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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하루 Mar 18. 2024

결혼식 식대를 내 돈으로 낼 줄이야

당연히 엄마라는 분의 사과는 없었다.

뱃속에서 느껴지는 태동과 함께 요즘 자꾸 옛 기억이 꿈틀댄다. 결혼식 날의 일인데 남편과 공항으로 향하는 와중에 식장 직원으로부터 온 전화가 시작이다. 내용은 혼주님이 식대를 안 내고 그냥 가셨다는 것이었다.   

  

나는 분명 식전에 코로나라 식사 대신 다른 것으로 대체되었으며 값으로 ***만 원이 나왔다고 말했다. 지금의 남편도 함께 있는 자리에서였다. 그러나 돌아온 건 부모가 내지 않았으니 나보고 직접 내라는 것이었다. 나는 하도 기가 막혀 형제와 통화하며 울분을 토했다. 형제는 내가 먼저 지불해 직원이 따로 돈을 요구하지 않은 줄 알았다며 달래주었다.     


하지만 나는 진정하기 힘들었다. 계속해 눈물이 터져 나왔으며 매운 것을 먹으면서도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내 엄마라는 분(이하 그분)께선 식대에 관해 구태여 확인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 분명해서다. 그분이 어떤 분인가. 자식에게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돈을 받아내고야 말던 상전이시지 않는가. 얼마를 원하냐는 말엔 극구 거부하며 “네가 알아서 줘야지.”라는 말만 반복하며 원하는 바를 이룬 분이시지 않은가. 이런 분께서 돈 문제를 이렇게 넘어간다고? 실수가 아닌 고의가 분명해 참을 수가 없었다.     


그래. 그분 입장에서야 결혼 두 달 전부터 돈을 못 받으셨으니 아깝기도 하셨겠다. 내 입장에서야 최대치의 생활비를 드리기 위해 한 투잡으로 몸이 엉망이 돼 수술까지 받아 한 곳을 그만두었던 터라 더 줄 수가 없기도 했지만. 0원의 지원으로 직접 모든 걸 준비했지만 설마 하니 식대까지 낼 줄은 꿈에도 몰랐다. 내 형제의 결혼식에선 철저하게 식대를 계산하셨던 분이시니 입이 아프기까지 하다.     


그나마 한 가지 그분께서 화날 법한 일은 내 아버지란 작자를 청첩장에서 아예 빼버린 것이었는데 설마 이로 인해 오게 될 축의금이 날아가 그게 아까우셨던 걸까? 그러기엔 내 형제의 결혼식에서 그 작자가 한 추태를 생각하면 그건 아닐 것도 같다.      


코로나 결혼식이라 오지 못한다며 받았다는 축의금을 세는 모습을 나는 여러 차례 보았다. 들어온 돈도 많은데 식대 계산까지 안 했으니 엄청나게 남는 장사를 하신 셈이다. 하긴. 자식에게도 평생 장사를 하시고, 거절하니 절대 안 된다며 내 돈으로라도 하겠다는 거짓말까지 하던 분인데.   


 




추후 내 형제는 화해를 도모하고자 그분께선 실은 얼마를 주시려고 했는데 내가 직접 준비하겠다고 해서 주지 못했다는 이야기까지 전해주었다. 내 형제도 참. 말뿐인 말을 믿다니. 나는 본인은 받았었냐 물었다. 당연히 받은 적이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나 역시 마찬가지라 답변했다. 형제는 경우가 다르지 않냐며 본인은 빨리 결혼해 생활비도 드린 적이 없어 그럴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처음 말하는데 너무 안 좋을 때 딱 한 번 돈을 꾸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난 무일푼으로 워낙 일찍 한 결혼인 데다 연체하는 보험료까지 대신 내주던 자식이니 그러셨을 거라는 답은 하지 못했다. 그분께선 미운 놈 떡 하나 더 주는 거라며 내 형제를 챙겼다.     


어차피 피장파장. 형제나 나나 한 푼도 받지 못하고 결혼했다. 나는 식대까지 내 손으로 직접 냈다. 거기에 더해 나중엔 형제의 주선으로 간식까지 마련해 챙겨드렸다. 도저히 직접 찾아가진 못 하겠어서 아예 집들이로 다시 한 만남이었는데 그분의 자세는 참으로 꼿꼿했다. 첫인사처럼 하시던 말도 여전히 귓가에 맴돈다.     


“여긴 부자구야? 평범구야?”     


길만 건너면 나오는 부자구인 걸까 싶어 그것부터 물었던 거다. 나는 부자구가 아닌 평범구라 답했다. 그렇게 간식을 먹고 그분께선 자리를 뜨셨다. 차를 타는 마지막 순간까지 사과는커녕 관련된 언급조차 없었다. 그땐 돈 내라고 할까 저러나 싶었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오히려 너야말로 사과를 해야 하지 않냐 기다리고 계셨을 수도 있을 분이겠다 싶다.     


책임회피의 고단수이신 분이라 생활비를 요구하면서도 “액수는 네가 직접.”이란 말을 달고 사셨고, 그러면서도 적었으면 왜 적냐고 또 한 번 난리를 치셨을 분이다. 자식이 사는 집을 부자구와 평범구로 구분 지은 것처럼 남의 눈과 돈이 참으로 중요하신 분이기도 하다.      


더는 그분의 기준과 평가를 견딜 수가 없다.      


뱃속의 쑥쑥이도 나 같은 판단을 할 날이 오려나 싶은 생각도 안 해본 게 아니다. 보고 배운 데로 따라 할까 너무 겁이 난다. 만약 그런다면 그건 분명 내 잘못일 거다. 아마도 사과를 많이 하며 키우겠지만 그때도 용서를 구해야겠다. 미안하다고. 많이 미안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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