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아홉 살인 첫째가 다녔던 유치원은 잠실에 있었다. 오후 3시 이후면 아이들이 훅 줄어들었는데 이유는 유치원 아이들이 학원에 갔기 때문이다. 태권도, 피아노, 연산, 미술, 축구, 수영 등등. 유치원 인근 놀이터가 한산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 그럼에도 학원을 보내지 않았다. 학원에 다니는 것이 아이에게 에너지 소모가 크다는 생각이었다. 아이의 생활이 루즈하게 흘렀음 싶었다. 그런 나도 1학년 입학 후 학습적인 뭔가를 조금이라도 시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원생'이 아닌 '학생'이니까.
한동안 집공부 한 시간 사수를 위해 아이와 큰 씨름을 했다. "공부 싫어!"라고 외치는 아들을 보며 '내가 잘하고 있는 걸까?'라는 의심과 불안이 마음 끝에 대롱대롱했다. 1~2학년은 놀아야지 싶다가도 요즘 차고 나가는 아이들을 보면 그 어렵다는 '기본'은 해야 할 것 같았다. 그러면서 계속 붙잡으려 노력하는 것은 아이의 관심사다. 팽팽 놀게는 못해줘도 좋아하는 것에 몰입하는 기회는 주고 싶었다. 최근에는 때늦은 '미니특공대'-유치원 애들이 좋아한다고 반에 가서는 자신이 미니특공대 팬임을 숨긴다고..-에 빠져있었다. 나무위키에서 미니특공대를 검색해서 책처럼 인쇄해 주니 열심히 본다. "우리 미니특공대 유튜브 만들까?", "미니특공대 책 하나 만들어보자!" 하며 제안도 해본다.
아홉 살들이 가득한 나의 교실의 아이들은 유난히 집중을 어려워한다. 2학년 교과 내용을 한 번씩 훑고 온 아이들은 더욱 그렇다. 그런 아이들이 오늘 수업에 꽤나 열심이었다. 바로 나의 관심사를 조사하고 발표하는 수업이었다. 각자 관심 있는 것을 고르고, 생성형 AI 뤼튼 프로그램을 통해 조사했다. 발표문을 작성하고 연습했다. 이틀에 걸친 준비 이후 드디어 오늘이 발표날이었다. 랜덤 제비 뽑기 프로그램으로 순서를 정하고, 책상을 교실의 사이드로 밀어둔 뒤 의자를 둥그렇게 놓고 앉았다. 아이들은 조금은 긴장했고, 들떴다.
마인 크래프트, 브롤스타즈, 야코런 등의 게임과 강아지, 고양이 등의 동물을 주제로 한 아이들이 있었다. 또 3D펜, 유튜브, 아이브 포토카드 등 취미와 관련된 주제도 있었다. 피아노를 선택한 아이는 피아노를 처음 만든 사람과 건반이 처음에는 모두 하얀색이라는 사실도 알려줬다. 또 젤리, 휴대폰, 우리나라 등 생각지 못한 주제도 있었다. 아이들이 각자 자신의 주제를 자랑스러워하는 느낌을 받았다. 듣는 아이들도 서로 다른 주제로 지루할 틈 없이 새로운 정보를 얻었다. 3교시 동안 이어진 제법 긴 발표 시간 동안 평소보다 훨씬 집중하는 모습이었다.
최근 <임파워링>이라는 책을 읽었다. 아이들이 놀라울 에너지를 발휘할 어떤 주제를 파고드는 경험이 인생을 바꿀 수 있다는 것과 함께 우리의 교육이 바뀌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아이가 관심 있는 주제를 파고들 때 그 아이의 파워는 놀라울 정도로 강해진다는 것이다. 좋아하는 것을 하는 사람은 '돈 주고 시켜도 못한다'는 행동을 할 때가 있다. 오늘의 발표 수업으로 아이들에게 관심사가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금 느꼈다. 어느덧 하고 싶은 것보다 해야 하는 것에 익숙해진 내가 아이를 관심사 쪽으로 밀어주는 것을 잘 해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