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de b Vol 2. 더피커: 송경호 공동대표
브랜드 언박싱(brand unboxing)은 브랜드를 만드는 사람들의 다양한 관점과 생각을 기록하는 인터뷰 프로젝트입니다. 브랜드 언박싱의 뒷면, side b는 성수동에 색을 입히고 이야기를 채워가는 로컬 크리에이터들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인스타그램(@thepicker)을 보니, 더피커를 ‘제로 웨이스트 라이프스타일 플랫폼’이라 하시더라고요. 어떤 의미인가요? 더피커에 대해 소개 부탁드릴게요.
더피커라는 이름은 ‘수확하는 사람이 되자’는 의미에요. ‘까다롭게 보는 사람들(picky pickers)’이라는 중의적인 표현으로도 볼 수 있고요. 저희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는 ‘소비문화 회복’이에요. 환경을 회복할 수 있는 역량을 가진 주체, 즉 소비자, 생산자, 정책 입안자가 스스로 변화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조력자가 되는 것을 미션으로 삼고 있어요. 이를 실현하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는데요. 성수동에 더피커라는 제로 웨이스트 샵을 운영하는 동시에 기업, 공공기관 등 여러 단체에 자문을 하거나 교육, 컨설팅 등도 하고 있습니다.
8년간 더피커라는 이름으로 환경 회복을 위한 작지만 완결성 있는 사례들을 만들어 왔어요. 그동안 경험으로 더피커가 만든 생애 주기 기준에 따라 여러 주체가 소통하거나 개인 또는 단체에도 행동의 전환을 이끌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플랫폼’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기 시작했고요.
제로 웨이스트라는 개념이 낯설게 느껴졌던 2016년부터 매장을 시작하셨어요. 더피커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재활용하기 위해 세척하고 포장을 분리하는 과정까지 보면 쓰레기를 버리는 일은 굉장한 노동집약적 행위예요. 맨 처음엔 ‘구매할 때부터 포장이 최소화될 순 없을까?’ 하며 포장이라는 키워드에 관심을 두게 됐어요. 관련 법령과 제도를 공부해보니 포장하는 과정 자체도 큰 사회적 문제를 만들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죠. 이전에는 소비자 권리에 관심이 많았는데, 환경을 회복하기 위해 ‘소비’라는 행위를 수단으로써 바라봐야 한다는 생각의 전환을 하게 됐어요.
당시 한국에서는 제로 웨이스트를 인터넷에 검색해도 결과가 나오지 않을 정도로 인지도가 낮았어요. 우연히 독일에서 ‘오리지널 언패키지드(오리기날 운페어팍트, Original unverpackt)’라는 이름으로 포장 없이 진열해놓고 판매하는 활동을 알게 됐죠. 한국에 그대로 적용하기에는 문화적, 제도적 문제가 있어 여러 가지를 보완해 시작한게 2016년, 더피커의 출발이었어요.
사람들의 인식과 사회적 분위기도 많이 바뀐 것 같은데요. 대표님이 체감하시기엔 어떤가요?
지금은 사회적으로 제로 웨이스트에 대해 공감하는 분위기가 많이 형성된 것 같아요. 특히 기업이나 공공기관에서 교육이나 자문을 요청하는 경우가 늘면서 생산자(기업)와 정책 입안자(정부)가 제로 웨이스트 키워드를 가치 있게 생각하고 있음을 체감하죠. 고객도 마찬가지고요. 실제로 제로 웨이스트 문화를 적용해 보려는 주체들이 많아지고 있다고 느껴요.
그동안의 경험으로 더피커가 만든 기준은 무엇인가요?
제로 웨이스트 샵 운영에는 물건을 진열하고 판매하는 것 외에도 뒤에서 해야 하는 활동들이 참 많아요. 단순히 ‘포장을 하지 않았으니 놓고 팔아도 되겠다’가 아니에요. 생산 단계에서부터 폐기물 발생이 혁신적으로 적은지 확인하고 소분 포장 없이 근거리로 유통하는 일부터 포장 없는 판매가 법적으로 가능한지, 또 포장 없이도 훼손 없이 진열하는 것도 고민해야 해요. 이어서 고객이 물건을 오래 사용할 수 있도록 돕고, 버려질 때 자원 순환될 수 있도록 하는 것까지 전 과정에서 제로 웨이스트 가치를 점검해야 하죠. 그래서 물건이 만들어지고 쓰레기로 버려지는 전 과정, 생산-유통-판매-사용-폐기 이 5단계가 사람이 태어나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서사와 닮아있다 생각해 ‘물건의 생애주기’라 정의했어요. 더피커는 물건의 생애주기 안에서 조력자의 역할에 중심을 두고 소비자, 생산자, 정책 입안자 등 역량 있는 주체들이 소통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나 콘텐츠를 만들고 있어요.
