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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랑크톤 Sep 06. 2024

홀로 떠나는 산티아고 순례길-3(론세스바예스-주비리)




론세스바예스-주비리까지 21.5km(2024.7.30.)


 

5시에 알람을 맞춰두었으나 4시부터 잠이 깨고 말았다.


 조용히 나갈 준비를 했다. 순례길에서는 다음날 입을 옷을 미리 입고 잤다. 아침에 옷 갈아입는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서다. 일어나면 고양이 세수와 양치를 한 후, 침낭과 짐을 챙겨 나간다. 나의 경우 아침 준비에 1시간 정도 걸렸다.


 론세스바예스 공립 알베르게는 화장실과 자는 곳이 가까워서 불편했다. 왔다 갔다 할 때마다 복도의 센서 등이 켜졌고 화장실의 소리들이 침대까지 크게 들렸다. 사람들을 깨울까 봐 조마조마했다.


 준비를 마치고 1층으로 내려갔다. 배가 고파 공용 공간에 있는 자판기에서 요거트를 뽑아 먹었고, 가면서 먹을 초콜릿과 생수를 사서 가방에 넣었다.

여기서 자판기를 처음 써봤다.




 숙소에서 1등으로 나섰다. 너무 일찍 나와버린 탓에 밖은 캄캄했다. 그나마 론세스바예스를 나가는 길목에 가로등이 있어서 사진을 남겼다. 내가 가야 할 길에는 아무런 불빛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애인에게 빌려온 헤드랜턴을 켰다.

오른쪽의 도로를 따라가야 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도로가를 걸었다. 헤드랜턴이 비추는 발밑 말고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애인이 위험한 짓은 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는데... (^^;) 알면 분명 혼나겠구나. 하지만 미친놈이 있더라도 그쪽이라고 야간 시력을 가지고 있는 거 아니니까... 이렇게 어두운데 무슨 짓을 할 수나 있겠나 싶었다.


 길을 잃을까 봐 처음으로 까미노 닌자(순례길 지도 어플)를 켜고 GPS를 따라 안내를 따라갔다. 어느 순간부터 숲속으로 난 오솔길로 들어가라고 하는데, 캄캄해서 입구를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수풀을 밟고 나무뿌리를 넘으며 길을 개척(?)했다. 나중에 환할 때 보니 종아리가 한두 군데 긁혀있었지만, 어쨌든 바른길로 잘 들어왔다.




30분에서 1시간쯤 걸었을까? 저 멀리 다음 마을의 불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여기까지 걸어오며 내가 참 담대하다는 생각을 했다. 한국에서도 별로 겁이 없는 편이었지만, 이렇게 낯선 곳에서 암흑을 뚫고 혼자 다닐 정도였다니. 나는 내 생각보다 더 용감하고 대범했구나. 순례길을 걷다 보면 나도 모르던 나에 대해 하나씩 알게 된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걷다 보니 하늘이 조금씩 밝아지기 시작했다.

하늘과 나무가 예술 작품 같다. 언젠가 유화를 배운다면 꼭 이 사진을 그리고 싶다.




 묵묵히 혼자 걷는 이 길이 좋았다. 풍경을 만끽하며 걷다가 내 사진도 찍었다.

MZ샷(?)
이름 모를 파란색 꽃들이 예쁘다.




 배고파질 즈음 Espinal이라는 마을을 지나게 되었다. 아침을 먹으려고 바를 찾았다.




 주문을 하고 있는데 Laura와 Martina가 나타났다. Laura가 반갑게 부르며 다가와 비쥬를 했다. 처음 경험하는 비쥬라 어색했지만, 그가 나를 얼마나 반가워하는지 느껴져서 기분이 좋았다. 4.5유로짜리 아침식사 세트를 주문했다. 그들도 각자 음식을 주문한 뒤 내 맞은편에 앉았다.

별거 아닌데 너무 맛있었다. 역시 사람은 고생을 해야..




 Martina 역시 이탈리아인이었다.(순례길에는 이탈리안이 정~~말 많다. 앞으로도 수많은 그들이 나온다.. 그중 어떤 이탈리안의 말이 기억난다. "We're everywhere.")


