 솔직하게 말해주어 고맙게 여겨졌어요.
그 불편한 마음을 이해는 하지만 촛점을 빨리 옮겨와야 했습니다.
시험치는 모습을 보니 어땠냐고 물어보았습니다. 혹시 보지 않았다면 어땠을지도 말해달라고 했습니다.
아이는 놀라운 말을 했습니다.
만약 오늘 그냥 갔다면 스케이트를 그만두고 싶었을 것 같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승급 시험치는 모습을 보니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고 다음에는 꼭 도전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하지 못한 것이 아쉽게도 느껴진다고 했어요.
어릴 때 하는 실패는 좋은 경험이라고 하지만 그냥 실패에서 끝나면 그것은 좋은 경험이라기 보다는
좌절과 죄책감을 키울 수도 있습니다.
실패를 질책하는 대신 실패를 통해서 배울 수 있는 경험을 만들어주는 것은
부모의 몫입니다.
부모의 말 한마디와 작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절대 실패를 질책해서는 안됩니다. 실패를 마냥 보듬어주어서도 안됩니다. 실패하는 와중에도 한걸음 나아갈 수 있게 해 주어야 합니다.
이런 일련의 일들을 겪고 저녁 때 아이와 또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아이는 오늘의 경험을 통해 배운 것도 많고 오늘은 조금 행복한 날이기도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저에게 기억해달라는 말이 있었습니다.
절대 못하겠다고 말은 하지만 사실 마음 한구석에는 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고.
그 때 자신의 '절대 안해'라는 말을 다 믿지 말고 충분히 기다려 주면 좋겠다고 하더군요.
아차 싶었습니다.
그랬습니다. 아이에게 실패에서 한걸음 나아가기 위해 저는 애가 닳았고
아이를 거기까지 끌고 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아이는 기다림을 바랬던 것이었습니다.
어제는 저도 많은 것을 배운 날이었습니다.
아이가 긴장과 불안으로 주저할 때 저는 기다려주기로 했습니다.
'지금 많이 떨리고 불편한 것 같구나. 엄마가 기다려줄테니 마음이 준비가 되면 시작해보자.
여태 했던 노력을 너 스스로가 잘 알고있고, 그것을 포기하지 않을 아이라는 걸 엄마는 잘 알고 있거든. "
아이는 이 말이 듣고 싶었던 거였습니다.
실패를 두려워하는 엄마는 아이가 실패할까봐 전전긍긍하며
아이 앞에 놓여있는 값진 실패들을 이리 저리 걷어 내어 주고
부모가 만들어놓은 성공의 카펫위에 아이를 세워둡니다.
아이가 살아가며 맞닥들일 수 있는 수많은 크고 무거운 실패들 곁에
늘 부모가 있어줄 수는 없습니다.
어릴 때 하는 실패일수록 결과는 아이의 삶에 큰 영향을 주진 않을 것입니다.
아이가 어릴 때 맛보는 실패의 경험은 아이에게 값진 것입니다.
작은 실패의 경험을 통해 '극복'을 배우게 됩니다.
저 또한 실패를 두려워하는 부모였지만
어제의 일로 실패가 얼마나 값진 것인지.
아이가 겪는 실패의 옆에 어떤 모습으로 있어줘야 할 지 배우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