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메릴스트립
덕생복음
� 제 1장 (들어가며)
사랑이 충만할 때 비로소 덕질이 시작된다. 덕질을 할 수 있다는 것은 네가 아직 살아 있으며 사랑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니라. 지나간 덕질은 돌아오지 않는다. 현재 최애가 영원한 최애인 것처럼 사랑하라. 현재의 사랑에 충실하라.
“어우, 메릴 스트립은 너가 이러는 거 알까.” J가 징글징글하다는 듯 혀를 끌어 찼다.
“전세계에 메릴한테 미쳐 있는 여자들이 얼마나 많은데. 나보다 심한 사람도 많지 않을,” (잠시 침묵) “어어, 그래 메릴은 모르는 게 낫긴 하겠다.”
그렇다. 메릴 스트립에 미쳐 있는 20대 여자, 그게 나다. 메릴이 한 번도 방문하지 않은 동아시아 자그마한 반도에 사는 덕후. 이 사람은 기어코 메릴 스트립 손민수 투어를 하겠다며 미국 여행을 떠났다.
물론 덕질이 전부는 아니다. 친구와의 여행에서 내 덕질이 우선한 것은 아니었음을 분명히 밝혀둔다. 다만 나는 미국이라는 단어를 듣자마자 가슴이 펄떡이기 시작했을 뿐이다. 관련 촬영지를 인터넷에서 뒤져 여행 경로에 속속이 껴놓았을 뿐이다. 이 정도면 그렇게 막 나가는 덕후는 아닌 것 같은데, 아닌가?
여행 이야기가 처음 오간 날부터 마음은 붕 떠버렸다. 뉴욕과 로스앤젤레스에서 메릴의 흔적을 만지고, 맡고, 맛보는 아름다운 여정을 머릿속으로 수십 번 그렸다. 벌써 어딘가 충만해지는 것 같았다.
다만 하나 아쉬운 점이라면 실물을 직접 볼 기회는 없다는 것이었다. 코로나 이후 영화 행사도 많이 줄었고, 무엇보다 메릴이 신인 배우처럼 작품을 우후죽순 찍어내지는 않으니. 메릴의 영화 프리미어를 보러 미국에 가겠노라, 레드카펫에서 계를 타는 소녀팬이 되겠노라는 아메리칸 드림은 가슴 속에 고이 묻어두었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내 여행에 맞춰서 최애가 영화 개봉을 하고 나에게 손키스를 날려주는 건 어불성설이니까. 그래도 내심 아쉬움을 감출 수는 없었다.
그럼에도 이 여행은 내 인생에 있어서 상징적인 일이었다. 메릴 스트립 덕분에 살아내던 시절의 나에게 미국이란 메릴이라는 신이 살고 있는 위대한 나라였다. (물론 미국이 위대한 나라인 것은 아니고, 메릴 보유국이라는 측면에서만 유의미하다.) 영영 닿지 못할 것만 같던 우상과, 같은 하늘을 보고, 같은 땅을 밟을 수 있다니. 그 자체만으로도 벅차오르는 가슴을 감당할 수 없었다. 그곳은 하물며 메릴이 내뱉은 이산화탄소라도 더 많을 것이지 않은가. 그러면 내 폐에도 그 공기가 들어올 수도 있을 것이고, 그러면 그것도 나름의 성덕이라 생각한다. 그의 숨결이 태평양을 건너오다 지치지 않도록 내가 친히 방문해주겠다는 배려! 나는 이렇게 매너있는 덕후다.
미국은 너무 멀고 너무 비싸다. 언제 다시 갈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 그렇기에 나는 오프라인 덕질을 꽉꽉 채워서 하고 오겠다는 사명을 가지고 비행기에 올랐다.