 정확한 나이는 묻지 않았으나 그는 20대 중반쯤으로 보였다. 말하지는 않았지만(칭찬이라도 외모에 대한 평가는 큰 실례이니), 생김새가 마치 흑표범 같다고 생각했다. 건강하게 탠된 피부와 새까만 머리, 눈동자가 아름다운 친구였다.


 그들은 전일 같은 숙소에서 묵었다고 했다. 북적이는 곳을 싫어하는 Laura는 항상 남들이 잘 묵지 않는 작은 마을을 찾아다녔다. 우리는 대화를 나누며 아침을 먹었다.


 식사가 끝나고 Laura는 Martina의 물집을 봐주었다. Martina의 오른쪽 발바닥에는 큰 물집이 잡혀있었다. 순례길 경험이 있는 Laura는 물집에 한해서는 전문가였다. 치료를 하는데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아, 먼저 출발을 하겠다고 인사를 한 후 길을 나섰다.


 이날은 적응이 좀 되었는지 사진을 제법 찍었다.

CIAO는 이탈리아어로 안녕이다. "치아오!"라고 하면 된다.(이탈리안 친구들 덕분에 아는 척을 쫌 할 수 있게 됐다.)




 순례길을 안내해 주는 표지판들이 다양하고 귀엽다.




 시냇물을 만났다. 잠시 쉬어가기 좋은 곳이었다. 몇몇의 순례자들이 둘러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그중 론세스바예스에서 마주쳐서 잠깐 인사를 나눴던 한국인 부녀도 있었다. 따님은 나와 비슷한 나이, 아버지는 환갑쯤 되어 보이셨다. 따님보다 아버지가 더 잘 걷는다고 말씀하신 게 기억에 남는다. 우리 아빠는 힘들다고 여행도 안 가주는데(...) 그 아버님의 체력과 건강이 부러웠다.


 가방을 풀고 앉아 물을 마시고 있으니 Laura와 Martina가 도착했다. Laura는 흐르는 물에 세수를 하고 머리를 적셨다.

고작 3일 차에 앙상해져 가는(?) 몸
젖은 머리의 Laura. 우리가 함께 찍은 첫 사진이다.




 한 브라질 아저씨도 있었는데 그의 이름은 기억이 안 난다. 그는 영어를 거의 하지 못했기에 많은 대화를 나누진 못했다. 나와 Laura, Martina, 브라질 아저씨는 함께 걷기 시작했다.


 Laura가 제일 빨랐고 그다음은 나, 물집 때문에 발이 아픈 Martina와 걸음이 느린 브라질 아저씨가 그 뒤를 따랐다.

 Laura는 자신의 페이스대로 가다가도 우리가 너무 멀어지면 잠시 서서 우리를 기다렸다. 나는 Martina가 걱정되어 중간중간 괜찮냐고 물어보며 걸음을 맞췄다. Martina는 물집이 상당히 아플 텐데 티도 내지 않고 부지런히 우리를 따라 걸었다.

오늘의 목적지 주비리(Zubiri)의 표지판이 보인다.
스틱에 팔을 걸어 어깨를 스트레칭하는 저 자세는 Laura의 시그니처다. 내가 고대로 배워 순례길 내내 했다.(ㅎㅎ)
피터 아저씨 친구의 아들의 뒷모습.(이름을 몰라서 이렇게밖에 부를 수 없는..)




 걷는 와중에 Laura와 Martina가 주비리 다음 마을까지 함께 가서 묵자고 제안했다. 나는 주비리에서 좋다고 알려진 Rio Arga 사립 알베르게를 미리 예약해두었었다. 예약된 숙소가 있다고 하자 그들은 비용을 지불했는지 물었다. 예약만 해두었고 결제는 아직이라고 하자, 그럼 취소가 가능할 것이라며 나를 회유했다.


 사실 나는 예정대로 Rio Arga에 묵고 싶었다. 워낙 계획이 틀어지는 것도 좋아하지 않고, 오늘 꽤 오랜 시간 사람들과 있었으니 조용히 숙소에서 쉬고 싶었다. 하지만 Laura가 적극적으로 다음 마을의 숙소에 전화하여 3명 예약 가능 여부를 물어보고, 기대하고 신나하는 모습을 보자 그냥 맞춰주자~하는 마음이었던 것 같다.


