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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해 Oct 01. 2023

여기에도 페미니스트가 있을지 몰라

이 중에 페미니스트인 사람 있으면 손 들어보세요.


무더운 여름의 에어컨 소리만 윙윙 울려댈 뿐 교실에는 정적이 흘렀다. 어색한 침묵 속에서 움직이는 손은 단 하나였다. 그마저도 쭈뼛거리느라 머리 위로 당당하게 뻗지 못한 채 엉거주춤한 자세로. 교실의 모든 시선이 그 손을 향했다.


학원 강사는 ‘요새 페미니즘이 그렇게 유행이라면서’라며 화두를 꺼냈다. “여기에도 페미니스트 있을지도 몰라. 페미니스트인 사람 있으면 손 들어보세요.” 일단 이 수업에서 페미니즘이 언급되는 생뚱맞은 상황은 고사하고, 당장 내 머릿속을 가득 채우는 것은 ‘그래서 어쩌라고’였다. 진짜 어쩌라고. 페미니스트가 있으면 어쩔 것이고 없으면 어쩔 것인가. 하지만 그 짧은 순간 안에 나는 선택을 해야 했다. 나는 여기서 손을 들 것인가 말 것인가. 나는 페미니스트인가 아닌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손을 들었다. 그러나 내가 전적으로 페미니스트임을 확신해서는 아니었다.


페미니즘은 나에게 어렴풋하게 보이지만 다가서기 어려운 무언가였다. 여권 신장을 통해 평등을 이룩하려는 목표는 쉽게 동의를 얻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이상하게도 현실에서 페미니즘은 쉽게 비난의 표적이 되고는 했다. 세상은 페미니즘을 향해 과격한 여성우월주의라는 딱지를 붙이고 있었다. 솔직히 말하면 성평등과 페미니즘 사이에 어떤 배타적인 간극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때도 있었다. 그래서인지 페미니즘이 무엇인지를 알 수 없었고, 따라서 내가 페미니스트인지도 알 수 없었다. 당시 내가 생각하던 나의 위치는 페미니스트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아는 것이 없는 사람, 페미니스트가 아니라고 하기에는 여성 인권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었다.


사실 페미니즘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도 선뜻 손을 들었을 수도 있다. 여기서 문제는 하나 더 있었다. 페미니스트를 향한 사회적 시선, 강사가 생략한 것일지도 모르는 ‘여성만을 생각하는 페미니스트들이 세상에 설치고 다닌다’는 혐오적 시선에 당당히 ‘나 여기 있소’ 하고 드러낼 자신이 없었다. 사람들이 나에게 어떤 눈길을 줄지, 강사가 교단에서 서서 나에게 어떤 말을 할지 두려웠다. 무엇보다도 내가 나를 정체화하는 방식에 있어 페미니스트를 가져옴으로써 그런 혐오들을 가져와 내재화할까 두려웠다. 내가 페미니스트가 되는 순간 페미니스트를 향한 비난은 나를 향한 비난이 될 것이니 말이다. 타인의 시선으로 자신을 재단하는 것은 굉장히 쉬운 일이다. 그리고 내가 습득한 (나를 향한) 비난이 내 밖의 페미니스트들을 향할까 두렵기도 했다. 나를 비난하는 게 쉬워지면 남을 비난하는 것도 쉬워질 것 같았다. 따라서 페미니즘에 관심을 두지 않는 것이 가장 편하고 상처받지 않는 길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스스로 페미니즘으로부터 거리를 두고 싶었던 것도 있다.


다만 어쩌다 보니 그 자리에서 나는 쭈뼛거리며 손을 들었다. 왜인지 손을 들어야만 할 것 같았다. 저 강사의 입에서 혹시나 튀어나올지도 모르는 혐오적인 발화를 틀어막고 싶기도 했다. 내가 페미니스트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페미니즘을 향한 비난을 듣고 싶지 않았다. 페미니스트를 향한 비난이 나를 향한 비난처럼 느껴졌다. 이는 곧 내가 나를 페미니스트로 정체화를 했다는 것일까. 모순적이지만, 계속해서 부정하고 의심해 왔지만, 나는 이미 당사자가 되어 있었던 것 같다.


