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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망고 Aug 19. 2023

인대가 파열되고 나서 보이는 세상

한 달 전 인대가 파열되었다.      


정확히 말하면 전거비인대가 파열되어 발목에 깁스하고 

목발을 짚고 다니는 상태이다.      


인대가 파열되게 된 이유는 아주 사소하다.           

퇴근 후 글을 잘 쓰고 싶어, 회사 근처 아트센터에서 

글쓰기 수업을 듣고 있는데 (정확히는 영화 비평문 쓰기 수업)

각자 써온 비평문을 돌아가며 읽는 시간이었다.      


익숙하지 않은 장르의 대만 영화였고,

심지어 난 영화가 잘 이해되질 않아 숙제도 하지 못한 채 갔는데     

숙제를 해온 분들의 비평문을 들으며 ‘글을 참 잘 쓴다. 나는 왜 안되지?’

라는 생각에 좌절하곤     


수업 후 

건물에서 주차장으로 내려오는 컴컴함 밤에 

딴생각을 하다 계단을 헛디뎌 ‘쿵’하고 넘어졌는데 

넘어지는 순간부터 발목에서 ‘뚝’ 소리가 나더니 

이건 정말 못 일어나겠다 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5분 정도 땅바닥에 주저앉아 있다가 

다리를 질질 끌며 가까스로 주차장에 있는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와 겨우 잠을 청했다.      


다음날,

보통 약하게 발목을 삐었으면 자고 일어나면 괜찮아지는데 그렇질 않아 

동네에서 나름 유명한 정형외과를 가서 X-ray를 찍었고 

발목 인대가 나간 것 같다며 좀 더 정확히 MRI 결과를 보자고

하시길래 촬영해 보니      


판독 결과 

전거비인대 완전 파열, 전/후하경비인대 파열로 

인대 3곳이 파열되었다.      



그래서 시작된 목발, 깁스 생활 

열흘간은 남아있는 휴가로 버텼으나 

언제까지 회사 출근을 미룰 수만은 없는 일이라 

8월부터 출근하며 회사에 다니고 있다.    


  

걷고, 헬스장에서 땀 흘리고, 돌아다니는 등 움직이는 것을

삶 최고의 재미로 삼았는데, 하루종일 의자에 앉아 있으니 엉덩이만 무거워지고 

움직이질 않으니 소화도 잘되질 않았다.           



부상 후 첫 출근 하는 날,

지하 주차장에서 로비로 올라와 사원증을 태킹 하는 게이트를 통과하고

다시 사무실이 위치한 15층까지 가서 자리에 앉는 등 

엘리베이터를 타고 평지를 다니는 길이지만 


깁스한 한쪽 다리를 들고 목발에 의지한 채 두 손과 한 발로 

움직이는 것도 만만치 않게 되었고, 

이제 계단은 나의 가장 큰 적이 되었다.      


점심을 먹으러 구내식당에 내려가려면 로비에서 계단으로 가야 하는데 

(물론 엘리베이터가 있긴 하나, 화물용으로 한참을 돌아가야 한다) 


도저히 목발을 짚고 갈 수가 없어 

이 와중에 배는 또 고프니 

매번 점심을 후배들에게 부탁하여 구내식당에서 간편식으로 만든

샐러드를 가져다 달라고 해야 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 한번 가기도 영 불편해 

참고 참다가 겨우 가는 게 일상이 되었다.      


처음엔 불편하고 답답함에 눈앞이 캄캄해져 

우울감이 차오르기도 했는데

그래도 뭐 언제까지 우울한 생각에 좌절할 수만은 없는 노릇이고

이왕 이렇게 된 거 살면서 이런 경험도 있는 거라 여기며

목발 짚고 다니는 두 달을 최대한 곱씹으며 느껴보려 하고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오른발이 아닌 왼발을 다쳐서 운전은 할 수 있고

손이 아닌 다리를 다쳤기에 앉아서 일상생활 하는데

전혀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한편으론

작년, 올해 나름 좋은 일들이 많이 있어서 

운을 끌어당겨 쓴 건가 싶을 정도로 마음이 붕~ 떠 있던 상태였는데 

이렇게 잠시 눌러주고 가는 것도 다음 도약을 위해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더 안 좋은 일을 막기 위한 액땜한 셈 치려고 한다.           



또한, 

이렇게 다치고 나니 고마운 사람들이 더 잘 눈에 들어오기도 한다.      


커피머신에 가기조차 힘들어하는 나를 위해 매일 아침 커피를 가져다주는 선배, 

점심 먹으러 구내식당에 가지 못하는 나를 위해 간편식을 가져다주는 후배들, 

아플 때는 잘 먹어야 한다며 간식을 싸주거나 배민 쿠폰 등을 보내주고

움직이지 못해 심심할까 봐 자리에 와서 얘기해 주는 동료들 등 

고마운 마음 이루 말할 길이 없다.      


이 고마움을 잊지 않고 차차 갚아나갈 것이며, 

그간 바쁘게 사느라 잊고 지내던 것들도 돌아보며      

이 또한 성장하기 위한 또 다른 기회라 여기고 

최대한 긍정적으로 남은 한 달을 지내볼까 한다.      



왜 그런 말도 있지 않은가?      


“모든 역경을 걸림돌이 아니라 나의 발전을 위한 디딤돌이다.”


다리부상으로 알게 된 타인들의 배려심과 사회적 약자에 대한 새로운 시선 등을 통해 

나 자신이 더욱 성숙하는 시기가 될 것이라 믿는다.                         



작가의 이전글 브런치에 다시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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