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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하루 Feb 14. 2024

시부모님의 실비 보험은 자녀다.

용돈 벌이를 한다고 평일 오전 시간 일을 나가시는 시어머니는 어깨가 안 좋으시다. 근육 뭉침이 심하신 모양이라 한 번씩 정형외과에서 주사를 맞고는 하신다. 이번 명절에도 차례상을 준비하기 전 주사를 맞으셨다며 돈도 비싸다고 한바탕 얘기하셨다. 나는 실비로 청구하셨냐 여쭸다. 시어머니는 답하셨다.     


“나는 실비 보험이 없단다.”     


네? 나는 속으로 난감했으나 그런 분들도 다수 있는 것 같다는 맞장구를 쳤다. 큰돈 들 때 필요한 암보험 같은 것만 해놓고 사는 집도 많지 않냐고 말이다. 시어머니는 암보험은 들어놓으셨다고 하셨다. 솔직히 알아내기 위한 질문이었는데, 해놓으셨다니 천만다행이다 안도했다. 그러면서도 긴급할 때 필요한 의료비를 얼마나 모아 놓아야 하나 착잡해지기도 했다.     


노인의 질병은 암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한겨울이 있는 나라라 눈길에 미끄러지고, 욕조에서 나오다 넘어져 큰 수술을 받기도 한다. 시부모님의 사생활이니 의료비 명목으로 얼마나 모아 놓으셨을지 물어볼 수는 없었다. 그분들이 힘든 순간이 올 때 도와드리는 것이 마땅하다 여기 고만 있다. 초고령화 사회니 치매나 요양병원 비용도 미리 생각해 볼 문제다.      


남편이야 나중에 힘들어지면 집을 팔면 그만이라 하는데 시부모님의 집은 현재 주택연금으로 묶여 있다. 기존의 돈을 갚고 팔면 된다 주장하기도 하지만 그럼 남은 생애의 생활비는 누가 감당할까? 오히려 더 막막해지기만 한다. 그리고 팔아야 한다면 지금 내가 살고 있는 남편의 집을 파는 것이 더 맞는 방법이지 않을까. 시부모님께선 본인들이 모으신 돈의 상당수를 집을 사는데 보태주셨다. 집 대출도 상당하지만 시부모님께 받았던 지원 역시 상당하다. 이러니 팔더라도 그건 남편의 집이 되어야 한다. 원룸에서 세 식구가 살게 될지라도 말이다.     


단순히 받았으니 돌려드리겠다는 의미는 아니다. 시부모님께서는 여러 가지로 마음을 편하게 해 주시는 분들이라 그렇다. 예단비도 얼마 되지 않았고, 혼수도 변변치 않았지만 모두 고마워해 주셨다. 명절에 덜렁거리며 사고나 치는 며느리를 어여삐 바라봐 주시기도 하셨다. 누구네 집 며느리와의 비교도 없다. 기존에 내가 살던 가족의 세계와는 완전 딴판이다. 이전 세계는 건조한 날씨의 살얼음판이었는데 이곳은 꽃이 무럭무럭 핀 봄날의 들판 같다. 참으로 따듯하다.     


가족의 ‘정’이란 이런 걸까? 나를 키워주신 그분께서는 돈만 있으면 자식들이 알아서 들러붙는다고 하던데 지금의 난 그분이 돈을 꽉 쥐고 계시더라도 당신 다 쓰시고 가시라고 얘기하고 싶다. 워낙에 철저한 완벽주의 보험설계사셨으니 간병보험까지도 철저하게 들어놓으셨을 분이라 아무런 걱정도 되지 않는다.     


시부모님께선 남편을 통해 조리원비를 보내주셨다. 아이를 키우며 힘들 땐 언제든지 집에 와도 좋다고도 하셨다. 결혼조차 생각이 없던 어릴 적부터 손주는 절대로 안 봐주겠다던 그분과는 너무나도 다른 반응이셨다. 나 역시 애는 부모가 키우는 것이지 양가 어른이 키우는 것은 아니라 여기지만 말 한마디가 참으로 감사했다.    

 

나를 키워주신 그분께선 워낙 시시때때로 어쩌면 가스라이팅 아닌가 싶을 정도로 절대 손주는 봐주지 않는다는 말을 달고 사셨다. 실제로 내 형제는 단 한 번도 아이를 맡아달라 한 적이 없다. 단 1분도 말이다.     


남편에게부터 받은 시부모님의 돈은 모두 경조사비 통장에 넣었다.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일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내 부모가 아닌 시부모님이시지만 분명한 가족이다. 시부모님의 따듯함 덕에 얼어있던 내 마음이 녹았다. 친척을 비롯한 타인과는 어울리기 힘든 나인데 자꾸만 마음이 가게 하는 분들이다. 새로운 가족에겐 아낌없이 주고받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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