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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랑크톤 Jul 01. 2024

2016년 9월 27일 오후 6시 44분



지금 심정을 글로 써놓지 않으면 또 세월이 지나가면서 기억이 흐려질 것이 두려워 일기를 남겨본다.


삼우제까지 어제로서 끝마치고 잠깐 밖으로 나왔다. 일상이 그럭저럭 예전과 비슷하게 흘러가고 있는 듯한데 멍 때리는 시간이 길어졌다.

일 년 사귀었던 남자친구조차도 완전히 생각나지 않는 데까지 몇 년 걸린 거 같은데 엄마를 잊는다는 건 오죽할까 생각하며 견디는 듯 안 견디는 듯 지내고 있다. 잠은 확실히 많아졌다. 감기기운도 좀 있어 약국에서 약을 사다 먹었다. 장례식을 한다는 게 에너지를 많이 잡아먹기도 했을 거고, 스트레스를 피해 잠 속으로 도피하고 싶어 하는 것 같기도 하다.


엄마를 바다에 모신 날도 삼우제를 하러 바다에 나간 날도 덥지도 춥지도 않고 날이 맑고 바람조차도 잔잔해서 파도가 없는 좋은 날씨였는데, 모든 게 끝나고 나니 비가 내린다. 엄마가 생전 착하게만 살았으니 마지막 가는 길을 누군가가 보살펴 주신 것 같다.

우리 엄마는 거짓말 한 마디 할 줄 모르고 사람들 챙기는 것도 좋아하는 참 착한 사람이었다. 나와는 비슷한 듯 많이 달랐던 사람이었다. 또 자식들을 키우는 데 모든 인생을 바친 사람이었다. 우리들이 엄마의 유일한 낙이었고 행복이었다. 우리 옷은 계절마다 조르는 대로 사줘도 엄마 자신의 옷은 정말 싸게 산 몇 벌을 십 년을 넘게 입던 사람이었다. 유품 정리하는데 엄마 옷이 작은 박스로 두 박스가 나왔다. 하나 같이 시장에서 산 싸구려 옷이었다.

나는 그런 엄마를 창피해했었다. 다른 엄마들에 비해 꾸밀 줄도 몰랐으며 고생을 많이 해서 나이보다 들어 보이는 얼굴이 나는 창피했었다. 조금이라도 비싼 것을 먹거나 살 때마다 면박을 주는 모습이 부끄럽고 싫었다. 엄마는 대체 왜 그러냐며 대들기도 했다. 엄마처럼 살기는 죽기보다 싫었다. 이모가 몇 년 전 엄마가 쉬는 날 찜질방을 한 번 데려갔더니 그렇게 아이 같이 좋아했다고 했다. 찜질방을 꼭 한 번 와보고 싶었는데 처음 와봐서 너무너무 좋다면서. 장례식장에서 처음 들은 얘기였다.

물론 그 이후로 나는 엄마를 찜질방에 데려가본 적이 없다. 엄마를 데리고 영화를 보러 간 적도 없다. 엄마와 단둘이 산책을 해본 적도 없다. 엄마를 위해 엄마가 좋아하는 음식을 사들고 들어간 적도 없다.

엄마가 많이 아프고 나서, 누운 채로 대변을 보고 여기저기 묻혀 놨을 때 집에 들어와 그 광경을 보고 정말 미쳐버릴 것 같은 마음에 엄마를 박박 씻기며 소리를 지르며 울기도 했다. 엄마는 나에게 미안하다며 따라 울었다. 나는 정말 지독하게 불효자식이었다.


그러나 더 이상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엄마가 요양병원에 가시고 난 후 조금이나마 대가리가 컸다고 매주 한두 번 가서 씻겨드리고 어떻게든 웃겨주기 위해 이런 말 저런 말을 닥치는 대로 하던 내 모습만을 기억해 줬으면, 평생을 걸쳐 엄마에게 못되게 굴었던 것들은 전부 잊고 가셨으면 하는 끝까지도 이기적인 바람뿐이다.

돌아가시기 3주 전쯤일까? 굳어버려 말도 잘 못하는 입으로 뭐라 말하기에 몇 번을 되물어 알아들은 말 'OO야. 엄마는 지금 말을 아끼는 거야.' 어떤 의미였는지 그때는 궁금해했었는데 이제는 알겠다. 그게 무슨 말이냐고 몇 번을 물어봐도 가만히 내 눈만 쳐다보고 있던 엄마. 엄마는 가실 날이 얼마 안 남은 걸 스스로 느끼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 엄마의 속도 모르고 임종조차 보지 못한 것은 생각하면 할수록 가슴속을 칼로 헤집어놓는 것과 같은 아픔이지만 통증 없이 잠들 듯 가셨을 것이라 믿고 견디는 것 외엔 방법이 없다.


이번 일을 겪어내며 내가 한 번 더 어른이 되기를 바란다. 견뎌내는 과정 중에 절망에 빠져 허우적대지 않기를, 아픔을 이겨내고 더욱 성장하기를, 그래서 남들의 아픔 또한 보듬을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기를. 내게 남은 중요한 과제 중 첫째는 엄마의 희망이었던 나 자신이 더 멋지게 살아갈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 둘째는 남겨진 내 아빠와 동생들을 사랑하고 아끼는 것이다. 두 번 다시는 엄마처럼 떠나보낸 후의 후회와 죄책감에 몸서리치지 않도록 남은 내 가족들을 챙기고 끊임없이 사랑을 표현할 것이다. 나는 언제나 그래왔듯 잘 해낼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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