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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농암 Jan 11. 2023

제멋대로 해석해 본 시 몇 편

인간과 자연에 대한 사랑. 나를 둘러싼 인간사회와 자연을 타자화하든 동일시하든. 사랑의 시작과 끝에서, 그리고 그 연속성에서 오는 환희와 기쁨, 달뜸. 이별의 슬픔과 고통, 상처, 아쉬움과 그리움. 우윳빛 안갯속을 걸어가듯 명료하지 못한 복합적이고 다층적인 심상을 다 표현하기에 우리말은 너무도 부족하였다. 그리하여 시어(詩語)가 탄생하였으니, 아마도 시인의 입에서 나온 말은 선문답으로 메아리치는 절(寺刹)의 언어와 다르지 않았으리라. 이제 다시 생각해 보니 시를 잘 쓸 수가 없었다. 그 이유를 어렴풋이나마 알게 되었으니, 그것만으로도 「평생 간직하고픈 시」를 읽은 보람이 있다. 시를 잘 쓰고 싶다면 인간과 자연을 무한정 사랑하고 볼 일이다.  

       

<영남알프스 중 겨울 운문산에서>

   

 시를 읽고 독후감이나 감상문을 써보는 건 처음 있는 일이다. 어떻게 써야 할지 종잡을 수 없었다. 그냥 새로운 시도를 해보기로 한다. 형광펜으로 밑줄 그으며 읽었던 시구에 대한 감상을 되뇌어보고 싶었다. 그때 살짝 메모라도 해뒀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매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 보리라.(황동규, 즐거운 편지 중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은 인간의 일상을 존재하게 만드는 매우 중요한 일이지만, 매일 반복적으로 일어난다는 점에서 그저 평범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특히 짝사랑하는 그 사람의 배경으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은, 그 사람에게는 사소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그 사소한 매 순간에도 그 사람을 오랫동안 바라보고 있었으니, 그 사람의 고통까지 그리워 아니할 수 없지 않겠는가. 

        

<한여름 낙동강의 저녁놀>

                                                   

달이 떴다고 전화를 주시다니요…사무쳐 오는 이 연정들을 달빛에 실어 당신께 보냅니다(김용택, 달이 떴다고 전화를 주시다니요 중에서)

 환한 달을 보고, 달빛에 비친 그림자를 보고서 저 달을 미워하거나 누군가를 원망하는 사람은 드물지 않은가. 초승달부터 보름달까지 기울고 차는 모양새를 지켜보면서 행성의 자전과 공전을 말하는 사람은 또 적지 않은가. 달로 인해 연상된 그 사람에게 나도 모르게 그렇게 되었다고 시를 지어 보내면 어떨까.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윤동주, 별 헤는 밤 중에서)

 오리온 성단, 카시오페아, 마차부, 북두칠성, 북극성. 별자리와 계절과 이름만 생각했다.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이 가을로 가득 차 있고,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헤일 듯하다가, 쉬이 아침이 온다는 이유로, 내일 밤이 남았다는 까닭으로, 아직 청춘이 다하지 않았다는 핑계까지 끌어와 무수한 별들에 하나하나씩 아름다운 이름을 불러 보겠다는 시인 앞에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너에게 가지 않으려고 미친 듯 걸었던 그 무수한 길도 실은 네게로 향한 것이었다…나의 생애는 모든 지름길을 돌아서 네게로 난 단 하나의 에움길이었다.(나희덕, 푸른밤 중에서)

 네이버 길찾기를 하고, 내비게이션 설정을 해보고, 티맵 추천 경로를 안내받고. 무조건 단거리로 어쨌거나 짧은 시간에 도달하기에 바쁜 물리적 거리. 한 사람이 또 다른 한 사람에게로 온전히 가는 길은, 시간도 거리도 중요하지 않고, 그 한 사람의 전 생애에 걸쳐 천천히 그리고 할 수 있는 한 모든 풍경을 거쳐야만 이를 수 있는 에움길.         


<임랑해수욕장 일출>

                                                     

인생은 외롭지도 않고 거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하거늘 한탄할 그 무엇이 무서워서 우리는 떠나는 것일까(박인환, 목마와 숙녀 중에서)

 새해를 맞이하고 달력의 첫 장에 한해의 모토(motto)를 적었다. 인생 별거 없다. 그냥 재미있게 살자. 재미있게 사는 방편으로 정신적‧신체적 강건함, 새로운 경험, 꾸준한 일을 또 적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인생은 다소 외롭고, 통속적이지 만은 않아 보이고, 그냥 재미있게 살거나 머물러 있기에는 무언가 무섭기도 하고 한탄스럽기도 하다. 목마와 숙녀는 우리의 이런 이중성을 노래한 것일까.  


                       

오늘도 어제도 아니 잊고 먼 훗날 그때에 잊었노라.(김소월, 먼 후일 중에서)

 나는 한시도 잊은 적이 없는데 찾았다고 하고 자꾸만 나무란다. 무척 그리다가 잊었고, 믿기지 않아서 잊었고, 오늘도 어제도 아니 잊고 먼 훗날 그때에 잊었다고 말했다. 이제 와 잊지 않았다고 말할 수 없는 그 기구한 사연은 도대체 무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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