 주비리에 도착할 때쯤 Rio Arga에 왓츠앱을 보냈다. "이러이러한 사정이 생겼는데 혹시 오늘 취소도 가능하니?" 답변은 전일 연락 주지 않으면 취소하더라도 그 자리에 대한 비용은 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규칙에 대해 처음에 메일로 설명한 바 있다고 했다. 답장을 했다. "그렇구나. 내가 설명을 잘 읽지 못했나 봐. 정말 미안해. 그러면 곧 거기로 갈게."


 친구들에게 상황을 설명했고 Laura는 숙소 비용이 많이 비싸냐며 무척 아쉬워했다.(많이 비싸지 않다면 같이 부담하고서라도 함께 가고 싶었던 것 같다.) 주비리에 도착해 다 같이 Bar로 갔다. 바에서 확인해 보니 Martina 역시 물집 상태가 심각해 더 이상 걷기 어려울 듯 보였다. 그는 오늘 주비리의 공립 알베르게에서 묵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결국 Laura만 다음 마을로 가게 됐다.


우리는 서로 작별 인사를 하고 왓츠앱을 교환했다.







Rio Arga(주비리 사립 알베르게)


숙박만 17유로(약 2만 5천 원)


https://maps.app.goo.gl/uRUBgmPm2LwbPVo29




 Rio Arga 문 앞에는 호스트가 서있었다. 내가 가서 인사를 하자, 굳은 표정으로 아까 연락을 준 사람이냐고 물었다. 맞다고 하자 "It was not nice."라고 했다. 나는 울상을 지으며 안다고, 정말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그는 알겠다며 표정을 풀고 나를 안내해 주었다.




 안내를 받고 짐 정리를 하며 나 역시 기분이 좋지 않았다. 숙박업을 하는 그의 입장에서 이런 일이 얼마나 많겠나. 충분히 화가 날 수 있는 일이었다.

 내가 기분이 좋지 않아진 이유는 다른 게 아니라 나 때문이었다. 솔직한 나의 속마음대로 했다면 그냥 이곳에 왔을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나보다 다른 사람들의 기분을 더 신경 쓴 탓에, 결국 호스트에게 실례를 하고 눈총도 받고 말았다.


 분명 순례길을 시작하는 이유에 대해 나는 이렇게 정리했었다.

'남들의 기분을 맞추고자 내 기분이나 상태는 고려하지 않는 나를 보며 충격을 받았다. 타인의 감정은 세심하게 생각하고 배려하는데, 정작 나 스스로에게는 전혀 그렇게 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 힘듦은 스스로 잘 알아채지도 못하거니와, 알아차린다고 해도 방치하거나 억압해버리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았다.'


 여기까지 와서 또 나 자신보다 다른 것들을 더 신경 쓰고 있었다. 이 글을 쓰다 보니 다시금 그때의 좋지 않았던 감정이 올라온다. 이에 대한 자세한 생각은 이 글의 마지막에 정리해 보려고 한다.

역시나 2층 침대의 위층을 배정받았다.




 샤워와 빨래를 한 후 짐 정리를 하고 있는데, 방으로 들어오는 독일 할아버지와 마주쳤다. 서로 웃으며 반갑게 인사를 나눴더니 기분이 조금 나아지는 듯했다. 할아버지는 내 침대 바로 아래 침대를 배정받았다고 했다. 할아버지가 문득 "이 소리 들리니?" 라고 해서 가만히 들어봤다. 천둥이 치고 있었다. 갑작스럽게 세찬 비가 창문을 때렸다. 배가 고팠지만 비를 맞고 싶지 않았기에, 그치기를 기다려보기로 했다.


 소나기였는지 다행스럽게도 비금세 멎었다. 여태까지 중 가장 많이 걸은 날이기도 했고(7시간 소요) 모처럼 혼자서 제대로 된 식사를 하고 싶었다. 이틀 내리 커뮤니티 저녁식사를 했더니 음식을 충분히 즐기지 못한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숙소에서 나와서 Bar로 향했다.


