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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해 Apr 16. 2024

완결되지 않은 4월

10년의 세월을 등에 업고 우리는 함께 나아간다

4월을 목전에 두고 고민을 시작했다.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까. 단 하나밖에 생각나지 않았다. 그러나 아무것도 쓰지 못했다. 빈 페이지 속 깜빡이는 커서만이 나를 응시했다. 말할 수 없는 일에 대하여 어떤 말을 얹을 수 있을까. 무엇도 아닌 내가 발화하는 것이 옳은 것인지 판단이 서지 않아 망설여진다. 그럼에도 한 명이라도 더 기억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운을 떼 본다.    


      

2014년 4월. 나는 초등학교 6학년이었고 그날 역시 평범했다. 평범할 줄 알았다. 배가 침몰했다는 뉴스가 나왔다. 다행히도 이내 전원 구조라는 단어가 큼직하게 보도되었다. 나는 교통사고가 난 것쯤으로 여겼고, ‘전원 구조라니 다행이다’라고 흘리듯 생각했다. 그러나 상황이 점점 이상해졌다. 부모님의 얼굴이 일그러졌고 학교가 부산스러워졌다. 뉴스에서는 정정보도가 연신 이어졌다. 생존자의 수와 구조되지 못한 사람의 수가 계속해서 변했다. 배가 바다 아래로 가라앉는 모습이 실시간으로 송출되었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하나도 알 수가 없었다.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사태를 자세히 설명해 주지 않았다. 그리고 나도 보이는 것을 볼 뿐 더 이상 찾아보지 않았다. 어쩌면 피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세상에 나쁜 일이 일어나고 있고 나는 모르는 채로 있고 싶다고. ‘안타까운 사고’ 정도로 여기기로 했다. 어린이가 할 수 있는 것,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무지의 순수함을 겉에 둘렀다.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사람들의 울음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왔다.     


직접 찾아보지 않아도, 누군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4월이면 나눠 받는 노란 리본, 인터넷에 올라오는 추모 게시물, 여전히 투쟁 중인 유가족들의 사진, 수습되지 못한 몸들, 광장에 모인 노란 불빛의 사람들. 박민규 작가는 썼다. 선박이 침몰한 ‘사고’이자 국가가 국민을 구조하지 않은 ‘사건’이다.1) 그렇다. 나 역시 세월호 참사가 그저 사고가 아니었음을, 국가의 적극적인 직무 유기가 낳은 사건이었음을 깨닫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열셋-열넷의 청소년에게도 그랬으니 어른들은 더욱 빨리 알아차렸으리라. 국가는 탈출하라는 말 대신 ‘가만히 있으라’는 말로 선체에 사람들의 발을 묶어 두었다. 선원들이 배를 빠져나가는 동안, 배가 계속해서 잠겨가는 동안 사람들을 구할 수 있었음에도 구하지 않았다. 알아갈수록 납득할 수 없었다. 어째서 그들이 살아서 돌아올 수 없었는지 말이다. 대신 돌아오는 것은 거짓말과 거짓말과 또 다른 거짓말이었다. 책무를 이행하지 않은 책임자들과, 살지 못한 이들 앞에서 오히려 자신들을 ‘살려달라’ 외치는 정치인들과, 유가족에게 행해지는 ‘지겨우니 그만하라’는 비난을 똑똑히 보았다. 침몰하는 배를 보았듯 그 모든 비겁함을 보았다.     


사람들은 세월호 참사 이후 삶이 달라졌다고 했다. 그러나 이 글을 쓰다 깨달았다. 세월호 참사와 함께 자란 우리 세대는 세월호 이전의 세상을 알지 못한다는 것을. 부패와 무책임과 방관과 모순이 쌓여 기어코 침몰한 것이 세월호라면, 우리 세대는 이미 침몰하여 좌절만이 남은 세상에서 시작했다. ‘국가는 우리의 삶을 지켜주지 않는다’라는 문장이 선명했다. 공공의 힘이 부재한 상황에서 어떤 공동체를 꿈꿔야 할지 몰랐다. 수치심을 모르는 어른들에게 실망했고 더 이상 무언가를 바라는 일이 사치처럼 느껴졌다. 인간으로서의 마지막 존엄성까지 팔아버린 세상에서 아무렇지 않게 살아갈 자신이 없었다. 우리 사회에서 타인의 고통을 바라보며 연민보다는 수치심을 느껴야 한다는 니체의 말은 허공으로 흩어진 지 오래였다.2) 어른들이 물려준, 수치를 모르는 세상이었다.     


황정은 작가의 소설 『디디의 우산』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나온다.      


사람들은 여기를 빠져나가고 싶다고 말하지만, 여기를 나가서, 어디로 가겠다는 걸까?3)    


나 역시 이곳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다. 이 말에는 어떤 목적지도 없다. 어디로 가야할지 알아서 하는 말이 아니다. 그저 현 상태가 옳지 않다는 것, 그러므로 벗어나야 한다는 것만이 명증할 뿐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세상을 벗어날 수 없다. 발을 담그고 있는 이 진창이 우리의 세상이기 때문이다.     


