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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하루 Mar 02. 2024

예체능은 죽어도 시켜선 안 되는 걸까.

자식은 꼭두각시가 아니다.


하우스푸어 시절을 거쳐 작은 집으로 이사하며 첫 번째로 한 행동은 어린 시절 받았던 상들을 정리하는 것이었다. 그중 유독 부피가 큰 것이 있었는데, 바로 전국대회에서 받았던 미술 부문 최우수상 트로피였다. 유치부였긴 하나 당시에 그림 그리기를 꽤 좋아했던 기억이 있어 버리면서도 씁쓸함을 감출 수 없었다.      


“이걸 버리려고?”     


내 부모라는 분(이하 그분)께선 쓰레기로 나와 있는 트로피와 그림이 담긴 액자를 보며 한 차례 물어봐 주셨다. 나는 단답형으로 대답한 후 더 이상의 말을 섞지 않았다. 이게 왜 궁금한 건지 도무지 알 수 없어서였다.     

“예체능 하면 집안 기둥뿌리 다 뽑혀.”     


어려서부터 그분께 귀가 닳도록 들어온 소리다. 없는 집이니 예술하겠다는 말은 입밖에도 꺼내지 말라는 멘트도 따라왔다. 이사 온 동네에 일반유치원은 다 마감인 바람에 하는 수 없이 미술유치원을 보냈다는 푸념도 많이 들었다. 그러니 그림이 좋았어도 미술학원 보내 달라는 말은 한마디도 할 수 없었다. 그분의 승리였다.     


그분께선 예체능은 싫었어도 남들 시키는 건 꼭 시키셔야겠는지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피아노학원을 잠시 끊어주시기는 하셨다. 피아노를 하면 머리가 좋아진다는 일종의 미신이 전국적으로 있었던 터라 단지 공부 지능을 높이겠다는 일념 하나로 보내셨을 거다. 그렇게 1년 좀 넘게 배우고는 학습지로 갈아탔다.     


집에 전자 피아노가 있긴 했지만 학원 피아노와 건반의 촉감도 소리도 너무 달랐기에 그만두고는 따로 연습하지 않았다. 나도 내 형제도 더는 치지 않으니 피아노를 내다 버리는 건 너무나 당연했다. 그렇게 그분께서 설계하신 학원들을 다니며 성장할 수밖에 없었는데 여전히 피아노를 치는 아이들을 보며 많이도 부러워했다. 나도 다시 하고 싶었다. 많은 아이들이 그러는 것처럼 취미로 하고 싶었다.     


나는 부러움을 참고 참다 중학생이 되어서야 피아노를 다시 배우고 싶다고 했다. 어디까지나 취미였다. 그분께선 빚에 빚을 내면 가능하겠다며 내 말을 있는 대로 비꼬아주셨다. 나 스스로 무언가를 주장한 게 그때가 처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내게 돌아오는 말은 그것이었다. 나는 그분께 빚을 만들라고 한 적도 없고 집을 넓혀 빚을 늘려달라 사정한 적도 없는데 말이었다.     


그분께선 대입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나와 내 형제를 사교육 학원으로 몰아세웠다. 단언컨대 내가 이 부분이 취약하다며 대입 공부와 관련된 학원을 끊어달라 했다면 기특하게 보며 그 즉시 보내주실 분이었다. 그걸 알기에 더 속이 상했다. 피아노면 나름 건전한 스트레스 해소법이라 생각했는데 나는 그마저도 거부당해야 했다.      


늘 억눌려 있던 내겐 환기할 기회 따윈 없었다. 돈 버는 것도 아닌데 학생이 무슨 스트레스냐 여기실 분이 그분이셨다. 혹여라도 예체능 전공이라도 한다고 할까 무서워 내 의지를 더욱 꺾은 걸지도 모르겠다. 무엇이 됐건 그분은 내 작은 바람 하나마저도 철저히 무시했다.      




아동 청소년 부문의 권위자인 조선미 교수는 어릴 적 딸이 말하는 장래 희망에 대해 하나하나 기특하게 여겼다고 한다.      


딸 : 엄마, 나 피아니스트 될래.

조선미교수 : 기특하네.

딸 : 엄마, 나 의사 될래.

조선미교수 : 그래. 기특하네.     


직업이 무엇이 됐든 다 기특하다고 얘기했다고 했다. 무언가를 원하는 마음을 격려하며 응원한 부모였다는 것이다. 혹자는 이렇게 말할 수도 있겠다. 돈이 있는 부모라 가능하다고. 그런데 꼭 돈이 있다고만 해서 다 이렇지는 않을 거라 생각한다. 이미 본인이 정해놓은 거대한 정답이란 틀 안에 자식을 옭아매야만 하는 부모일수록 말이다.     


그분께선 남들에게 보여주기 좋은 교사 같은 직업을 열망하셨다. 여자는 의사가 될 필요도 없다고 하신 분이시기도 했다. 교사가 되면 의사 선 자리는 자동으로 따라붙는다나? 신붓감 1순위가 교사였던 시절이니 시대상에 맡는 발상이긴 하나 오로지 정답은 그거 하나뿐이었다.     


그러나 시대상은 계속 바뀐다. 곧 태어날 쑥쑥이도 매일 바뀌며 성장해갈 것이다. 해서 나는 쑥쑥이에게 특정 직업을 가지라 권유할 생각이 전혀 없다. 미술이건 과학이건 코딩이건 아이가 좋다 한다면 기특하다 응원해주고 싶다. 우리 집 사정이 엄청 넉넉하진 않지만 예체능을 진지하게 하고 싶다고 한다면 경제 상황을 모두 오픈해 어디까지 지원이 가능한지 차근차근 알려줄 생각이다. (공개가 민망하긴 하나 내 자존심 지키자고 비꼬며 반대할 수는 없다) 대입에 뜻이 없다며 남의 눈에 알바라고 볼 수 있는 일을 하겠다고 하더라도 노동은 신성한 거라 박수 쳐 주고 싶다. 내 멋대로 아이의 의지를 꺾을 순 없기 때문이다. 자식은 꼭두각시가 아니며 언제든 훨훨 날아갈 수 있게 응원하는 역할이 부모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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