팽팽한 긴장을 내려놓고 얻은 평온과 감사의 풍경
언제부턴가 마음에 품게 된 질문이 하나 있다. “이 일이 죽고 사는 문제인가?”라는 물음이다. 치열한 조직 생활의 현장에서 30년 가까이 몸담아온 내게 이 질문은 일종의 마음의 쉼표다. 정교한 논리로 상대의 빈틈을 메우고 싶을 때, 혹은 상황이 내 뜻대로 풀리지 않아 조급함이 명치끝까지 차오를 때, 이 질문을 던지면 신기하게도 팽팽하던 마음의 줄이 조금 느슨해진다.
돌이켜보면 나는 ‘그냥 넘어가는 것’이 참 힘든 사람이었다. 입사 초기부터 반복적인 훈련을 통해 몸에 익힌 습관 때문이었다. 군더더기 없는 논리적 문장을 쓰고, 명확하게 커뮤니케이션하며, 적합한 근거를 제시하는 것이 리더의 유능함이라 믿었다. 어떻게 하면 상대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으면서도 샤프한 질문을 던질지 연구하고 또 연구했다. 질문은 소통의 도구였고, 논리는 나의 강점 중 하나였다.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해야만 조직에서 제 역할을 다하는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나이 오십을 넘기며 이제야 조금씩 배우고 있다. 논리적으로 따지고 합리적으로 생각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다. 때로는 알면서도 슬며시 눈감아주고, 모르는 척 넘어가 주는 여유가 정교한 논리보다 훨씬 큰 울림을 준다는 것을 깨달아가는 중이다. 사실 우리가 마음을 다치면서까지 지켜내야 할 ‘죽고 사는 문제’는 인생에서 그리 많지 않다. 대부분은 시간이 지나면 흐릿해질 찰나의 장면들일 뿐이다.
심리학에는 ‘인지적 구두쇠(Cognitive Miser)’라는 개념이 있다. 인간의 뇌는 에너지를 아끼기 위해 가급적 복잡한 생각을 피하려 한다는 이론이다. 젊은 날의 나는 타인의 오류를 찾아내 바로잡는 데 많은 에너지를 쏟았지만, 이제는 그 에너지를 나 자신의 평온과 타인을 향한 환대를 위해 아껴두려 한다. 물론 수십 년간 몸에 밴 습관을 하루아침에 바꾸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여전히 불쑥 예리한 시선이 고개를 들 때도 있지만, 그럴 때마다 ‘그럴 수도 있지’라며 마음을 달래는 연습을 하는 중이다.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