탈출이 불가능한 세계의 파일럿은 파더/티처/기본값을 죽이러 돌아갈 수밖에 없다. 탈출이 불가능하다면 여기서 날 수밖에, 여기서 마찰하는 수밖에 없어.4)


아무리 환멸이 나는 세상일지라도 도망갈 곳이 없다면 이곳을 바꾸는 수밖에 없다. 죽음 이면의 진실을 파악하고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것. 진부하게 들릴 정도로 당연한 일이 우리에게 남는다. 참사가 일어나고 몇 년간 거리에는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유가족들과 시민들이 있었다. 그들은 안산에서 광화문까지 걸었고, 단식 투쟁을 하였고, 시민들의 서명을 받았다. 광화문에는 노란 리본이 펄럭였고, 지나가는 사람들의 가방에도 노란 리본이 달랑거렸다. 그리고 많은 진전이 있었다. 2016년 12월 국회에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되었다. 촛불혁명은 ‘평화적 혁명’이라는 근사한 타이틀을 획득하였다. 이 장면은 세월호 유가족인 문종택 감독이 만든 다큐멘터리 <바람의 세월>5)에도 나온다. 드디어 해냈다고 기뻐하는 얼굴들을 마주하니 함께 고양되지 않을 수 없었다. 말 그대로 유가족들과 시민들이 일궈낸 승리였다.      


그래서 오늘은 그날일까. 혁명이 이루어진 날.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피 한방울 흘리지 않고 혁명은 마침내 도래한 것일까.6)


슬프게도, 아직 충분하지 않다. 2017년 3월 대통령 탄핵 판결문에는 세월호 참사에 대한 책임이 쏙 빠져 있었다. 그것이 탄핵의 사유는 아니라고 말이다. 세월호는 지워졌다. 그리고 지난한 투쟁에도 불구하고 끝내 세월호의 침몰 원인은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제대로 규명되지 않은 죽음은 또 다른 죽음 앞에서 우리를 무력하게 만들었다. 나는 2017년에 혁명의 끝에서 쓰여 2019년에 출간된 소설을 읽으며 2022년 10월 29일을 떠올린다. 혁명이 완수되어 세상이 바뀌었다면 과연 이태원 참사가 일어났을까. 혁명은 완결되지 않았다. 이에 더하여 혁명의 공간인 광장마저 평등한 공간이 아니라는 점 역시 거북하게 남아 있다. (소설 <디디의 우산>에 드러나듯) 1996년 연세대 사태에서 여성들에게 가해졌던 모욕적인 언행들이나 소설 주인공이 촛불집회에서 마주한 ‘惡女 OUT’ 피켓처럼, 광장에서조차 차별과 혐오가 만연하다. 모두의 목소리가 동등하게 들리는 광장은 아직 없다. 사회적 참사의 희생자들부터 일상 속 보이지 않았던 존재들까지, 모두를 위한 혁명은 계속되어야 한다. 우리의 게으른 사고와 나태한 책임감을 부수는 혁명이.           



세월호 참사 5주기가 되던 해 나는 고등학교 2학년이 되었다. 기분이 이상했다. 누군가는 영원히 내 나이에 머문다는 사실에 스산하게 슬펐다. 그제야 비로소 깨달았다. 나와 무관한 일이 아니구나. 눈을 감는다고 외면할 수 있는 일이 아니구나. 우리 모두 여기에서 벗어날 수 없구나. 어떤 사건은 우리의 가슴 깊숙한 곳에 끝내 상흔을 남긴다.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4월이 되면 지켜내지 못한 어린 삶들이 기억의 저편에서 떠오른다. 나는 세상이 엉망이라고 어른들을 탓하다가, 그마저도 나에게 주어진 삶이라는 생각에 자세를 바로잡는다.      


성인이 되고 나니 4월이라고 노란 리본을 건네주는 곳이 없다. 그동안 내가 받아온 리본은 선생님을 비롯한 누군가가 절박하게 나누어주던 것이었음을 깨닫는다. 검색해 보니 여전히 노란 리본을 배포하는 이들이 있었다. 신청을 했고 택배가 도착했다. 포장 안에는 보내준다던 열 개가 아니라 스무 개의 리본이 담겨 있었다. 한 움큼을 더 넣어 포장한 이들의 마음을 헤아려 본다. 조금이라도 더 많은 사람이 기억하기를 바라는, ‘Remember 0416’이 그저 문구에 그치지 않고 현실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인 것 같아 코가 시큼해진다.  

    

깨끗하게 노란 리본을 가방에 건다. 그리고 길을 나선다.

10년의 세월을 등에 업고 우리는 함께 나아간다.           



세월호 참사 10주기

희생자들의 명복을 빕니다



[각주 출처]

1) 박민규, 「눈먼 자들의 국가」, 2014. (『눈먼 자들의 국가』(2014) 수록)

2) 진은영, 「우리의 연민은 정오의 그림자처럼 짧고 우리의 수치심은 자정의 그림자처럼 길다」, 2014.

(『눈먼 자들의 국가』(2014) 수록)

3) 황정은, 『디디의 우산』, 창비, 2019, 292쪽.

4) 황정은, 『디디의 우산』, 창비, 2019, 292쪽.

5) 김환태, 문종태 감독, <바람의 세월>, 다큐멘터리, 대한민국, 104분, 2024.

6) 황정은, 『디디의 우산』, 창비, 2019, 3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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