 가던 길에 피터 아저씨 일행과 마주쳤다. 피터 아저씨는 내 신발을 볼 때마다 탐냈다. ("Fucking good shoes!") 그들이 주비리에서 묵는다고 했었는지, 다음 마을로 간다고 했었는지.. 기억은 정확하지 않지만 잠시 이야기를 나누다가 또 만나자고 인사하며 헤어졌다.


 도착한 바의 내부에는 사람이 좀 있었다. 나는 햄버거와 제로콜라를 주문했다.

사진은 사람들이 다 나간 후.
따끈하고 맛있었는데.. 또 먹고 싶다.




 간만에 조용한 식사를 즐기니 좋았다. 그러면서도 아침은 자판기에서 사 먹고, 점심도 외식하고, 저녁까지 거하게 2만 원을 써버린 오늘 하루는 과지출을 했다는 찝찝한 마음이 들었다.


 오늘 있었던 일로 기분이 좋지 않았고, 사람들과 계속 교류해야 하는 것도 조금 지쳤다. 그래서 내일 도착하는 팜플로나에서는 호텔에서 혼자 묵을까 생각도 했는데, 하룻밤 10만 원이 너무 큰 사치처럼 느껴져서 결국 예약하지 못했다. 다른 여행에서는 숙소에 이 정도 금액을 쓰는 것은 문제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지내는 며칠 동안 어느새 진짜 순례자의 마음가짐이 되었다.


 숙소로 다시 돌아가는 길. 주비리는 아기자기한 맛이 있는 마을이었다. 마을 입구를 가르는 강에서 아이들은 물놀이를 하고 있었다. 잠시 다리 위에 서서 풍경을 바라봤다.










 나는 타인에 대한 민감도가 높다.(TCI 검사로 확인했다.) 감정을 잘 알아차리고 눈치도 빠르다. 알고 싶지 않아도 미묘한 흐름들이 눈에 들어오고, 그게 나쁜 방향으로 흘러가면(혹은 흘러갈 것 같으면) 뭔가를 해서라도 분위기를 좋게 끌고 가려는 경향이 있다.


 여기엔 회피형인 성향도 한몫한다. 갈등이 생기는 게 싫으니 애초에 부딪히지 않는 방향을 택한다. 내 의견을 개진하기보다는 적당히 다른 사람들에게 맞춰줘버리는 것이다. 이런 버릇이 습관으로 자리 잡으며 내가 원하는 것을 즉각 알아차리지 못하고, 알더라도 다른 사람에게 요청하기를 어려워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인간 없이 못 사는 나인데도 인간들 옆에 있으면 자꾸 지치고 피로해진다. 워낙 사교적이고 낯도 가리지 않아 사람들과 곧잘 친해지는데, 가까워지다 보면 스트레스 받는 상황이 생긴다. 누군가는 내가 불편한 지점까지 선을 넘어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을 탓할 수는 없는 것이, 사람마다 기준이 다른데 내가 표현하지 않으면 대체 어떻게 알고 주의하겠는가. "나는 이런 게 불편해.", "나는 다른 게 더 좋아." 라고 표현하지 않은 내 잘못이 먼저다.


 그리고 이런 방식은 안타깝게도 효과보다 부작용이 훨씬 크다. 내색 안 하고 참던 것이 쌓이다 터지면 부정적 감정이 필요 이상으로 올라온다. 감정이 격앙되니 생각했던 것보다 더 심한 말을 하기도 하고 어쩔 땐 인간관계 자체를 끊어버리기도 한다.


 이곳에서조차 똑같이 하고 있는 나에게 소름이 돋는다. 길에서 안면을 튼 친구들이 나를 반겨주면 너무 기쁘고 좋지만, 함께하는 시간이 지속되면 묘하게 어딘가로 달아나 혼자 있고 싶어지는 이 익숙하고 지긋지긋한 느낌. 역시 환경이 달라진다고 나라는 인간이 변하지는 않는구나.




