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휴가 기간 중 박동규 부지회장은 노조 탈퇴서와 가입원서를 받는 데만 열중했다. 금속노조 이월지회에 가입한 조합원이 대략 900여 명 되니까 그중에서 압도적인 과반을 확보하기 위해 500여 명의 직원을 포섭하는 것이 일차 목표였다. 휴가 기간을 이용하여 사람을 만나고 설득해 보겠다는 계획은 한참 어긋나 보였다.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파야 했으니 여기저기 뿔뿔이 흩어져 있는 사람더러 오라 가라 말할 처지도 아니다. 다행히 연락이 닿은 몇몇 직원들과 공감대를 이루고 뜻을 함께하기로 약속했으나 그 수는 목표치에 한참을 미치지 못했다. 그렇게 2주간의 휴가는 흘러갔고 박동규는 대부분의 무관심 속에서 부지회장직 사퇴와 함께 이직까지 고민하고 있었다.
그 사이 소문은 마구 뒤섞이며 스스로 새로운 사실을 잉태하고 있었다. 금속노조는 이탈자를 막기 위해 가장 먼저 박동규 부지회장의 조합원 권리를 6개월간 정지시켰다. 조합에 적대적인 행위, 즉 해당 행위를 했다는 것을 이유로 했다. 몇몇 탈퇴서를 제출한 조합원에 대해서는 개인별 면담을 통해 서류를 반려했다. 양산공장에 노조가 없던 시절 근로자대표로 오랜 기간 활동했던 지난날의 이력은 날조되고 어용으로 치부되었다. 지금 여기서 나가는 사람은 회사의 노조 파괴 공작에 말려드는 것이고, 어용노조를 이용한 노동 탄압에 동조하는 것이며, 우리가 그토록 염원했던 민주노조와 노동해방은 물 건너가는 것이라며 내부 결속을 강화하고자 했다.
선전과 선동은 사실에 근거할 때에만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것인가. 최근에 벌어진 일들과 회사는 아무런 연관이 없었다. 회사의 속내야 어떻든 복수노조 전략은 박동규 개인의 자발적인 선택이었다. 부지회장을 징계한 일은 무관심한 조합원들 사이에 좋은 안줏거리가 되었고, 노노 갈등을 이용한 복수노조 설립에 회의적이던 최 사장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불똥은 우경에게로 튀었다. 적법한 노무관리, 합리적인 노사관계, 양보와 타협을 통해 노사가 공존하는 직장문화 조성에 우선적 가치를 두고 있던 관리팀장이었기에 주저했던 일이었고, 그래서 부지회장이 송림가든에서 우물쭈물했을 때에도 소극적인 회피로써 자신의 가치를 지키고자 했다. 이제 최 사장이 대놓고 지회에 대항마로 나설 수 있는 복수노조 설립을 주문한 것이다.
이번에는 우경이 부지회장을 먼저 만나자고 했다. 한여름의 끝자락. 본격적인 휴가철도 지났고 오후 다섯 시를 훌쩍 넘긴 시간임에도 내원사 계곡은 피서객들로 붐볐다. 오리 불고기를 전문으로 하는 고궁에서 만나기로 했지만, 오늘은 단골손님이라는 우선권에 목마름과 속 탄다는 핑계까지 끌어와 생맥주를 주문했다. 아이들 물장난에 피어오르는 무지개를 바라보며 두 잔 째를 비우고 있을 무렵 부지회장은 방갈로 차양을 걷어 올리며 들어섰다. 약속보다 한 시간 가까이 늦게 온 부지회장도 목이 탔던지, 술이 고팠던지 오자마자 생맥주부터 주문했다. 그렇게 둘은 한동안 이렇다 할 안주도 없이 아무런 말도 주고받음 없이 술만 마셔댔다.
먼저 입을 연 쪽은 우경이었다.
“이런저런 소문도 많고 말들도 많은데, 요새 마음고생이 많으시겠습니더. 오늘 제가 뵙자고 한 건 다름이 아니라 휴가 때 형님이 진행하셨던 그 일 때문인데예. 오늘 최 사장이 그 일을 저보고 마무리 지으라고 지시를 내렸습니더. 생각이 좀 복잡하네예. 형님은 무슨 생각으로 하셨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우경은 박동규 부지회장 쪽을 쳐다보다가 더는 말을 잇지 않았다. 그는 이미 다 알고 있다는 듯 지긋이 웃기만 했으며, 동시에 노가리를 길게 찢어 우경의 입속으로 밀어 넣었기 때문이다. 그 입 다물라는 무언의 표시이기도 했다. 그러면서 건배하자는 뜻으로 500cc 생맥주잔을 높이 쳐들었다. 남들에게 피해 주는 것을 죽을 만큼 싫어하고, 맨 정신으로는 노래 한가락 부르지 못하는 그에게 어떤 기대를 품은 우경이 잘못이었다. 해가 지고 서늘한 밤바람이 산에서 계곡으로 내려오자 둘은 서서히 취해가고 있었다. 이제 부지회장은 자신의 순서라도 온 마냥 우경에게 큰 소리로 물었다.
“니 할 수 있겠나? 실리야 회사의 몫이니 그렇다 치고 니한테 명분이 있나? 니 스스로가 의문을 품고 회의적인데 이 일이 제대로 되겠나 그 말이다.” 여름휴가 전 우경의 태도를 보았고 생각을 꿰뚫어 알았기에 가능한 말이었다.
“거창하게 명분까지 필요한 일입니꺼. 저는 노동자이고 회사의 지시와 명령을 따라야 하고. 무엇보다 우선은 마음 편하게 회사 다니고 싶습니더. 똑같은 일을 하더라도 회사와 우리 직원 모두에게 실질적인 이익이 되는 일이었으면 좋겠습니더. 사상이나 이념, 계급, 정치참여…… 노동과 자본의 투쟁이니 뭐 이런 것들 모두 싹 빼버리고, 서로 편 가르지 않고 그렇게 회사 다닐 수 있다면 더 바람이 없습니더.” 혀가 꼬인 우경의 목소리는 오히려 더 절절하게 전달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먼저 시작한 일이고, 나도 비슷한 생각이다. 예전에 근로자위원 하던 애들, 그라고 현장 직반장들, 사내동아리 회장들은 내가 포섭할 수 있을 거 같다. 과장급 이하 관리직원들은 니가 책임져야 할끼다. 시간은 짧으면 짧을수록 좋을끼다. 하반기 반 편성과 개인별 인사고과 시기를 잘 활용하고, 사라진 여름휴가비는 추석에 특별 상여금이든 뭐든 나가야 하고, 잔업과 특근은 코로나 이전 수준으로 회복될 수 있도록 조치가 있어야 할끼다. 지옥문까지 갔다가 살아온 관리팀장님이니까 더 세세한 말 안 해도 되겠지예?” 말끝에서 갑자기 존댓말을 사용한 것은 자칫 상대방에 대한 비아냥거림으로 들릴 수도 있었지만, 어쩌면 부지회장은 우경의 빠른 결단을 촉구하고 있는 것이었다.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일터와 동료를 사랑하는 모임이라는 네이버 밴드가 만들어졌고, 회사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는 카카오 단톡방이 개설되었다. 내년 1월 정기 인사 때 승진이나 승급을 앞둔 직원들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서둘러 지회를 탈퇴했다. 외부 세력의 간섭이나 개입 없이 우리 문제는 우리 스스로 해결하자는 기치는 높고도 분명했다. 그렇게 팔월이 가기 전에 이월 노동조합은 상급단체 없는 기업별 노동조합으로 탄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