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펜실베이니아 주립대(University of Pennsylvania)의 탐 보르코벡 연구진이 ‘사람들이 하는 고민’에 대해 연구와 실험을 토대로 발표한 바에 따르면 걱정의 79%는 실제로 일어나지 않고, 16%의 고민은 실제 발생하더라도 미리 준비하면 대처할 수 있다. 나머지 5%는 사람의 힘으로는 도저히 대처할 수 없는 천재지변 같은 경우다.
생각을 전환해 보자. 확률 80%는 상당히 높은 수치다. 내가 하는 걱정의 79%는 실제로 일어나지 않는다고 하니 미리 하는 걱정은 생산적이지도 않고 이득도 없다. 나는 문제 해결력이 좋다는 말을 종종 듣는다. 고백하건대 과거의 나는 걱정을 사서 하는 편이었다. ‘예측’ 혹은 ‘시뮬레이션’이라는 단어로 포장하면서 나 자신을 들들 볶았다. 미리 준비하면 실제 상황이 발생했을 때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다는 이유로 말이다. 일정 부분 수긍이 가고 타당하기도 하다. 그런데 우리는 진지하게 구분할 필요가 있다. 79%에 해당하는 사서 하는 걱정인지, 16%에 해당하는 진짜 걱정인지 말이다.
사무실은 파티션으로 구분되어 있다. 의자에서 일어서면 전체 30명 이상의 팀원이 컴퓨터 모니터를 보고 있는지 자리를 비웠는지 한눈에 보인다.
A 팀원이 내 책상 옆쪽에 앉아 있는 부장 자리로 오전 내내 들락날락하는 경우가 있다. 무엇인가에 대해 상의하는 소리가 나에게도 들린다. 뭔가 문제해결 속도가 더디고 삐걱거려 보여도 나에게 직접 보고가 오기 전까지는 아는 척하지 않고 기다리는 편이다. 예전에는 문제가 빠르게 해결되지 않을 조짐이 보이면 그 즉시 해당자들을 부르곤 했다. 과거에는 팀원의 문제를 해결하고 병목현상이 발생하지 않도록 도와줬는데 요즘엔 나에게 보고하지 않는 한 먼저 나서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팀원도 부장과 힘을 합쳐 문제를 해결할 수 있고, 또한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다만 조그만 불씨가 큰 화재로 번져갈 것 같은 징후를 느끼거나 보고할 타이밍이 훌쩍 지났음에도 보고가 없다면 호출을 감행한다.
실제 상황이 벌어졌을 때 유연하게 대처하기 위해 자주 걱정하고 변수를 고려 했는데, 요즘엔 현실로 닥치기 전까지는 미리 걱정하지 않으려고 애쓴다.
걱정을 사서 하는 것도 어찌 보면 습관이기에, 고치려고 한다면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작년 봄, 산부인과에 갔다가 예정에도 없던 조직검사를 받았다. 의사는 혹시 암일지도 모르니 검사를 해 보자고 제안했다. 검사 결과가 나오기까지 4~5일 동안 아주 심란했다. ‘아무 일 없을 거야’를 수없이 되뇌어 보아도 일하는 중간중간 불현듯, 집에 가서 아이들을 보아도 불쑥불쑥 걱정이 엄습했다.
의사가 오라고 한 날보다 하루 먼저, 그것도 아침 일찍 병원으로부터 문자가 왔다.
‘검진 결과가 나왔습니다. 내원하여 상담받으시길 바랍니다.’
예정된 일자보다 하루 먼저 문자가 오니 걱정이 날개를 달았다.
사무실에 도착하여 급한 업무를 처리하고 병원으로 갔다. 가슴을 졸이며 진료 순번을 기다렸다. 진료실로 들어가자마자 의사 표정부터 살폈다. 무덤덤해 보였다.
‘걱정한다고 걱정이 없어지면 걱정이 없겠네.’
티베트 속담처럼 걱정한다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며칠간 걱정만 이고 지고 있었지 딱히 내가 한 일이라고는 없었다.
“다행히 암은 아니에요. 정기적으로 추적 관찰합시다.”
가족과 3박 4일로 해외여행을 떠나는 당일 새벽, 불현듯 지난 금요일 퇴근 무렵에 부장이 나에게 토로한 고민이 떠올랐다. 잠에 빠진 아이들을 깨우고 새벽 6시까지 공항에 도착해야 하는 그 분주한 시간에 하필 그 고민이 떠오를 게 뭐람.
내가 신입사원 면접이 있어 연수원으로 출근했던 날, 팀원 A가 부장에게 일이 많고 힘들다며 인사 상담을 했다고 한다. 내게 보고하는 부장에게서 팀원 A를 염려하는 마음은 찾아볼 수 없었다. 팀원 A로 인해 일부 팀원들이 더 불편해한다면서 부장은 팀원 A에 대해 부정적인 말로 일관했다. A는 다른 부서에서 우리 부서로 전입한 지 3개월이 되어 간다. 최근 들어 컨디션이 안 좋아 보였고 통화 중에 언성이 높아진 적도 몇 차례 있어, 몇 주 전부터 부장에게 뭐가 힘든지 도와줄 부분은 없는지 관찰하라고 지시했었다. A의 인사 상담은 어느 정도 예상했었다.
