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이 현장에서 겪는 어려움 3가지
농업계에 들어와 온실운영팀과 같이 일을 하게 되면서 부터, 나는 이 일을
감과 경험에서 자동화를 이뤄내기 위한 ‘체계화의 여정’으로 대했다.
첫 글에서는,
가장 오래된 산업이면서 가장 기술의 혜택에서 먼 산업, 농업이 왜 생산관리라는 구조적 접근을 필요로 하는지 이야기했다.
그 이후, ‘일’을 정의하고, ‘한계를 분석’하고, ‘기술이 왜 필요한지’를 설명해왔다.
그리고 네 번째 글, “도구, 시스템, 믿음”에서는 우리가 만든 기술(ioFarm, Ation, Hermai, Grotecture)이
재배사의 감과 경험을 ‘기록과 해석’으로 확장해 주는 수트임을 고백했다.
기술은 단순한 편의가 아니라, 올바른 의사결정을 돕는 확장된 인식기관이라는 철학도 함께 담았다.
그렇다면 이제, 이 철학이 실제 온실 운영 현장에서 어떤 벽에 부딪히는지를 말해야 할 차례다.
왜 좋은 기술이 있어도 도입이 어려운가?
왜 필요하다고 생각하면서도, 현장은 따라오지 못하는가?
현장에 기술 도입을 하면서 겪는 어려움으로 정의한다.
‘도움이 되는 것’ 으로써 기술을 강조하지만, 도움의 크기를 수치로 입증하지 못하면 현장에서 그것은 사치가 된다. 예를 들어보자. 병해충을 조기에 발견하고 적시에 방제하는 것, 누구나 중요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얼마나의 피해를 막았는가?”라는 질문에는 쉽게 답하지 못한다. ‘수확량’이라는 농업생산의 결과물은, 단일 사건에만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복잡성과, 원인이 바로 결과로 표현되지 않는 비동시성의 특징을 갖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술은 때로 ‘증명되지 않은 이상(理想)’ 으로 취급되기도 한다. 기술이 만든 ‘잠재적 이득’은 신뢰받기 어렵고, 눈에 보이는 ‘당장의 지출’만이 진실처럼 다가온다.
그렇기에, 최신 로봇기술이 농업에서 가장 많이 시도되는 것이 '수확'이라는 작업인 것도 이해가 된다. 수확은 돈으로 바로 계산된다. ‘1시간에 몇 줄을 수확했는가’는 공감이 빠르고, 로봇으로 인해 절감된 인건비는 곧바로 계산된다. 기술이 실제로 돈으로 계산되는 순간이다. 즉, 현장에서 이해하기 쉽다. 아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모든 사람들이 이해하기 쉽다. 투자자에게도, 사용자에게도, 정책담당자에게도.
하지만 그 이면에는, 보이지 않는 노동의 가치를 측정하지 못하는 시스템의 한계가 있다. 감염 전의 방제, 문제 발생 전의 점검, 직원의 성장을 돕는 반복학습 : 이 모든 ‘예방적 기술’은 결과가 없을수록 성과가 크지만, 그럴수록 설득은 더 어려워진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이 도전과제에 접근해야 할까?
경제성은 숫자의 문제 같지만, 결국 그것을 ‘어떻게 믿게 할 것인가’ 라는 이야기로 귀결된다.
그렇기 때문에,
첫째는, 숫자로 보이지 않는 것을 시각화하는 노력을 해야한다. 예방, 조기 대응, 숙련도 향상— 이 모든 지표를 '성과 예측 곡선'으로 가시화할 수 있다면, 비로소 기술은 생산의 일부로 인식된다.
둘째는, 경험에서(나의 경험이 아닌 역사적인 경험) 비롯된 믿음의 전파를 해야한다. 모든 혁신은 처음엔 비 경제적이다. 증기기관, 컨베이어벨트, 전산회계 시스템… 이들도 처음엔 ‘돈이 되는 기술’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 기술의 힘을 믿은 사람들에 의해 산업의 표준이 되었다.
개발된 하나의 기술이 제 기능을 다 한다고 해도, 그것이 현장에 쓰이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왜 그럴까? 센서는 센서대로, 환경제어나 재배기술은 그것대로 따로 논다. 기술은 넘치는데, 기술이 통하지 않는다. 연결과 통합이 안되었기 때문이다.
새로운 기술의 현장 도입의 어려움은 ‘기술의 난이도’가 아니라 ‘사람의 인식 방식’에서 시작된다. 새로운 기술이 통합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기술 그 자체의 복잡성 때문이 아니라, 사람이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방식 때문이다.