 일상으로 돌아온 지금도 뾰족한 수는 찾지 못했다. 여전히 무의식 중에 내 감정보다는 타인에게 맞춰주는 방식을 선택하고, 돌아서면 후회한다. 미약한 절망감이 들 때마저 있다. 나조차 나를 지켜주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래도 고무적인 점은 분명 나는 변화하고 있다. 가끔 싫은 소리를 하더라도 자신에 대한 거절이 아님을 알고 있는 사람, 내 언행을 가지고 함부로 나를 판단하거나 밀어내지 않을 사람, 그래서 어떤 문제가 생겨도 함께 헤쳐나갈 수 있다는 강력한 믿음을 주는 사람. 이렇게 안전하고 안정적인 사람과의 사랑은 나를 점점 솔직 담백한 사람으로 만들어주고 있다.


 애인과 나는 서운하거나 속상한 점을 되도록 그 자리에서 말하려고 노력한다. 바로 이야기하기 어려운 문제라면 며칠 내로 생각을 정리해서 대화하는 자리를 만든다.  더불어 그것의 목적은 비판이나 비난이 아님을 느끼게 해준다. 오히려 너무나 아끼고 사랑하는 너와, 앞으로도 함께하고 싶어서임을 알게 해주는 것이다.


 예전의 나였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소중한 사람을 나의 실수로 잃고 싶지 않은 절실함이 이만큼 나를 바뀌게 했다. 순간순간의 두려움을 이겨내고 진솔한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나는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


 애인과 여기까지 오는 데 2년 가까운 시간이 걸렸다. 신기하게도 가족과의 관계 역시 자연스레 달라졌다. 내가 건강한 표현 방식을 체득했기 때문이리라.


 아빠에게는 손 편지를 몇 차례 썼다. 아빠가 무엇인가 강요할 때마다 내가 느꼈던 감정과 생각을 솔직히 적었다. 지금의 삶을 선택한 이유를 이해하실 수 있게 내가 인생을 대하는 가치관에 대해서도 설명해 드렸다. 마지막으로 그동안 못난 짓을 했던 게 절대 아빠가 미워서 그랬던 것이 아님을, 오히려 어떤 모습을 보여도 나를 사랑해 줄 사람임을 알기 때문에 그랬던 것이라고. 그런 아빠를 내가 얼마나 사랑하고 존경하는지 표현했다.


 동생에게는 긴 카톡을 보냈다. 그동안 나의 시야와 생각을 통해 너를 판단했던 것에 대한 미안함, 너를 너 자체로 존중하겠다는 약속, 그리고 내가 바라는  다른 것이 아니라 오직 너의 마음이 편안하고 행복해지는 것임을 알려주었다. 내 카톡에 답변을 잘 하지 않는 동생은 그렇게 말해줘서 고맙다고 답장했다.


 내가 먼저 투명한 진심을 보여주니 가족들도 달라졌다. 잊을만하면 아빠와 심하게 부딪히던 나는 집에서 화를 내지 않은지 일 년이 넘었다. 아빠도 나도 매사 부드러워졌고 날선 대화는 어느샌가 자취를 감추었다.


 방에만 박혀있는 동생을 이해하지 못하고 미래가 두려워 울던 나는, 이제 답답함이 올라올 때면 넉넉히 요리를 해 동생 몫을 담아준다. 동생이 내 요리를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면 왜인지 모를 안쓰러움과 애틋함이 올라와 부정적 감정들을 슬며시 녹여주기 때문이다.


 애인을 지나 가족과 함께하는 나까지는 서서히 바꿔왔다. 이제는 한 발짝 더 나아가 친구와 동료 대하는 영역으로도 넓혀가야 한다. 강한 애착이 전제되지 않는 관계이니만큼 몇 배로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스스로 편안하고 행복해지기 위해 반드시 겪어야 할 과정이기도 하다.


 누구를 만나든 어떤 상황에 있든 나는 내 생각과 감정을 방치하거나 억압하지 않아야 한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목소리를 경청하고 온전히 존중해주어야 한다. 내가 타인을 섬세하게 배려하듯, 나 스스로에게도 똑같이 예의를 지켜야 하는 것이다.

 이 부분에서만큼은 그 누구도 나를 도울 수 없다. 오롯이 나의 의지와 노력에 달려있다. 그렇게 나만은 온전한 내 편이 되어 나를 아끼고 지켜줄 것을 약속하며 이번 일기를 마무리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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