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치료할 수 없는 후시딘과 떼어지는 밴드
보건실에 앉아있으면 100m 밖에서부터 아이들이 걸어오거나 뛰어오는 소리가 들린다.
원래 청각이 뛰어난 편이 아니었는데, 보건교사가 된 후부터 청각이 특출나게 발달했다. 복도를 저벅저벅 걷거나 헐레벌떡 뛰는 발소리는 보건실에 들어올 애고, 수업이 끝나는 종이 친 직후에 친구들끼리 웅성거리며 보건실 앞을 걷는 발소리도 보건실에 들어올 애들이다. 이 확률은 거의 99.9%의 확률로 맞다.
아이들 중 대부분은 넘어져서 피가 나는 상처를 치료하러 온다. 어떤 아이는 현미경으로도 보이지 않을 상처를 보여주며 심각하다고, 응급실에 가야겠다고 말한다. 어떤 아이는 피부가 움푹 파인 채로 피가 철철 흐르는데 의연하게 들어온다. 이런 상처는 보통 아스팔트나 모래에 넘어졌을 때 생긴다. 그러면 나는 말한다.
“세족대에서 다친 곳을 씻어! 그래야 감염이 안 돼. 그리고 선생님이 소독하기 쉬워.”
아이들이 모래와 피를 씻어내면 다친 부위에 후시딘을 바르고 밴드*를 붙인다. 누가 봐도 완벽하게, 더 이상 다칠 틈은 없다는 듯이, 지금 이후로 상처를 치료하지 않아도 될 만큼 꼼꼼히. 1시간 뒤 아이들은 다시 달려와 외친다.
“선생님! 밴드 떨어졌어요. 다시 붙여주세요.”
처음엔 별말 없이 붙여주다가 수십 명이 그러기에 언젠가 애들을 붙잡고 물어보았다.
“대체 (밴드가) 언제 떨어지는 거야?”
애들은 동그란 눈을 깜박이며 말했다.
체육 시간에 땀 흘리면 떨어진다고, 혹은 그냥 걸어 다녔는데 떨어진다고, 아니면 너무 아파 다시 치료받고 싶어서 떼어 낸 거라고.
여유 없던 신규 시절에는 마지막 말을 듣고 조금 화가 났다.
이미 치료받은 걸 다시 치료받으면 아픈 게 사라지나? 적어도 소독할 때 아프다고 움직이지 않으면 처치하는 시간이 줄어들 텐데. 안 그래도 코로나 업무 숙지하고 완벽하게 처리하기도 힘들단 말이야.
그렇게 속으로만 생각하며 “…그런 이유가.”라고 대답했다. 생각한 그대로 말하면 집에 가서 말할까 봐 무서웠기 때문이다.
임용고시 면접준비를 하면서 후시딘과 밴드 같은 보건교사가 되겠다는 멘트를 작성한 적이 있다. 누구나 예상하듯이 후시딘처럼 학생들의 모든 상처를 치유하고 밴드처럼 아픈 곳을 감싸주는 보건교사가 될 거란 뜻이다. 완벽하게 모범적인 답안이다. 어느 순간에나 친절하고, 큰 리액션을 보여주면서 다친 곳을 걱정하며, 늘 웃고, 모두에게 먼저 다가가 선을 베푸는 그런 보건 선생님. 학교에서 꼭 후시딘과 밴드 같은 존재가 되어야지……
라고, 보건교사가 되기 전에는 그렇게 다짐했다. 상처를 만만하게 본 결과였다.
사회생활이라곤 학교생활과 간단한 아르바이트 말고는 해 본 적이 없던 시절, 후시딘과 밴드는 상처를 낫게 만드는 간단하고 편리한 의약품이었다. 상처가 어떤 식으로 생겼는지 혹은 치유가 어떤 과정으로 이루어지는지는 관심이 없었다. 단지 바르면 낫는다는 효능만 기억했다.
상처는 찰과상, 절상, 열상 등 여러 종류가 있다. 또한 상처가 생기면 뚝딱 낫는 게 아니라 [지혈기-염증기-증식기-재형성기]라는 단계를 거쳐야 치유된다. 후시딘을 이루는 퓨시드산 나트륨은 이토록 복잡한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여러 성분으로 이루어져 있을 것이다. 밴드 또한 마찬가지다. 이런 사실은 생각하지 않고 이미 완성된 ‘후시딘과 밴드’가 되기를 원했으니. 이는 상처를, 그리고 삶을 만만히 본 결과다. 그 누구도 혼자서 후시딘과 밴드가 될 수 없다.
이제는 누군가 ‘후시딘과 밴드를 활용해서 되고 싶은 교사상을 말해보세요’라고 묻는다면 이렇게 답할 것이다. ‘후시딘과 밴드에 담긴 성분 중 하나가 되겠다’고.
학교에 계신 모든 선생님은 후시딘과 밴드가 될 성분이다. 완성되지 않은 그들이 모여 상처가 있는 아이들과 함께 할 것이다. 어쩌면 선생님들이 만나 후시딘이 된다 해도 어떤 상처는 치유하기 힘들 거고, 밴드가 되어 여러 번 덧댄다 해도 떨어질지 모른다.
그러나, 선생님들은 ‘치료할 수 없는 후시딘’과 ‘떼어지는 밴드’가 되더라도 늘 아이들의 상처에 붙어있다. 교사가 되기 전에는 그 마음을 월급과 사명감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아주 적은 경력을 지닌 지금은 두 단어로 설명할 수 없음을 안다.
업무 분장으로 어른들에게 상처받았던 날, 보건 수업 시간에 큰 소리로 인사하고 질문에 유쾌하게 답변하여 기운을 차리게 해 주었던 아이를 잊을 수 없다. 경미한 염좌가 의심되어 병원에 보낼지 말지 확신하지 못한 채로 병원에 보낸 다음 날, “선생님 짱이에요! 선생님이 어제 병원 보내줘서 살았어요. 아니었으면 병원도 안 갔을걸요.”라고 말하던 아이를 잊을 수 없다. 해준 것도 없고, 나눈 거라곤 대화 몇 마디밖에 없는데 “선생님, 내년에 학교 떠나요? 안 떠나실 거죠? 가지 마요.”라고 붙잡아주던 아이들도 잊을 수 없다. 그러니까, 알게 된 것이다. 교사와 학생은 서로를 불완전하게 치유하는 관계라는 걸.
나는 이제 완벽할 수 없음을 온전히 믿는다. 학생도, 교직원들도, 학생을 사랑하는 사람들도, 우주에서 살아가는 존재라면 완벽할 수 없다. 그래서 치료를 수도 없이 원하는 아이들에게 더 이상 화가 나지 않는다. 예의 없이 말하는 아이들에게도, 여러 번 말하는데 들은 체하지 않는 아이들에게도 그렇다.
단지 믿을 뿐이다. 내가 만나는 아이들만큼은 모든 존재가 불완전하다는 사실을 온전히 믿는 사람이 되기를. 그 믿음을 그대로 세상에 돌려줄 수 있는 어른이 되기를.
그리고, 우리 아이들의 제일 가까운 곁에 있는 어른이, 이 믿음을 돌려줄 수 있는 사람이기를…… 간절하게 바랄 뿐이다.
* 작은 부위면 슈퍼포아, 넓은 부위일 때 메딕스(4호)를 애용하는 중이다.
** 후시딘 이미지는 동화약품 홈페이지에서 저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