“부장님, 마음에 다 맞는 동료는 어디에도 없어요. A가 타 부서에서 와서 업무가 익숙지 않잖아요. 주변 동료들과의 허니문 기간도 끝났으니 힘들 수 있어요. ”
"그렇죠. 그런데 A를 챙겨 주는데도 자꾸 힘들다고 하니, 챙기는 직원들도 좋은 감정이 아닌 것 같아요."
"모든 부서가 사람 부족하다고 하는 마당에 A보다 더 나은 사람을 받을 수 있다는 보장도 없잖아요. 부장님이 좀 더 관심을 두고 팀원 서로가 밍글(mingle) 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생각해 주세요."
지난 금요일 위와 같이 일단락한 미팅이 떠오르자 나의 고질병, 급한 성격이 고개를 들었다. 나는 부장에게 예약 카톡이라도 보내놓을까 고민하다가 이내 마음을 고쳐먹었다.
부장더러 아이디어를 생각해 보라고 했으니 기다리는 게 현명하다. 진지하게 고민한 상태에서 내가 의견을 보태면 부장의 수용성이 올라가 대화가 잘 풀릴 수도 있다. 그런데 안건에 대한 진지한 고민 없이 미팅하게 되면 팀장이 건네는 의견을 지시나 명령으로 인식하기 쉽다. 시킨 대로만 하게 될 테니 부장은 자율성과 유연성을 발휘하기 어렵다. 부장이 고안해 낼 아이디어가 효과적이어서 일이 잘 풀릴 수도 있는 일이다. 내가 할 일은 기다리는 것이다. 부장에게도 생각해 보라고 했으니 고민할 시간을 주고 기다리는 게 팀장의 언행일치다. 급한 성격에 문제를 빨리 해결하고 싶은 마음만 앞세우는 것은 나의 리더십에도 부장의 책임감 형성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나에게 기다림은 일종의 훈련 같다.
한 달 전, 초등학교 5학년 딸이 학교 방송부 면접을 보고 와서 떨어질까 걱정을 많이 했다.
“엄마, 정말 정말 방송부에 합격하고 싶어. 그런데 면접이 엄청 어려웠고 압박 질문도 많았어.”
“초등학교 6학년이 5학년한테 압박 질문을 해?”
“응. 그리고 5학년 담임선생님들도 다 참관하셨어. 선생님들이 계시니깐 더 긴장되더라.”
방송부 면접 내용을 내게 말하면서 흥분에 쌓여 있었고, 합격에 대한 열망이 간절해 보였다.
“진아. 엄마는 네가 무척 자랑스러워. 네가 하고 싶은 것을 도전했잖아. 그 자체가 멋진 거야.
합격하면 좋겠지만, 이번에 안 돼도 괜찮아. 용기가 없어서 시도조차 안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엄마! 무슨 말 하는 거야. 합격 안 돼도 괜찮다니? 나는 방송부에 들어가고 싶다니깐! 그런데 경쟁률이 3:1이었어. 휴…. 우.”
“아직 발표 안 났잖아. 발표 전까지 ‘떨어지면 어떡하지?’ 걱정하지 말라는 의미로 말한 거야. 그리고 합격 여부를 떠나서 네가 원하는 것에 도전했다는 거 자체가 너무 멋지다고.”
내 말의 진의를 진즉 이해했으면서도 딸은 불안해서 그런 건지 내 말을 못 알아들은 사람처럼 대꾸했다. 그러고는 두 손 모아 내 앞에서 기도했다. “붙게 해주세요!”
합격 발표까지는 며칠이 남았다는데, 딸아이는 매일 걱정했다.
“엄마, 나 안 되면 어떡하지?”
“미리 걱정하지 마. 잘될 거야. 잘된다고 생각해야 잘될 확률이 높아져”
이런 대화가 매일 한 차례 이상 반복되었다.
그로부터 1주일 후,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는데 딸의 전화가 왔다. 목소리가 엄청나게 상기되어 있었다.
“엄마, 나 합격했어. 수업 끝나고 담임 선생님이 방송부 면접 본 사람들 다 교무실로 오라고 하셨고 합격자 2명이라고 하시면서 내 이름을 부르셨어. 나 너무 좋아서 소리 지를 뻔했다니깐.”
“너무 좋은 소식이다. 축하해.”
고대 그리스 스토아 학파의 대표적인 철학자인 에픽테토스는 ‘우리의 힘을 넘어서는 일은 걱정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는 일어난 일이 아니라 일어난 일에 대한 자신의 생각때문에 걱정한다’ 라고 말했다.
완전히 공감한다.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하고 실행하는 경우에만 걱정은 걱정다운 걱정이 된다.
Key Message
1. 걱정의 79%는 실제로 일어나지 않는다.
2. 걱정을 사서 하는 것도 병이다.
3.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하고 실행하는 경우에만 걱정은 걱정다운 걱정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