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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하루 Jan 20. 2024

만삭 사진을 거부하다.

배보다 배꼽을 더 크게 만드는 사회


최근 카톡이 왔다. ㅇㅇ스튜디오라는 곳이었는데, 조리원과 연계된 사진관이었다. 조리원을 예약한지 1주일도 되지 않아 찾아온 그들의 연락이었다. 당장 촬영 예약하라는 독촉은 없었으나 그동안 만삭 사진을 찍어온 산모들의 사진을 볼 수 있었다. 나는 계약서를 꺼내고 조리원에 전화를 걸었다.

      

 : 혹시 제가 스튜디오에 개인정보 제공해도 좋다는 내용을 계약서에 썼을까요?

직원 : 아니요. 그게... 만삭 때 사진을 무료로 진행하는데요.     


조리원에선 굳이 하지 않았던 말을 하게 한다.     


 : 어차피 무료 아니잖아요. 액자값이네 뭐네 하면서 돈 들 거 아니에요?

직원 : 혹시 스튜디오에서 연락을 받으신 걸까요?     

 : 카톡 왔어요. 정보가 제공된 거잖아요. 그런 거면.

직원 : 아니요. 아니요. 제가 지금 당황스러운 게 만삭 사진은 원래 30주 이후에 연락을 드려요. 계약서에도 써있는데요. 연락은 30주 이후에 가요. 찍으시길 원하지 않으면 안 찍으셔도 되시고요.

 : 계약서 어디에 써있어요?

직원 : 중간쯤이요.


계약서엔 스튜디오 전화번호와 그 옆에 괄호치고 임신 주수만 적혀있지 연락이 올 거라는 한마디의 말조차 적혀있지 않다.     


: 아! 제가 그 자리에서 안 하겠다는 소리를 안 해서 당연히 개인정보가 빠져나간 거죠?

직원 : 당연히라기 보다는... 원래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선택사항이에요. 너무 일찍 연락을 받으신 것 같은데 왜 미리 받으셨는지 확인해 볼게요.


나는 개인정보가 문제인데 직원은 계속 빨리 연락이 온 것이 문제라고 한다.


 : 어쨌든 제가 미리 안 한다고 얘기 안 한 게 문제였던 거네요?

직원 : 산모님. 저희는 액자값도 성장앨범도요.     

 : 파일값이든 뭐든 받으실 거잖아요.

직원 : 아니요. 저희는 하지 않아요. 


그러면서 뭐가 찔리는지 직원분 본인의 상황을 얘기한다.     


직원 : 저는 전혀 이 스튜디오로 저한테 이익이 되는 게 없고요. 저희가 무료로 해드리기로 했기 때문에 다른 거 더 권하면서 푸시하지 않아요. 절대. 산모님들이 부담 없이 찍으라시라고 안내하는 거고요. 나중에 사진으로 남기면 저희 애들도 그렇고 정말 다들 좋아하더라고요. (영업을 이어간다)

 : 저는 제 개인정보가 베이비 스튜디오에 넘어간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없어요. 32주 36주 써있는 건 저보고 원하면 연락을 하라는 소리인 줄 알았어요. 저는 이미 무료촬영해 준다는 안내를 받았기 때문에 좋으면 연락하라는 소리로 알았고, 연락이 온다는 소리를 전혀 듣지 못했어요.

직원 : 네. 산모님. 죄송하고요. 저희는 이용을 해서 하려는 의도가 전혀 없었고요. 그래도 무료라고 해놓고 가서 유료로 하는 건 일절 없어요. 이건 저와 산모님들 간의 신뢰 문제예요.     


하도 이러시니 검색을 해보았는데 당연히 유료였다. 직원은 죄송하다 하면서도 마지막까지 더 고민해 볼 건지를 묻는다. 나는 답한다.     


 : 안 해요.     


재빠르고 단호했다. 거절은 원래 이렇게 해야 한다. 직원은 거듭 죄송하다 하면서도 또 묻는다. 스튜디오 얘기를. 나는 다시 단호해진다.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걸까?     


솔직히 스튜디오와 조리원의 공생 관계는 비즈니스적 관계로 이해하려 했다. 알아서 자기들끼리 계약을 맺고 하는 관계 아닐까 하고. 그런데 직원분이 묻지도 않은 얘기를 꺼내시니 한 명당 직원에게 수당으로 돌아가는 건가 싶은 생각이 든다. 아니면 조리원의 수당으로 잡힐 수도. 자본주의 시대에 그들의 모습은 노력일지도 모른다. 먹고살아야 하니까 말이다. 그럼 차라리 작은 글씨로 <개인정보 제공에 동의합니다> 같은 글귀라도 넣지 왜 안 넣는 걸까? 그땐 그냥 내가 놓쳤구나 하고 나를 탓하고 말았을 거다.     


사전 웨딩 촬영부터 시작해 사회에선 요구하는 것이 참 많다. 사실 안 해도 되는 것들이다. 그래. 웨딩 촬영은 예쁜 모습이기라도 하다. 그런데 만삭 사진은 배불뚝이 배를 노출하는 사진이다. 예전부터 이걸 대체 왜 찍나 싶었고 돈을 주고 하라고 해도 안 한다. 일당으로 생각한다면 찍을 수도 있겠지만 돈을 받고 하는 일이라면 얼굴과 만삭의 배가 팔릴 것이 분명하기에 그렇다. 너무 싫다.     


개인정보가 아무렇지도 않게 팔려나가는 모습에 문득 사진관에서 온 사진들도 동의 없이 온 것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름이 끼쳤다. 어차피 유료로 찍게 된 사진이 마구 떠돈다니. 참.      


무료라고 하고 가서 100만 원이 넘는 성장앨범을 계약하는 게 조리원 연계 스튜디오의 민낯이다. 배보다 배꼽이 너무 크다. 그런데도 메이크업에 사진까지 찍어놓는 한바탕 쇼를 벌였기에 계약을 안 할 수도 없다. 인생은 한바탕 쇼라던데 그 모습을 '찰칵'하고 찍어주다니. 이거 고맙다고 해야 하나?      


스마트폰 사진 기능도 좋은 시대다. 아이가 백일이어도 스마트폰으로 찍을 거다. 사진관에 가면 파일을 받아 알아서 출력해 준다. 돌 사진 정도는 동네 사진관을 갈 수도 있겠다. (돌잔치는 안 하기로 남편과 합의했다) 딱 거기까지다. 아이는 기억도 못 하는 데다 아이가 가장 힘든 순간이 억지로 연출하는 순간일 것이기에.     


남들이 다 한다고 모든 걸 할 수는 없다. 사진에 포착되는 것만이 현재의 진실이 아니다. 아이와 눈을 맞추며 잘 놀아주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다. 내가 순간에 집중하면 된다. 그 역할은 사진기가 아닌 내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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