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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망고 Sep 29. 2023

엄마가 회사를 그만두면, 넌 예중을 다닐 수가 없어

어려서부터 미술을 좋아했던 첫째 딸은 애니메이터가 되고 싶은 꿈을 지닌 

초등 6학년 학생으로 예술중학교 입시를 준비 중이다.     


추석 연휴에도 아침 9시부터 저녁 9시까지 미술학원에서 손에 물집이 잡히도록 그림을 그리며, 

자신의 꿈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이공계를 졸업하였지만 전공과는 무관한 전혀 다른 일을 하는 엄마는 

어려서부터 꿈을 찾은 딸이 마냥 기특하고 부러워 그녀의 꿈을 적극적으로 지지해주고 싶은 마음이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예술을 하는 자식을 키우는 건 그만큼 돈이 많이 들어간다는 이야기다. 

일반 중학교보다 비싼 학비에 훨씬 더 비싼 학원비, 재료비와 더불어 종일 학원에 있으니 식사비, 

기타 등등 생각지도 못한 비용이 여기저기서 빠져나가고 있다.      


다행히 우리 부부는 맞벌이하고 있으며, 빚은 있지만 집도 있고 

매달 나가는 대출이자도 있지만, 아직은 이런저런 비용을 감당할 여유가 있는 편이다.           

하지만 언제까지 여유 있을 수 있을지에 대해선 늘 불안함이 있다. 

우리는 둘 다 40대, 아이 둘은 아직 초등학생이며 회사를 언제까지 다닐 수 있을지도 모르겠고

아이들이 중, 고등학생이 되면 지금보다는 훨씬 많은 교육비가 들 텐데 감당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갑자기 남편의 생각이 궁금해졌다.

남편에게 우리 가족의 미래를 온전히 맡기고 의존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가장인 남편이 어떤 계획이 있을지 알아보고 싶었다.      


“여보, 내가 회사를 그만두면 앞으로 어떻게 할 거야?”라고 물었고    

 

말이라도 

“나만 믿어”까지는 아니더라도 


“이런저런 계획이 있으니 걱정하지 마.” 

정도는 얘기해 줄 거로 예상했다.      



하지만 그의 대답은 예상을 뛰어넘은 놀라움이었다. 

내가 회사를 그만둔 즉시 딸에게, 

“OO야, 엄마가 회사를 그만두어서 넌 이제 예중을 다닐 수가 없어.”     

라고 이야기하겠단다.      


예술중학교 입학시험을 2주 정도 남겨두고 있는 딸에게

아침 9시부터 저녁 9시까지 그림을 그리느라 손에 물집이 생겨도 

병원 갈 시간이 아까워 병원도 가지 않겠다는 아이에게 

그런 말을 하겠다는 당신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러는건지? 부성애는 있는건지?' 의문이 들었다.      


내가 이상주의자인지, 그가 너무나 현실주의자인지 모르겠지만

그의 답변을 듣고는 실망감에 다시는 이런 질문은 하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또 하나, 내 딸의 꿈은 내가 지켜야 한다는 단전 속 끓어오르는

각오가 용솟음치며 앞으로 나가야 할 방향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된다.     

 

남편은 이런 내 마음을 노린 것일까?     



시어머니는 남편의 이런 반응을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해 

명절 부침개를 부치며 이 에피소드를 말씀드렸다. 

(시어머니와 난 사이가 좋은 편이며, 손녀를 사랑하는 마음이 가득하고

미술을 잘하는 손녀를 너무나 자랑스러워하시는 분이시다.)


“어머 어머, 걔가 왜 그런다니? 

OO에게 진짜 그렇게 얘기해 보라고 하지 그랬니? 애가 왜 그렇게 단순하다니?”     

라며 본인 아들이라 무조건 편 들어주지 않고, 펄펄 뛰는 모습에 그나마 작은 위안을 얻었다. 


현실적으로 어려울 수는 있겠지만 최선을 다해 딸의 꿈을 지원해주고자 하는 

내 마음을 인정받은 것 같은 기분이라 그런 듯하다.           



또한, 구체적인 대안없이 현실적인 상황만 이야기만 하는 남편이 어이없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고마움을 느낀다. 

내가 회사를 열심히 다녀야 할 이유를, 열심히 일해야 할 이유를 다시 한번 상기시켜 줘서.     

 

'내 딸의 꿈은 내가 지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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