메릴 스트립의 숨결을 따라 드디어 뉴욕에 발을 내딛었다. 내 첫 해외여행이 이곳이 될 줄은 몰랐는데. 미쳤다. 나 완전 어른이야. 비행기 창밖으로 이국적인 땅덩이(말 그대로 땅덩이)를 보면서부터 나는 한껏 고양되었다. 어쩌면 길가에서 메릴을 만날지도. 그러면 몸을 내던져 메릴의 눈 앞에서 넘어져야지. 그럼 그 사랑스런 사람이 나를 일으켜주면서 걱정해주지 않을까. 거기서 안 울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아이러브유보다 더 큰 사랑 표현은 없을까. 허무맹랑한 기대가 얼룩덜룩 묻어났다.
그러나 흥분도 잠시. 공기에서 영어의 느끼함과 공항 특유의 쾨쾨함이 감돌았고, 공항을 둘러보는 순간 나는 할리우드 영화에 내던져진 관객이 되었다. 스크린을 뚫고 나와 현실을 활보하는 영화 배우들이 눈 앞을 지나가고 있었다. 한동안 그들을 호기심 가득하게 겻눈질 하면서도 낯선 두려움에 쪼그라들어 제 4의 벽을 지켜달라고 애원했다. 낯선 향기, 낯선 언어, 낯선 인종, 낯선 덩치 사이 홀로 동그라니 서 있는 조그마한 여자애는 기가 팍팍 눌려 더 작아졌다. 여기에 더해, 공항에서 어떤 언니한테 바가지가 왕창 씌워져 300달러를 뜯기는 혹독한 신고식까지. 최애를 향한 길은 시작부터 쉽지 않았다.
씩씩하게 길거리의 대마초 냄새와 정신없이 빵빵거리는 소음 사이를 뚫으며 걸었다. 다시 덕후의 하나 둘 떠올랐다. 세상에, 메릴은 이런 데에 사는 걸까 (히익), 이런 데서 살아서 LA 생활에 적응을 못했겠구나 (응응), 만약 월드 프리미어 투어를 돌면 지금 나와 같은 이런 기분일까 (허허). 나는 덕후로서의 깨달음도 착실히 가져갔다.
고개를 들어보니 마천루가 하늘을 찌를 테세로 곧게 솟아 있었다. 마침내 나는 탄성을 질렀다.
세상에! 내가 메릴 스트립의 나라에 와 있어!
� 제 1장 4조
최애의 지역을 방문할 때는 위대하신 최애의 거동을 잘 살피어 그 뒤를 쫓아야 한다. 오직 발 빠르게 준비된 자만이 성공한 덕후가 될 가능성이 주어지니라. 부지런한 자에게만 축복이 내릴지어니 상시 주위를 잘 살펴 큰 화와 후회를 피하라.
교환학생 생활을 하던 친구 J와 H를 만나 본격적인 뉴욕 여행이 시작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문제의 시작은 여기서부터였던 것 같다. 첫 해외여행. 그것도 친구들과 함께 하는. 그렇다면 핸드폰으로 SNS를 확인할 시간이 있겠는가? 당연히 없다. 트위터? 소식이 가뭄에 콩나듯 떨어지는 트위터 계정은 후순위로 밀려난지 오래였다. 그 간단한 인스타 스토리마저 아무도 올리지 않는 현실 집중적 여행이 시작되었다. (덕후에게 현실을 살라고 하는 진부한 잔소리가 떠오른다. 나는 정말 현실을 살았다.)
그럼 언제 덕질을 하느냐? 본격적인 덕질 여행은 친구들이 머물던 곳으로 돌아가고 혼자 남았을 때 시작될 예정이었다. 최애는 구글맵에 하트 이모티콘으로 박제된 채 자신의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여행 5일차 아침. 봄을 공원에 담아 놓은 듯 따가운 햇살과 연둣빛 잔디와 파란 하늘. 그러나 아직 쌀쌀한 날씨에 옷깃을 여미며 센트럴파크를 걷고 있었다.
그리고 단발성 비명 한 가닥.
악!
그리고 고통에 찬 신음 한 타래.
으어어어어아아아아악…!
핸드폰을 확인한 나는 털썩 길거리에 주저 앉았다. 순정만화의 가련한 여자주인공 같은 쓰러짐이었다. (물론 비명은 그렇지 않았지만.) 여기서 리빙 포인트 하나. 길 가다가 소리지르면서 주저 앉는 사람이 있다면 슬쩍 확인한 뒤 큰 문제가 아니라면 못 본 척 지나가면 된다. 그냥, 그냥, 오타쿠일 수도 있다.