“인간은 경험을 통해 지각을 얻고, 그 지각을 정리하는 고유의 프레임을 갖고 있다. 이 틀이 없으면 새로운 정보는 잡음에 불과하다. 즉 보고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한다.” : 임마뉴엘 칸트
즉, 지식은 축적이 아니라 연결이며, 새로운 개념은 항상 기존의 틀 안에서만 해석된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보자. 센서가 어떤 값을 찍어도, 그 사람이 그 값을 왜 봐야 하는지, 그 값이 무엇과 연결되어 있는지를 알기 전까지, 그건 그냥 숫자다. EC 값이 높다는 건, 양분이 많다는 뜻일까? 아니면 물을 너무 적게 줬다는 뜻일까? 아니면 센서에 문제가 생겼다는 표시일까? 환경 작물 작업 기술… 통합적으로 볼 수 있어야 한다. 진짜 데이터를 잘 쓰는 사람은 그 모든걸 통합적으로 볼 수 있는 사람이다.
그래서, 기술 통합의 핵심은 기술 자체가 아니라 ‘맥락을 해석하는 훈련’이다. 센서 하나를 이해하는 것도, 그 데이터를 해석하는 것도, 그 데이터를 바탕으로 전략을 짜는 것도, 결국 기술이 아니라 인식의 훈련이다.
기술통합은 기술 자체의 문제보다는 “기술이나 개념 그리고 그 중요성을 어떻게 연결 지어서 이해하게 할 것인가” 라는 이야기로 귀결된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1.현장의 정보를 활용하는 순서를 정하고, 2.그 순서대로 해석해서 활용하는 것을 반복하는 구조를 만들었다.
이 구조를 통해 기술을 활용해서 현장의 문제를 해결하다 보면 기술 개개의 중요도를 인지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맥락을 연결하는 훈련까지 가능하다.
다시 말 해, 나는 이 구조를 통해 기술의 의미를 현장에 인식하게 해 주는 계기를 만들어 줬다.
지식은 훈련으로 습득할 수 있지만, 믿음은 스스로 납득되어야만 생긴다. 아무리 논리로 설명해도, 아무리 수치를 보여줘도, 사람은 결국 “경험한 것”만을 진짜로 믿는다.
새로운걸 수용하지 못하는건 게으름보다는 두려움에 가깝다. 기술을 믿는다는 건, 자신의 방식, 자신의 판단, 자신의 오래된 경험이 틀릴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받아들이는 일이다. 그건 지적인 행위가 아니라, 존재론적 충격에 가깝다. 그 두려움 때문에, 기술도입은 강요나 설득이 아니라 ‘경험’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역사적인 기술도입 사건을 굳이 따지지 않더라도, 개인의 경험을 돌이켜 보자. 엑셀이 아무리 좋다고 이론적으로 열시간 떠드는 것보다, 직접 내 가계부를 엑셀로 만들고 함수와 차트를 만들었을 한시간의 경험이 엑셀을 사용하게 된 이유 아닌가?
말이 아니라 경험이 믿음을 만든다. 그리고 믿음은 변화를 시작하게 한다.
즉, 수용성은 기술을 알려주는 방식의 문제가 아니다. “그 기술을 왜 써야 하는지를 어떻게 내면화 할 수 있게 돕는가” 라는 이야기로 귀결된다.
이것은 “2.기술통합”에서 이야기한 구조, 즉, 기술 개개의 중요도를 인지하고 맥락을 연결하는 훈련을 할 수 있게 하는 구조가 경험적 충격을 만나야 해결할 수 있다.
단순히 설명에서 그치는게 아니라
1. 정해진 순서대로의 기술의 활용과 연결을 습관화 한 후,
2. 기술 덕분에 ‘내’가 더 나은 판단을 하게 되는 경험 = 기술이 진짜 ‘내’가 필요한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경험을 할 때 비로소 그 기술을 수용하게 되고, 더 나아가 다른 문제들도 다양한 관점에서 해결방법을 모색하게 된다.
기술의 수요와 연결, 그리고 통합이 시작되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수용의 속도는 사람마다 다르고, 상황이 사람의 수용도를 조절할 수 있다는 것이다.
습관화 시키는 구조는 같게, 하지만 리듬은 달라야 한다. 수용성은 표준화가 아닌 개별화의 영역이다.
그래서 나는 사람마다 상황마다 서로 다른 리듬을 존중하되, 같은 구조의 훈련을 제공하고 있다.
빠르게 배울 수 있는 사람과 환경에는 ‘도전의 자율성’을
천천히 배울 수 있는 사람과 환경에는 ‘루틴과 안정성’을 주려고 노력한다.
그게 지속 가능한 수용의 방법이다.
세 가지 어려움은 절대 분절적인것이 아니다.
기술을 수용하지 않으면 연결은 실패하고,
기술이 연결되지 않으면 가치는 드러나지 않으며,
가치가 드러나지 않으면 수용은 일어나지 않는다.
이 순환과 반복, 그 단절과 연결사이를 오가는 구조 자체가 기술의 현장 적용을 어렵게 만드는 본질이다.
그리고, 이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건 더 많은 기술이나 더 정교한 방법론이 아니다.
사람이 어떻게 느끼고 인식하고 수용하는가에 대한 이해 선행되어야 한다.
그래서 나는 철학과 사상을 공부하고, 역사적 사례를 되짚는데 목말라 있다.
기술은 결국 사람에 대한 이해에서 시작되어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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