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의 긴 토론을 통해 깨달은 것
수요일 연재를 놓쳤다. 원래 웨딩촬영에 대한 얘기를 써볼까 했었다. 연재를 새롭게 시작한 것도 주기적으로 글을 쓰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놓치다니. 핑계를 대자면 아침부터 투표를 하고, 인테리어 업체와 실랑이를 벌이다 급격한 스트레스로 잠이 들었다. 잠이 깨고선 남편과 가구배치 얘기를 했다. 주제는 곧 집을 키워야 한다는 이사 얘기로 넘어갔다. 나는 좁은 집에 가구를 더 넣는 게 욕심이라면 빚에 빚을 더한 이사는 탐욕일 거라 답했다. 당장의 아이 때야 가능한 방이지만 초등학교 입학 후부터는 침대와 책상, 옷장을 모두 넣기 버거운 방이기에 미래형인 대화이기도 했다.
남편은 우리 부모 세대의 이야기를 했다. 이 나라가 부강해진 것도 계속 더 넓은 집으로 이사하던 우리 윗 세대가 만든 것이라고도 했다. 집을 넓히듯 나라도 커진 거란다. 뭐, 그럴 수도 있긴 하다. 문제는 뱁새가 가랑이 찢어질 정도로 이사해 놓고, 빚으로 생겨난 모든 스트레스를 자식에게 푸는 가정 역시 많지 않았을까 싶은 것이다. 다른 데 갈 것도 없이 내가 살던 집이 그랬다. 나는 칼날처럼 날아오는 부모의 대답에 상처가 날 만큼 나서야 입을 굳게 닫고 살았다. 다 내 잘못이었다. 세상이 신기해 신기하다 말하던 내 입이 문제였다. 내 엄마라는 분(이하 그분)께선 뭐가 신기했건 오직 돈이 없다는 단 한 가지의 답변만을 하셨다.
"뭐는 없니? 돈이 없지."
지금 생각해 보면 뭐라도 사달라 할까 싶어 그랬을까 싶지만 나는 소비를 원한 적이 없다. (당연히 뭘 사달라 한 적도 없다. 중학생 때 겨우 피아노를 배우고 싶다고 한 것 정도가 유일하다.) 더군다나 풍경 좋은 파란 하늘을 보며 신기하다 했을 때도 같은 답변을 받았다. 하늘이 파래 신기하다고 한 것마저 그분의 한숨을 유발하니 무슨 얘기를 할 수 있었을까?
나는 하우스푸어가 되는 것이 두렵다고 했지만 남편은 그렇다고 현재에만 만족하면 발전이 없을 거라 했다. 나는 애는 누가 대신 키워주냐며 당분간 일할 수 없다고 했지만 아껴 모으면 되지 않느냐가 남편의 주된 말이었다. 나는 빚에 빚을 더해 집을 키우고 아이에게 교육으로 올인할 거냐 했지만 남편은 그 정도로는 시키지 않겠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좋은 직장에 다니게 하려면 어느 정도는 시켜야 하지 않냐고 했다. 좋은 직장이 대체 뭔데?
나는 직업에 귀천이 있는 거냐 물었고, 남편은 귀천은 없으나 연봉의 차이는 있다며 연봉이 높은 직장이 좋은 직장이라고 했다. 그러니 아이가 공부를 싫어할 땐 좋은 직장에 가야 하니 해야 한다고 가르쳐야 하지 않겠냐고도 했다. 나는 학교라는 사회에서 끊임없이 들어 부모가 보태지 않아도 스스로 알 것이라고 했다. 이미 세상까지 그런데 부모까지 보태야 되냐며 그렇게나 공부가 필요하다면 본인이 하고 싶은 걸 하기 위해선 공부가 유리하다 정도로는 말할 수 있겠다고 했다. 남편은 그것을 뜬구름 잡는 이상론이라 했다. 나는 남편의 말이야말로 아이에겐 너무 먼 이야기라 와닿지 않을 수 있다고도 했다. 그저 학교와 똑같은 말을 또 하는 것일 뿐이라고 말이다. 우리는 합의점이 없었다.
나는 아이를 너무 얕보지 말라고도 했다. 아이는 이미 안다고 말이다. 남편은 그런 아이는 극소수라며 영재를 바라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했다. 내가 바라는 게 정말 영재일까? 아이는 이미 알지만 불안하기에 부모에게 물을 수 있다. 그런데 부모가 학교와 똑같은 말을 한다면? 기계도 아닌데 기계처럼 복사 붙여 넣기 형태의 답변만 한다면 더 묻고나 싶을까?
예상처럼 되지 않는 것이 세상이라지만 쑥쑥 자라나는 아이는 원하는 게 계속 바뀌지 않을까 싶다. 남편의 말처럼 게임만 하고 싶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을 수 있겠지만 그럴 땐 운동이라도 시키고 싶다. (이 얘기엔 남편은 그럼 몸 쓰는 일 시킬 거냐고 했다) 무조건적인 게으름을 방지하며 성실성은 유지시키고 싶어서다. 이게 정말 이상론일까?
정말이지 우리에게 없는 건 돈보다 창의력 쪽이지 않나 싶다. "공부 왜 해?"라는 물음에 답할 수 있는 말이 고작 '연봉 좋은 직업' 그거 하나일까?
연봉 좋은 직업을 폄하하겠다는 뜻이 아니다. 공부란 앎으로 나아가는 방향이기에 하는 것이지 않나 싶은 것이다. (남편은 그것을 독서라 칭했다) 구태여 더 보태자면 공부를 잘할수록 당당해지고 선생님들과 친해져 사회성이 늘 수 있다 정도로도 말할 수는 있겠다. 그렇지만 모든 아이들이 공부를 잘할 수는 없다는 말도 덧붙이긴 할 거다.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아이가 당연히 있기에.
자정이 넘도록 이어진 남편과의 입씨름을 통해 오늘도 배웠다. 나는 아직 멀었구나 하고. 아이의 말에 또 남편의 말에 어떻게 답변해야 좋을지 천천히 더 고민해야겠다. 교육 관련 책이라도 읽어 공부(독서?)해야겠다. 어쩌겠는가. 부족한 내 창의력을 탓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