듣다 보니 대표님이 왜 소비라는 키워드에 집중하셨는지 궁금해져요.
세상에 다양한 사회 문제가 많지만, 환경 문제만큼은 어느 한 명도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어요. 그런데도 환경을 지키는 활동을 외주를 주듯 누군가에게 맡기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모두가 환경의 수혜를 100% 받으며 살아가는데 지키는 사람, 어기는 사람이 따로 있는 걸까? 싶었죠. 열정적인 활동가도 당연히 있어야 하지만, 허들이 낮은 방식으로 누구나 실천할 방법을 알려주는 존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소비 행동에 초점을 맞춰 환경에 유효하게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고민하기 시작했어요.
대중적으로 많이 알려지긴 했지만, 이제 막 제로 웨이스트에 관심을 가지고 실천하고자 하는 분들이 소소하게 시작해볼 수 있는 활동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여러 가지 방법들이 있겠지만, 먼저 자신의 일상을 기록해보시길 제안해 드려요. 가계부나 소비 일지와 같은 것들이 아니어도 괜찮아요. 기록은 일상을 돌아볼 수 있는 제일 간소하고 좋은 방법이거든요. 오늘 하루 나의 일상을 기록해보면 누구에게 물어보지 않더라도 스스로 쉽게 알 수 있어요. 무엇을 사야 하고 어떤 것을 바꿔야 하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말이죠.
처음 성수동에 더피커를 오픈하신 계기도 궁금해요.
2015년 말쯤 성수역, 뚝섬역, 서울숲을 쭉 둘러봤어요. 주택가 주변에 아늑한 카페 한두 곳이 있고 문방구 앞에서 막걸리를 드시는 어른들도 있더라고요. 그 분위기가 정말 따뜻했어요. 보다 보니 동네 주민 간의 공동체 문화, 유대 관계가 형성되어 있더라고요. 당시 제로 웨이스트 활동이나 메시지가 생소했던 터라 작은 변화를 시작해보기에 성수동이 적합해 보였어요. 골목 골목마다 서로 소통하고 있으니 사람들이 더피커라는 가게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제로 웨이스트라는 문화에 어떤 부담을 느낄지, 또 어떤 계기로 부담을 극복하게 될지를 시시각각 볼 수 있을 것 같았죠. 그래서 비어있는 주택 한 곳을 개조해 더피커를 오픈하게 됐어요.
2016년 첫 매장을 시작으로 성수동에서만 네 차례 이전 오픈하셨어요. 그동안 성수동의 변화를 쭉 지켜봐 오셨을 텐데요. 대표님이 체감하시기에 성수동의 가장 큰 변화는 무엇인가요?
가장 크게 체감하는 건 아무래도 더피커에 더 많은 분들이 찾아오신다는 점이예요. 매장은 고객과 직접 만나는 공간이기 때문에 다양한 분들이 찾아오신다는 것은 참 즐거운 일이죠. 예전에는 평소 아는 분이나 분명한 목적이 있는 분들만 오셨다면 지금은 그냥 편하게 구경하러 오는 분들이 많아졌어요. 우연히 더피커를 방문한 분들을 만나고 공간을 설명해드리는 게 좋아요.
성수동을 떠나지 않은 특별한 이유가 있으신가요?
다양한 목적으로 성수동에 오시는 분들이 많을수록 저희는 좋아요. 더피커를 통해 제로 웨이스트 소비가 주류까지는 아니더라도 평범한, 일상적인 소비 방법이라 여겨질 수 있으면 좋겠어요. 또 여기저기 옮겨 다니는 것보다 한자리에서 메시지를 꾸준히 전하는 게 존재감을 키우는 관점에서도 좋고요. 그리고 성수동에서는 다양한 개성을 가진 브랜드들을 많이 만날 수 있어요.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저희도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그럼 이번에 네 번째 매장을 오픈할 때 특별히 신경 쓰신 점이 있나요?
