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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해 Jul 17. 2023

꺼지지 않는 불씨

우리는 꽃이 아니라 불꽃이다

조용하고, 자리에 머물러 있고, 관상에 아름답고, 금방 시드는 꽃.

자기주장이 강하지 않고, 집에서 돌봄을 하는, 외모를 치장하는, 동시에 나이를 먹으면 ‘꺾이는’, 그런 ‘꽃’, 여성.


그러나 여성들(그리고 페미니스트들)은 이러한 꽃으로서의 여성상에 불씨를 떨어뜨려 타오르는 불꽃을 만든다. 꽃은 불꽃이 되어 스스로를 태우고 주변의 다른 불꽃과 만나 더 커진다. 그렇게 커진 불꽃은 환하고 뜨겁게 타올라 차별과 혐오를 소각했고, 소각하는 중이며, 결국에는 그 잔재까지 소각할 것이다.


-

역사에서 지워진 이름들을 생각한다.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지만 없었던 존재들. 할 말이 있었지만 막힌 입들. 명명되지 못한 이름들.


그러나 동시에 생각한다.

기록되지 못했지만 분명 실존했던 몸들. 입이 지워졌지만 말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던 목소리들. 좌절했을지라도 포기하지 않았던 의지들.


빵으로 상징되는 생명권, 장미로 상징되는 참정권. 그리고 법으로 명시되지 않았더라도 지금의 삶을 지탱하는 모든 것. 수많은 여성들의 노고 위에 나는 서 있다. 내가 발붙이고 있는, 나를 지탱하는 바닥이 그들의 비명과 피와 눈물로 이루어져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아니, 잊을 수 없다. 비명이 귓가를 선명히 가른다. 잊어서는 안 되기에 조금 더 귀를 기울인다. 집중해본다. 그들의 비명만은 아니다. 비명과 외침 사이 희미하게 들려오는 절박한 애원들. 그것은 나와 현재를 공유하는 여성의 것이다. 내 옆의 친구, 언니, 동생, 그리고 나의 신음이다.


우리는 켜켜이 쌓인 육신들 위에 아슬하게 서서 다음 여성을 위한 발판이 되기 위해 버틴다. 적어도 내 발밑에 쌓여 있는 몸과 목소리와 발판들을 욕되게 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이 땅마저도 잃고 추락할 수는 없다는 사명감으로. 더 이상 우리의 목소리를 지워낼 수 없도록 악을 쓰며 소리치고, 소리없이 신음하고, 또 버틴다.


언제쯤이면 삶은 버티는 것이 아닐 수 있을까. 그저 일상에서도 타인에 의해 침범당하고, 죽임당하고, 그렇기에 늘 신경을 곤두세우는 삶. 우리에게는 일상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일상이지 않은 형태의 삶. 누군가에게는 일상이지만 우리의 일상이 되지는 못한 삶. 누군가에게는 보이지 않지만 우리에게는 보이는 어떤 불의. 버티는 것 말고는 답이 보이지 않는 현실에 아득함을 껴안고 가기가 버겁다.


짓누르는 무게에 다리가 꺾여 주저앉는다. 그때 희미하던 웅얼거림이 들린다. 내 아우성에 들리지 않던 목소리들이 다가온다. 그들이 오는 것인지 내가 가는 것인지, 그들이 정확히 어디에 있고 내가 어디에 있는지, 누구인지, 몇 명인지, 어떤 것도 알 수 없다. 단지 나는 여기에 있고, 그들은 어딘가에 있으며, 우리는 대화하고 있다는 것만 확실하다.


_

지금 여기에는, 내게 말을 건네는 다정한 목소리와 기꺼이 나눠지는 사랑이 있다. 비록 그것이 들리지 않을 때도 있지만 분명히 존재한다. 그것은 시간과 공간을 비롯한 모든 제약을 초월하고 다가온다. 수백 년을 거슬러 과거로부터 전해지는 활자부터 방금 전송된 SNS 메시지까지. 특히,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자신의 것을 나눠주는 사람들이 있다.


원래 언니는 그러는 거야, 로 당연하게 받은 것이 많았고

이것은 나보다는 당신에게 가는 게 맞는 것 같아요, 로 소중한 물건을 받았고

진심으로 당신이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로 과분한 위안을 받았고

당신의 10년 뒤 모습이 궁금해요, 로 살아낼 힘을 얻었다.


처음에 미안하고 어색해서 어쩔 줄 모르던 나에게 해줬던 말- 나도 그런 다정함을 받았고, 받았기 때문에 나눌 수밖에 없었어요. 만약 내가 이것을 받아도 되나 싶은 생각이 든다면 나중에 다른 사람에게 이 다정함을 나눠줘요. 이왕이면 여성이면 더 좋고요. 제가 다른 언니들에게 도움을 받았던 것처럼요.-은 오래 내 안에 살아있다. 그 모든 마음들에는 대가가 없었다. 그저 어두워 막막한 세상에서 서로의 작은 불빛이 되어주고 싶다는 소망만이 반짝였다.


나는 내 이전의 여성들, 그리고 내 주변의 여성들에게 너무나도 많은 것을 빚졌다. 연대라는 말로는 어딘가 부족하고, 사랑이라는 말로는 어딘가 간지러워 쉽사리 이름을 붙일 수 없다. 굳이 묘사하자면 '함께 살아간다는 감각'일테다. 이곳에는 함께 고통받고, 분노하고, 슬퍼하고, 기뻐하고, 연결되는 여성들이 있다. 언제든 손을 내밀어줄 여성들이 있다. 조금만 내가 손을 뻗어본다면 우리는 그곳에 있다.


3월 8일. 세상이 잃은 여성들의 얼굴이 떠오르는 날이다. 그들의 몸과 나의 몸이 조심스레 포개지는 살결이 아리다. 그들이 떠난 자리에 죄스러운 환상통이 가시질 않는다. 그리고 여전히 내 곁에서 세상과 분투하며 살아내고 있는 여성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들이 세상에 굳건히 발 붙이고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든든하다. 나의 존재도 그들에게 힘이 될 수 있기를. 그 소망이 주제 넘은 사명감이 되어 나를 지탱한다. 우리는 더 이상의 여성들을 잃을 수 없다. 어쩌다 죽지 않거나 안간힘을 써 살아내는 것이 아니라 그저 평온하게 살아가는 미래가 모두에게 현실이 되기를. 언니들이 만들어준 지반에서 단단히 뿌리 내어 살면서, 현재 함께 살아가는 친구들과 이따금 서로를 쓰다듬고, 내 존재가 거름이 되어 동생들의 터전을 풍요롭게 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우리는 꽃이 아니라 불꽃이며, 쉬이 꺼지지 않을 것이다.

끈질기고 명랑하게 살아남아 환히 타오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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