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반짝그녀 Dec 07. 2023

클레이 대신 '유토'를 줍니다

2023.12.05. 우당탕탕 육아일기

"지퍼 닫았어야지!"

매일 잔소리했던 것 같다. 활짝 열린 지퍼백과 일부 딱딱해져 버린 천사점토나 클레이를 보며 '저게 얼만데'하는 마음으로 속 쓰린 한탄이 새어 나왔다. 다섯 살부터 시작된 딸의 클레이 사랑은 대단했다. 클레이를 가지고 노는 것에도 스타일이 있겠지만 우리 딸은 섬세하고 알록달록하게 만드는 것을 즐기기보다 손에 쥐는 촉감을 사랑했다. 한 번 클레이를 가지고 놀기 시작하면 조물조물 한 자리에서 30분 이상 만지작거리다가 놓지 않고 돌아다니며 딱딱해질 때까지 손에 쥐고 생활했다. 나머지 클레이는 지퍼백 속에서 굳어갔다. 조금이라도 굳은 느낌이 나면 그 클레이는 가차 없이 버려졌다. 쫓아다니며 지퍼백에 담아주고 여기저기 두고 다닌 클레이 덩어리를 수집하는 것은 어미의 몫이었다. 촉감 놀이로 아이의 정서를 좋게 해 준다더니 클레이 이 녀석! 어미의 정서는 열이 난다. 



이즈음 내 눈에 들어온 것이 '유토'다. 유토는 찰흙 색깔의 점토다. 클레이보다 약간 덜 부드럽지만 체온이 닿을수록 말랑말랑 느낌이 좋다. 엇보다 실온에 내놓아도 굳지 않아 보관이 쉽다. 색깔이 알록달록 하지 않아 화려한 표현을 좋아하는 아이들에게는 칼라가 있는 유토를 주면 좋다. 하지만 촉감을 즐기는 우리 딸 같다면 흙색 기본 유토에도 대만족이다. 유토의 브랜드에 따라 손에 기름기가 많이 남거나 특유의 냄새가 있는 제품이 있다. 개인적으로 '만지락 유토'가 가장 좋았다.(광고 아님) 버켓, 바구니 등 뚜껑 없이도 보관할 곳만 주면 계속 가지고 놀 수 있다. 굳지 않는 유토로 인해 나의 뚜껑 노이로제는 해결되었다.


컬러 유토도 굿! (출처: 이야코 유토)



그런데 노이로제가 시작된 사람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우리 남편이다. 헨젤과 그레텔처럼 집안 여기저기 유토 덩어리가 돌아다니는 것을 보기 힘들어했다. 굳지 않으니 아이가 여기저기서 신나게 가지고 놀게 되고 아빠 눈에는 여기저기서 굴러다니는 유토 조각이 거슬렸다. 처음에는 "잘 치워야지!" 하는 잔소리였는데 어느 순간 "이렇게 하면 못 가지고 논다"하는 협박으로 변했다. 물론 딸아이는 아빠의 말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유토가 조금씩 사라지기 시작했다. 잔소리에 지친 남편이 청소하면서 말없이 한 조각, 두 조각 버린 것 같다. 그렇게 한 동안 딸아이도 모르게 유토는 우리 집에서 눈에 띄지 않게 되었다. 



"플리즈"하며 뭔가 부탁할 때 딸의 표정은 거절하기 어렵다. (출처:영화 슈렉)



어젯밤 "엄마! 유토 주세요" 딸이 명랑한 목소리로 마치 잊고 지냈던 친구의 안부를 묻듯 명랑하게 말했다. 순간 망설여졌다. '어떻게 없앴는데, 또?' 하는 표정으로 흔들리는 눈동자의 남편 얼굴이 보였다. 나도 그 얼굴을 보니 순간 당황했다. 하지만 아이들이란 흘리는 것이 본능인데, 이를 빌미로 놀이의 기쁨을 빼앗을 수는 없다. 이때 나의 발 빠른 움직임이 필요하다. 새 유토를 꺼내주며 책상에 찰흙도구를 세팅해 줬다. "OO아! 우리 유토는 여기서 가지고 놀고 통에 넣고 일어나자! 유토 규칙이다!" 딸은 오랜만에 만난 유토에 신나서 규칙을 적극 받아들인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남편 표정도 조금은 풀어졌다. 내가 조금 더 부지런히 움직이고 규칙을 지키도록 도와줘야지. 딸의 정서도 중요하지만 가족 구성원으로서 남편과 나의 정서도 중요하니 말이다. 아이와 부모, 우리는 오래 볼 사이니까 적당한 타협은 늘 필요해. 유토 재밌게 가지고 놀렴!






매거진의 이전글 우당탕탕 가정예배, 그 서막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