더피커 네 번째 공간은 ‘제로 웨이스트 문화의 확장’이라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제로 웨이스트에 대한 인지도가 높아졌지만, 여전히 무포장, 플라스틱 없는 물건을 사는 행위로 한정 해석하는 경우가 있어요. 이렇게 되면 이 문화를 확장하기 어려워지거든요. 예를 들어 포장 없이 샀으니 마음에 안 들면 버려도 된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물건인데도 다 버리고 새로 시작해야 한다고 접근하는 경우도 있고요. 이런 문제가 발생하는 이유는 제로웨이스트의 맥락이 모두 끊어져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긴 흐름에 따라 이해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자 했어요.
제로 웨이스트 문화 자체를 확장하면 소비자, 생산자, 정책 입안자 관점에서 모두 실천할 수 있는 행동들이 정말 많아요. 이번 매장에서는 제로 웨이스트라는 가치를 충분히 경험할 수 있도록 구성하는데 집중했어요. 공간에 가드닝 섹션을 만들어 씨앗을 심고 수확하고 요리하는 경험이 모두 제로 웨이스트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고, 물건 생애주기에 따라 생산, 유통, 판매, 사용, 폐기를 모두 경험하고 확장할 수 있도록 했죠. 물건을 수리할 수 있는 도구도 판매하고 있고요.
전에는 사람들을 초청해 이러한 가치를 알리는 강연 형태로 진행했었다면, 지금은 저희가 도슨트처럼 같이 둘러보면서 공간의 기획 의도와 메시지를 설명하고 있어요. 매월 2-3회 정도 진행하고 있고, 학교와 같은 단체에서 문의해와 별도로 운영하고 있기도 해요.
더피커를 운영하시면서 대표님만의 개인적인 목표도 있으실 것 같아요.
언젠가부터 미세먼지나 기후 위기 때문에 예쁜 하늘을 보는 게 쉽지 않아졌잖아요. 물론 하늘을 넋 놓고 볼 여유가 없는 것도 있겠지만요. 그래서 기후 위기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고 우리가 기여할 수 있는 아주 작지만, 완결성 있는 사례를 많이 만든 후 죄책감 없이 하늘을 바라보고 싶어요.
앞으로 더피커가 어떤 브랜드가 되길 바라시나요?
제로 웨이스트 숍으로서 규모가 너무 커진다면 메시지를 진정성있게 발신하기 어렵다고 생각해 조직을 작은 규모로 유지하고 있어요. 하지만 기업이니 성장을 고민하지 않을 순 없어요. 그래서 단순히 제로 웨이스트 숍을 넘어, 생산을 하지 않고도 자본이 교환되는 라이프 테크 브랜드가 되고 싶어요. 예를 들면 교육을 한다거나, 수리해주는 사람과 소비자 간의 장을 마련하는 것처럼요.
라이프 테크 브랜드로 거듭나기 위해 지금 시도하고 계신 것은 무엇이 있을까요?
생산과 판매, 소비 과정에서 작지만, 완결성을 만드는 사례를 만들고 싶어요. 낡거나 고장 난 물건들을 버리지 않고 계속 사용할 수 있도록 ‘수리’와 관련한 생활 기술 플랫폼을 론칭하려고 준비 중입니다. 현재는 플랫폼화 전 월드비전과 연계한 베이크VAKE라는 앱으로 생애주기탐험대라는 클래스도 테스트 운영 중이에요.
마지막 질문입니다. 이 글을 보시는 분들께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이 콘텐츠를 읽고 제로 웨이스트를 처음 알게 되신 분도 있을테고, 이에 대해 자기만의 생각을 갖고 계신 분도 있을 것 같아요. 모든 분들이 아주 작게라도 일상에 쉽게 적용해볼 수 있는 제로 웨이스트 경험을 만들어보시기를 바랍니다. 아는 것과 실천하는 것은 완전히 다르니까요. 알고 있음의 상태와 적용하고 있음의 상태 사이에는 온도 차가 있어요. 알고 있음의 상태가 오래 고착되면 실천하고 있음으로 잘못 인지하기 십상이거든요. 그 전에 아주 작게라도 실천해나가는 경험을 해보셨으면 좋겠어요.
더피커, 서울 성동구 왕십리로 14길9, 1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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