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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하루 Jan 31. 2024

영양제만큼이나 늘어날 사교육

테트리스 게임의 초고수가 되어야 하나

수액을 두 번 맞았다. 극심한 고열로 시작된 감기몸살이 좀처럼 떨어지지 않아서였다. 덕분에 영양제에 관한 공부도 해볼 수 있었는데 우선 활력을 충전하는 비타민C를 추가적으로 구매해야 했다. 원래는 모두가 알법한 유명한 제품을 먹고 있었는데 가루가 신 것을 넘어 너무 독할 지경이라 손이 안 가기도 했었다. 임산부 안전등급마저 C라니 더 먹을 이유도 없었다.      


내가 구입한 제품은 비타민C 500%에 아연 100%로 면역에 좋아 보였다. 씹어먹는 츄러블 형태인 것도 솔깃했는데 아이도 먹는 제품이라니 일단 맛은 보장되겠다 싶었다. 실제로 맛도 좋았다. 마침 임신 16주를 맞이한 터라 곧 있으면 철분과도 함께 섭취해야 하니 잘됐다 싶었다.     


두 번째 수액을 맞던 날. 의사는 이제 16주이니 철분제를 복용해야 한다며 알렸다. 나는 보건소에서 받았던 종이의 문구를 떠올리며 17주부터 아니냐 되물었다. 의사는 의아한 눈초리를 던졌다. 대체 어디서 그런 소리를 하냐는 말까지 덧붙였다. 보통 기본이 16주라나? 보건소에선 틀리지 말라고 빨간색으로까지 17부터 복용하라 적어놓았던데 국가와 사립병원의 차이가 이런 것인가 싶었다.      



분명 두 기관 모두 전문가의 의견일 터였다. 아마, 공교육과 사교육도 전문가의 의견이 갈릴 것은 자명하다. 병원과 보건소는 1주일이었지만 학원에선 1년은 선행학습을 해야 한다며 광고할 것이다. 왜? 팔아먹기 위해서다. 부모야 학원에 걱정을 떠넘기며 아낌없이 사교육에 돈을 쏟아부을 것이다.     


임산부 영양제도 그렇다. 나라에선 꼭 필요한 영양소인 엽산과 철분을 제공한다. 그런데 산모들은 이걸로 끝내지 않는다. 오메가3와 칼마디(칼슘+마그네슘+비타민D)와 비타민C와 유산균과 종합영양제로 보충한다. 그들도 하나같이 말한다. 필수라고. 대체 필수라는 건 왜 끝도 없는 걸까? 심지어 영양성분이 중복되기도 해 과잉으로 섭취하는 경우마저 흔하다. 나 역시 임산부용 유산균과 오메가3에서 비타민D가 중복돼 잘못 골랐구나 한탄하기도 했다. (비타민D는 수용성이 아니기에 C처럼 과다로 섭취하면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나는 미친 듯이 유산균을 찾아 헤매야 했고, <임신 수유부는 의사와 상의...>같은 문구가 없는 효소로 택했다. 프로바이오틱스 수는 현저하게 줄지만 속이 편하다는 의견이 많아 철분제의 부작용이라는 속 쓰림도 해소할 수 있을 것 같아 차라리 잘됐다 싶었다.      


국가에서 철분을 제공해 주니 거기 맞춰 비타민C와 효소가 필요했던 거다. 솔직히 얻어먹는 주제에 불평인 줄은 안다만 약사가 권했던 엘레뉴2(종합영양제) 같은 제품을 국가에서 제공했다면 어땠을까 싶어지기도 했다. 내가 처음 오메가3를 사려고 하자 약사가 권했던 제품인데, 함유된 성분을 보니 보건소에서 받은 철분이 들어가 있어 사지 않았다. 종합영양제엔 철분도 오메가3도 다 들어가 있다. 나중 가서야 국가에서 받은 것을 써먹기 위해 괜히 내 머리만 싸맸던 것은 아닐까 싶어졌다.     


이미 들어있는 영양소와 중복되지 않는 것을 찾고, 임산부가 가능한 것을 찾고, 그렇게 짜 맞추다 보니 무슨 테트리스 게임을 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게임을 하다 보면 자꾸만 빈 공간이 생기고 내가 어딘가 부족한 것만 같은 느낌을 받게 된다. 어쩌면 사교육 역시 이럴지 모른다. 국가에서 제공해 주는 것들을 취하려면 또 다른 것들을 포기하거나 놓치게 될 수도 있다. 차라리 종합보습학원이 최고였다, 나중엔 그렇게 생각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렇게 해서 지금 내가 먹고 있는 영양제는 효소, 오메가3(+비타민D, E), 철분(+비타민B5, 6, 12), 비타민C+아연이다. 칼슘은 우유와 치즈로 보충하기로 했다. 사교육에 있어선 얼마나 더 많은 시행착오를 기록하며 양을 늘려갈까? 몸만 튼튼하면 된다며 안 시킨다는 주의였지만 남편부터가 태권도와 피아노를 이미 점찍은 상태다. 엽산과 철분처럼 태권도와 피아노는 기본값이 되었다. 그럼 어떤 것을 더 추가하고 빼야 할까? 영양제도 원래 먹으려던 것보다 많아졌다. 펄럭이는 귀를 잡기엔 내 귀가 너무 얇은 모양이다. 


사교육비를 검색하면 아이 나이에 0을 하나 더 붙여야 한다며 아이가 매일 먹는 딸기 한 팩이 그렇게나 아깝다고 하소연하는 사람의 이야기까지 볼 수 있다. 의식주 제공은 부모가 당연히 해야 할 몫인데 우스개 소리일지라도 학원에 돈 쓰느라 먹는 것이 아깝다니 이게 무슨 일일까 어처구니없기도 했다. 이렇게들 키우니 자식에게 "너를 위해서"같은 헛소리들을 지껄이는 것이 아닐까? 사교육비에 쓰는 돈은 다른 누구도 아닌 부모의 선택이다. 노후자금까지 다 털어놓았다면 본인이 못난 것이지 아이의 탓이 아니다. 오히려 아이를 보험으로 여긴 것이라 볼 수도 있다. 아이는 보험도 아니고, 그렇게 해달라고 요구하지도 않았다. 제발 이성들을 찾기를. 이건 나에게 하는 주문이기도 하다.


테트리스 게임은 대체 언제쯤 끝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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