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마다 중2 아들을 깨우고 학교를 보내는 것이 나에게는 미션 같다. 큰 소리를 내지 않고 아들을 깨우고 싶지만 매일 아침 참패한다. 부드럽게 세 번 깨웠는데도 일어나지 않으면 여지없이 큰 소리를 낸다. 화를 참지 못하는 내가 한심스럽기만 하다.
아들은 일어나자마자 어깨와 등을 나에게 들이밀었다. 긴 머리를 말리느라 나의 얼굴과 목은 땀 범벅이 되었지만 묵묵히 주물러 주었다. 월요일 아침 나는 매우 분주한데, 몸이 찌뿌둥한 아이의 움직임은 내 마음과는 별개로 매우 더디다. 엄마가 회사에 지각하든 말든 천천히 양치하고 옷을 갈아입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속에서 천불이 올라온다. 지킬박사와 하이드처럼 매일 아침 나의 감정은 지치지 않고 널뛰는 향단이 같다.
학교로 이동하는 차 안에서도 어깨와 등이 아프다고 하길래, 공부하다가 도저히 못 참겠으면 조퇴하고 병원에 가보라 했다. 몸도 아픈데 설상가상 아침부터 엄마의 잔소리 폭격을 들었으니 아들 마음은 꽤 서러웠을 것이다. 아들의 얼굴에 서운함이 비치니 나 역시 마음이 편치 않았다.
아들을 학교 앞에 내려 주면 나는 다시 직장인 모드로 돌변한다.오전에 있을 임원 미팅을 생각하니 벌써 머리가 지끈거렸다. 월요일 출근길은 유난히 더디다. 머리로는 임원의 예상 질문을 추리고 눈으로는 앞차와의 간격을 주시하면서 옆 차선으로 끼어들었다.
오전 임원 미팅을 무사히 마치고 부서장들과 함께 점심을 먹었다. 실장님 산하 5명의 조직장은 서로 경쟁하며 협력하는 관계다. 그들과 나누는 즐겁고 가벼운 점심 수다가 출근 전쟁의 기억을 잠재운다. 긴장을 녹이는 소중한 시간이다.
오후 회의 중에, 학원에 있는 아들에게서 전화가 왔다. 어깨와 등은 괜찮아졌는데 이제는 머리가 아프단다. 결국은 집으로 가겠다고 말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 본인이 아픈 것을 알려주려고 전화했단다. 학원 선생님에게 연락받으면 엄마가 놀라지 않겠느냐면서….
회의 중에 짧게 전화를 받은 것이어서 ‘아프면 또 연락하겠지’라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회사 일을 하다 보면 집안일은 잊기 십상이다. 오늘따라 연달아 회의가 개최되었다. 나 역시 쉼 없는 회의로 지쳐갈 때쯤, 아들에게서 다시 전화가 왔다. 머리 아픈 것은 나았는데 이제는 눈이 아프단다. 인공눈물 약을 사러 약국에 왔는데 결제할 카드를 안 가져왔단다. 핸드폰에 아들 이름이 뜨자마자 반사적으로 회의실을 뛰쳐나왔으나, 사실상 전화 받자고 나올 상황은 아니었다. 의사결정을 위한 회의였고 내가 아무리 부서장이라도 해도 회의 참석에 대한 기본 매너가 있어야 했다. 예전 같았다면 회의 중에 사적인 전화를 받으러 회의실을 나간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어떻게 하겠다는 거야?” 다급한 마음이 앞서니 결론부터 물어봤다.
“눈이 아픈데, 카드가 없어서….”
아들은 무언가를 더 말하려고 뜸을 들이는 듯했으나 나는 여유가 없었고, 내 눈은 이미 회의실 안에 있는 화이트보드에 가 있었다.
“눈이 아파서 집에 가겠다는 거야?” 다소 퉁명스럽게 물어보았다.
엄마랑은 더 이상 대화를 못 하겠다고 판단이라도 한 듯이 목소리에 기운이 빠진 채 아들이 말했다.
“아니, 버틸 때까지는 버텨보려고”
아들과 어떻게 통화를 마무리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전화를 끊자마자 나는 바로 회의실로 쏜살같이 들어갔다.
회의를 다 마치고 나니 그제야 아들 눈이 걱정되었다. 아들에게 연락했더니 받지 않아서 학원으로 직접 전화를 걸었다. 때마침 원장 선생님이 받으셨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윤이 엄마입니다. 아까 윤이가 눈이 아파서 약국에 갔는데 돈이 없어서 약을 못 샀다고 해서요….”
“네, 안 그래도 학원 왔을 때부터 머리가 아프다고 했어요”
원장 선생님의 말씀을 들으니 아들과의 오후 통화가 떠올랐다.
“선생님, 죄송한데요. 인공눈물 약 사서 윤이에게 좀 전해 주실 수 있을까요?”