나를 비극의 주인공으로 만든 소식은 바로 전날 저녁 메릴의 행방이었다.
시간은 지난 저녁으로 돌아간다. 우리도 한 번은 좋은 숙소에 묵어 보자며 타임스퀘어 앞 호텔에 셋이 옹기종기 누워있던 그날 저녁. 메릴이 타임스퀘어 앞에 있는 링컨센터에 등장했다. 내가 든든히 기름진 저녁을 먹고 있던 바로 그 시간, 500미터도 채 떨어지지 않은 곳에 할리우드의 신이 있었단 말이다. 나와 메릴 사이 거리가 정말로, 숙소 창문으로 숨참고러브다이브를 하면 만날 수 있는 가까움이었다. 말도 안 되는 일이 나에게 일어나 버렸다. 아무리 덕후는 계를 타지 못한다 하더라도 이런 운명의 장난은 너무하다. 주여, 지금 왕복 250만원 비행기를 타고 한국소녀가 미국에 왔는데요. 아메리칸 갓 진짜 얄짤없고 너무하시네요. 이제 오마이갓 말고 오유얼댐갓이라고 할 겁니다. 속이 베베 꼬였다.
“내가… 메릴을.. 나는… 아니 메릴 어떻게…이런…말도 안 돼…“
이런 내가 익숙한 J는 슬퍼하더라도 앉아서 슬퍼하라며 내 팔을 잡아끌고 벤치로 데려갔다. 길거리에서 정신을 못 차리는 친구가 부끄러웠던 것일테다. 나는 이때부터 센트럴파크를 나가 점심을 먹을 때까지 별 다른 기억이 없다. 머릿속을 꽉 채운 어떤 여자 때문에 버석하게 씹히던 햄버거 패티의 맛까지 상쇄되었다. (맛있는 음식이 아니었어서 다행이다. 아니, 맛있었나?)
계속 억울해 하자면, 한국도 아니고 뉴욕에서 성덕이 될 기회가 날라가 버린 것이 원통하고 분했다. 게다가 나는 케이팝의 나라에서 온 K-오타쿠로서, 덕질을 한 인생이 그렇지 않은 인생보다 긴 사람으로서, 어떤 자부심이 있었다. 레전드 직찍과 팬서비스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그런 근거없는 자신감. 그러니 내가 거기 있어야 했다. 미련 한 바가지. 내 쓸모 없게 큰 목청은 덕질할 때에만 빛을 발하는데. 그러니 내가 거기 있어야 했다. 미련 두 바가지.
뒷북에 통곡을 더해 현실을 부정했다. 미련이 넘치다 못해 내가 미련에 잠겨버렸다. 이러다 “생전 후회하는 일 있으세요?”라는 질문에 ‘내가 그때 메릴스트립을 봤어야 하는데…’로 시작하는 유언을 남길지도 모른다.
사실 따지고 보면 말이 안되는 남탓, 운명탓이다. 내가 조금만 더 부지런했더라면, 하물며 트위터만 확인했더라도 나는 메릴을 만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사실이 나를 더 괴롭게 만들었다. 나는 허무하게 내 손으로 내 아메리칸 드림을 놓쳐 버렸다. (하지만 덕질에 논리가 뭐가 중요한가. 합리적으로만 살 거면 사랑을 하면 안 된다.)
이렇게 인생의 교훈, 아니 덕생의 교훈을 하나 더 배웠다.
어떤 경우에도 소식에 빠를 것. 어떤 경우에도 최애의 동태에 밝을 것. 두 눈을 부릅뜨고 최애를 주시할 것. 덕후는 현생만을 살아서는 안되며 언제든 덕생을 살 것.
그것이 덕후가 가져야 할 자세이다.
