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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농암 Apr 27. 2023

시말서 제출과 양심의 자유

  (견책 처분의 정당성)

 회사가 직원에게 내리는 벌, 즉 징계는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 그중에서 우리가 가장 쉽게 접하게 되는 징계는 견책입니다. 견책은 직원의 잘못에 대해 서면으로 꾸짖고 훈계하는 것을 말합니다. 단순히 구두로만, 말로써만 주의를 주는 것에 그치는 경고와 구분됩니다.



 많은 회사에서 견책이라는 징계처분을 하면서 잘못을 저지른 직원에 대해 시말서 제출 명령을 내리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시말서는 우리가 초등학교 시절 흔히 쓰던 반성문과 비슷합니다. 누가 언제 어디서 어떤 일을 하다가 무슨 잘못을 했는데, 죄송하다, 앞으로는 조심하겠다, 다시는 그런 일 없도록 하겠다는 등의 내용이 주를 이룹니다.


 스스로 잘못했다고 생각하는 경우라도 그렇지만, 속으로 내 잘못이 아니라고 여기고 있거나 다른 사람이나 기계 등의 잘못이라 생각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회사의 명령이라 어쩔 수 없이 잘못했다고 시말서를 쓰는 것은 온당한 일일까요.



 이에 대해 법원은 그 시말서가 단순히 사건의 경위를 보고하는데 그치지 않고 더 나아가 근로관계에서 발생한 사고 등에 관하여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고 사죄한다는 내용’이 포함된 사죄문 또는 반성문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이는 헌법이 보장하는 내심의 윤리적 판단에 대한 강제로서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므로, 이러한 시말서 제출 명령은 업무상 정당한 명령으로 볼 수 없다(대법원 2010. 1. 14. 선고 2009두6605 판결)고 보았습니다. 시말서 제출 지시에 따르지 않더라도 그것은 업무상 지시나 명령 위반이 되지 않고, 시말서 제출을 거부하더라도 이를 이유로 징계할 수 없다는 취지입니다.     



 시말서(始末書). 시작은 어떠했고 그 끝은 또 어떠했는지를 묻는 글. 말이 품고 있는 뜻 그대로 사건의 경위만을 묻고 따지는 경위서일 경우에만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견책이라는 징계를 할 때에는, 경위서를 제출하게 하면서 서면으로 경고하고 훈계하는 것에 그쳐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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