“가능합니다. 1층이 약국이니깐 사서 줄게요. 염려 마세요. 어머님”
저녁 8시가 넘어서 하원 문자가 날아왔다. 아들에게 전화하여 엄마가 학원으로 데리러 가겠다고 했더니, 걸어서 갈 테니 괜찮단다. 눈은 어떠냐고 물으니 좋아졌다는 짧은 대답뿐이다. 원장 선생님이 인공눈물 약을 주셨냐고 물으니 되려 그걸 어떻게 아냐고 되묻는다. 엄마가 부탁했다는 말에 아들은 ‘엄마! 고마워’라며 공치사까지 잊지 않았다.
눈이 얼마나 아팠으면 인공눈물 약에 저리도 고마워할까, 싶어 마음이 짠해졌다. 학원에 가서 아들을 데려온 후 한우를 굽고 며칠 전부터 먹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던 순댓국도 끓였다. 한 그릇 맛있게 먹더니 인공눈물 약을 건네며 내 무릎 위에 눕는다.
“약 좀 넣어줘.”
눈 끝을 살짝 잡고 약을 몇 방울 넣어주었다. 나는 아까 전화했을 때의 상황을 조심스럽게 물었다.
“눈이 아파서 정신이 없었어. 카드가 없으니깐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 핸드폰으로 계좌 송금을 하면 되는 거였는데, 그 생각이 약국에서는 전혀 안 떠올랐어. 그래서 엄마한테 전화한 거야.”
그래. 그렇지. 자식은 다급할 때 부모를 찾지.
아플 때 찾는 사람이 진짜 의지하고 의존하는 사람인데 그게 엄마였구나, 라는 생각에 미치자, 미안함이 급물살 되어 한참이나 마음을 때렸다.
“네 전화를 집중해서 들었다면 계좌 송금 방법을 알려줬을 텐데…. 미안하다. 엄마가 회의 중이어서 정신이 없었어. 눈이 얼마나 아팠니?”
“원장 선생님이 주신 약을 넣었더니 그다음부터 괜찮더라고. 화장실에 가서 눈에 수돗물도 넣어봤는데, 효과가 없었어.”
눈이 얼마나 따끔거렸으면 궁여지책으로 수돗물까지 넣었을까.
오후의 시간을 복기해 보았다.
‘어차피 전화 받으러 회의실을 박차고 나간 것이니 마지막 통화에서 1분만 아들의 말에 더 집중할 걸….’
후회가 밀려왔다. 요즘은 직장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지만 불과 5년 전까지만 해도 회사에서 자녀들과 자주 통화하면 일에 집중하지 않는 사람으로 치부되었다. 조직장들은 여성들이 일에 몰입하지 못한다며 대놓고 남성 직원 선호를 정당화하기도 했다.
나 역시 직장생활 27년 동안 회사에서 아이들 전화를 받기 시작한 지 2년이 채 되지 않았다. 그전에는 돌봐주는 이모님이 계셔서 나에게 전화 올 일이 많지 않기도 했지만 일에 집중하다 보면 전화가 오는지도 모르고 넘기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부재중 메시지를 보고 몇 시간이 지나서야 화장실에서 전화를 걸던 기억이 있다. 나는 의도적으로 사무실에서 전화를 받지 않았다. 말도 안 되는 편견에 여지를 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아픈데 함께 있어 주지 못할 때 직장맘은 괴롭다. 그러나 회사 일을 멈추고 업무 시간 중에 집으로 뛰어가기란 쉽지 않다. 일에 과몰입하여 살다가 아이들에게 신경을 더 써야겠다고 마음먹은 데는 달라진 회사 분위기가 한몫했다. 무엇보다 내가 열심히 일하는 이유가 가족임을 명확히 깨달았기 때문이다. 가족과 행복하게 살기 위해 일을 하는 것인데 현재의 행복을 나는 너무 미루고 있었다.
그런데 이 결심도 실천하기가 만만치 않다. 예전 못지않게 일의 양이 많고 게다가 자녀들 학원과 학업을 챙기다 보니 체력적으로 지쳐 나갔고 작은 사이즈의 번아웃도 여러 번 왔다. 일과 가정을 병행하기가 쉽지도 않을뿐더러 그럭저럭 잘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도 늘 새로운 변수가 생기곤 했다.
여러 번의 번아웃을 겪고 나서 깨달은 것이 있다. 직장맘은 힘든 게 디폴트라는 불편한 사실이다. 조금만 편하게 살고 싶다고 생각하는 순간, 불행이 시작된다. 직장맘의 일상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나 자신을 응원하는 마음이다.
‘잘 하고 있어’.
‘너의 스타일 대로 자녀를 사랑하고 챙기면 되는 거야’
’남들처럼 안 해도 괜찮아’
몇 달 전, 아들에게 엄마의 장점이 뭐냐고 물어봤다.
“엄마는 잘못을 빠르게 시인하는 편이지. 우리 마음을 읽어주려고 노력하고.”
무심한 듯한 중2 아들에게서 이런 말을 들었다고 하면 주위 사람들이 많이 놀란다.
“중2가 엄마 질문에 대답했어? 그것도 엄마 장점을 2개나 이야기 해줬어?”
‘대화가 통하는 부모’가 내가 추구하는 가치다. 미안할 때 미안하다고 말하고 잘 못했을 때 잘 못했다고 말했을 뿐인데, 아들과 나 사이에 블루 사인이 되었다니 반가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