� 제 1장 6조
덕질에 있어서 아쉬운 것이 있거든 빠르게 털어내도록 하라. 물론 쉽지 않을 것이다. 다만 지나간 덕질은 돌아오지 않음을 명심하라. 돌아오지 않을 덕질을 가지고 후회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을지니. 지나간 덕질보다는 앞으로의 덕질에 집중하라.
그렇다고 나의 메릴 스트립 투어가 실패한 것은 아니다. 이 여행의 목적은 애초에 ‘영접’이 아닌 ‘손민수’에 있었기에. 계획은 아주 착실히 진행되었다. 덕후의 메릴 스트립 투어는 더퍼블릭씨어터 앞에서 화보와 똑같은 포즈로 사진을 찍는 것으로 시작했다. 포토그래퍼 H와 연출가 J가 나보다 더 열정적으로 임하면서 만족스러운 결과가 나왔다. (덕후에게 쿵짝이 맞는 친구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친구들이 떠난 뒤, 나홀로 남은 뉴욕에는 영화 촬영지가 대기하고 있었다. 걷는 곳마다 어디서 본 장면들이었다. 여기가 거기라니! 아니 여기도, 아니 저기도? ‘Suddenly I See’를 들으며 걷는 맨해튼은 런웨이였고, 필립 글래스의 음악을 들으며 걷는 나는 시간에 짓눌린 고독한 여자였다. 심지어 서점에서 운좋게 <디아워스+댈러웨이부인> 합본 개정판도 구했다. 자기도 샀다며 말을 걸어오는 서점 직원에 부담스럽기만 하던 스몰토크가 처음으로 즐거웠던 것 같다.
이 덕질 여행은 미국을 떠나기 전까지 끝나지 않았다. 다음 목적지는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 로스앤젤레스로 이동했다. 그곳에는 할리우드 스타들의 손도장과 별모양 명패가 바닥에 붙어 있다. 게다가 이곳은 할리우드인지라 사람들이 “Oh, it’s Meryl Streep!” 하며 사진을 찍어가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한국에서는 메릴을 설명해야 하는데. 미국에서야 비로소 느껴지는 메이저의 맛에 짜릿했다.
나는 따사로운 햇살에도 아직 냉기가 감도는 금속판에 나의 손을 포개었다. 서른 살 메릴 스트립의 손을 잡았다. 교감했다. 영원을 약속했다.
가히 끝내주는 덕질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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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나는 참 여러가지로 유난스러운 사람이었다. 길바닥에 주저 앉지를 않나, 징징대지를 않나, 감상에 젖지를 않나, 이상한 포즈로 사진을 찍지 않나, 더러운 바닥을 손으로 쓰다듬지를 않나. 돌이켜 생각해보면 조금 부끄럽기는 하다. 그렇지만 주접스럽게 군 것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원래 여행과 덕질의 공통점은 유난과 낭만에 있는 것 아니겠는가. 안 그래도 일상은 무덤덤하고 지루하기 짝이 없는데 이 비일상에서만큼은 행복하게 엉망이고 싶다. 누군가를 열렬히 사랑하며 보낸 시간이었다고 미국 여행을 회고해 본다. 지나간 여행은 돌아오지 않아 섭섭하다.
그럼 속상하고 후회되는 일도 아름답게 기억되느냐, 음. 운명의 장난질에 놀아난 그 일을 지금 와서 다시 떠올려보면, 그것도 즐거운 기억으로…, 괜찮아지기..,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이건 언제쯤 괜찮아질까. 아직도 속상하고 원통하다. 지나간 최애도, 지나간 기회도 모두 지났기에 돌아오지 않는다.
벌써 금속 손바닥의 메릴 스트립이 그립다. 40년의 시간과 태평양이라는 망망대해를 넘어 마침내 만난 그 순간, 그 감촉, 그 벅차오름 말이다. 역시 지나간 순간은 돌아오지 않고 희미한 흔적만을 남긴다. 이렇게나마 활자 안에 그 순간을 묶어두려 노력해본다. 미국에서의 그날들도, 여전히 열심히 누군가를 좋아하며 글을 쓰는 지금도, 덕질이 가져다 주는 추억이 이렇게 하나 둘 쌓여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