강사는 자신이 감당하지도 못할 질문을 던졌었나 보다. 빼죽 튀어나온 나의 손을 보고는 *큼큼 그렇군요,* 하더니 다음 영어 지문을 해석하기 시작했다. 수업이 끝날 때까지 역시 ‘어쩌라고’의 언짢음은 가시지 않았다. 정말 페미니스트가 실존하는지 궁금했던 것이었나요, 아니면 페미니스트가 없으면 어떤 말을 하려 하셨나요. 궁금증은 해소되지 못한 채 생략되고 말았다. 하지만 몇 초간 나를 괴롭혔던 ‘나는 페미니스트인가’라는 질문과 ‘나는 페미니스트이다’라는 결론은 수업이 끝나고 나서까지 심장을 두근거리게 만들었다. 이 심장의 불규칙한 박동에 친구에게 전화해서 달뜬 목소리로 이 이야기를 쏟아내기도 했다. 그렇게 짧은 시간 안에 치열하게 고민해본 것도, 나의 정체성을 긍정하게 된 결심은 처음이었다. 그렇게 페미니즘은 본격적으로 내 삶에 들어왔다.


그리고 참 많이도 흔들렸다. ‘나 정말 페미니스트인가봐!’라는 정체화는 순간의 내적 깨달음에 지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여전히 페미니즘에 대한 회의가 몰려오기도 했고, 페미니즘의 목표에 비해 내가 너무 하찮고 부족한 사람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게다가 어쩌다 보니 페미니즘과 관련된 다큐멘터리에 인터뷰를 응하게 되었고 그날 내가 너무 과격한 ‘남혐’을 한 것 같다는 죄책감에 밤잠을 설쳤다. (그리고 영상을 삭제해달라고 요청하려다가 죄송해서 생각을 철회하기도 했다.) 페미니즘에 있어 무엇이 정답인지 모르겠어서 10대 후반을 눈물과 고뇌에 빠져 지냈던 것 같다. 옆에서 언니가 제발 그것 때문에 울고 있지 말고 대학에 가서 제대로 공부하면서 고민하라고 얘기했던 것이 생각난다.


지금도 여전히 모르겠다. 다만 그래도 지금 알겠는 것은 하나 있다. 모든 것에 단일한 정답은 없다는 것. 페미니즘의 정의, 목표, 범위, 방식에는 다양한 의견이 있으며 그것이 꼭 같을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누군가는 나에게 너무 게으른 사고방식이라며 페미니스트가 아니라고 비난할 수 있다. 그리고 누군가는 나에게 너무 과격하다며 빌어먹을 페미니스트라고 비난할 수 있다. 타인의 목소리를 듣되 일일이 휘둘리며 나를 갉아먹지 않아도 될 것이다. 이런 자기혐오에 눈물 젖을 바에야 리트윗 한 번, 청원서에 동의 한 번, 기사에 댓글 한 번이 더 생산적일 수 있다. 나는 어떤 것이 ‘올바른’ 페미니즘인지 모르겠다. 그저 열심히 고민하고 생각하고 ‘나(우리) 여기에 있소’ 외칠 뿐이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때 고등학교 1학년의 나와 현재 대학생인 나의 페미니스트로서의 자아는 크게 바뀐 것 같지 않다. 어쩌면 내적 확신이 없던 고등학생 때의 내가 현재 스스로 페미니스트라 자처하는 지금보다 용감했을지도 모르겠다. 여전히 나는 페미니즘 의제를 인스타에 업로드하는 것을 주저하고, 누군가가 물어보지 않는 한 페미니스트라는 단어로 나를 설명하지는 않는다. 물론 그래야만 ‘진정한’ 페미니스트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한 주저함은 나를 페미니스트로 드러내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아직 사라지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언제쯤 이 두려움을 완벽하게 극복할 수 있을지, 극복할 수는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페미니즘이 뭔지 모르겠는 것보다 더 모르겠다. 다만 주변의 여성들이 그러하듯이 내가 있는 자리에서 조금씩 나아가고 싶다. 내가 아무리 초라하고 별 볼 일 없다 하더라도 한 명의 존재만으로도 힘이 되리라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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