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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관 주도의 농업은 현실과 동떨어져 있을까?

by Agri MSG

“데이터 기반 농업.” “농업 빅데이터.”

이미 수년 전부터 정부와 연구기관, 그리고 각종 정책 사업에서 자주 등장했던 단어다.

수많은 보고서와 발표 자료에서는 센서를 설치하고 데이터를 수집하여, 작물별 최적 환경 값을 찾아내면 농업이 한 단계 도약할 것처럼 이야기했었다. 하지만 현장에서 그 성과를 체감하는 농업인은 많지 않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였을까?


최근에는 농업 AI와 로봇이라는 단어로 그 트렌드가 바뀐 것 같아 보인다.

빅데이터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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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데이터 사업으로 얻어낸 결과물

기술자와 연구자들이 내놓은 해답은 대부분 범위값의 형태였다.

파프리카의 적정 EC는? 토마토의 야간 온도는? 오이의 적정 습도는?

값들을 "범위"로 제시를 했다.

이렇게 정리된 수치들은 깔끔하고 보기 좋다. 챗봇에 넣으면 답변도 쉽게 뽑아낼 수 있다.


하지만 실제 재배 과정에서 찾아야 하는 ‘값’은 절대값이 아니다.

“오늘 비가 많이 올 것 같은데 야간 온도를 어떻게 잡아야 하지?”

“지난주 과습으로 뿌리가 약해졌는데 EC를 그대로 유지해야 하나?”

현장의 질문은 언제나 맥락 속에서 발생한다.

과거의 환경 설정과 그 결과로 나타난 작물 상태, 그리고 앞으로의 기상 변화를 함께 고려하지 않으면 답을 내릴 수 없다.

범위값은 참고는 되지만, 전략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진단 없는 처방의 한계

우리나라의 데이터 농업은 “수치가 곧 답”이라는 전제 위에서 출발했다.

하지만 농업은 늘 진단 → 예측 → 전략의 과정을 거쳐야만 올바른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영역이다.

진단 없는 처방은 죽은 데이터다.

쌓인 데이터가 아무리 많아도, 그것을 어떻게 해석하고 왜 지금 이 결정을 내려야 하는지 알려주지 못한다면, 그 데이터는 현장에서 의미를 갖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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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ant Empowerment의 관점

네덜란드에서 나온 Plant Empowerment는 정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대신 균형을 읽는 방법을 가르친다.

에너지 균형: 빛과 온도, 증산과 동화의 조화

물 균형: 뿌리의 흡수와 잎의 증산의 균형

CO₂ 균형: 환기와 광합성 가능량의 균형

여기서 중요한 것은 특정 값이 아니라, 지표가 가리키는 방향을 해석하는 능력이다.

숫자는 고정된 답이 아니라, 대응을 설계하기 위한 출발점이 된다.

plant empowerment.png 출처 : https://www.plantempowerment.academy/en/columns/


한국 농업 정책의 맹점

관 주도의 농업 정책은 “정답을 찾아주겠다”는 방식에 치우쳐 있다.

하지만 농업은 정답이 아니라 맥락을 읽는 힘이 필요하다.

보고서 속 데이터는 늘 “평균화된 범위값”으로 제시된다.

그러나 현장은 언제나 예외 상황으로 가득하다.

기상이변으로 비가 한 달 늦게 오면?

인력 부족으로 유인 작업이 늦어지면?

병해충이 예측보다 빨리 발생하면?

이 변수들 앞에서, 정답처럼 제시된 범위값은 농부에게 아무런 힘을 주지 못한다.


현장이 요구하는 시스템

실제로 필요한 것은 데이터 그 자체가 아니라, 데이터의 맥락화다.

온실에서 우리는 “예측-예찰-대응”이라는 흐름을 체계화하며 이를 실감했다.

데이터는 미래를 예측할 수 있어야 하고, 변화의 징후를 빠르게 감지할 수 있어야 하며, 마지막으로 적절한 대응 전략으로 이어져야 비로소 힘을 가진다.

단순한 값이 아니라, 맥락 속에서의 판단을 돕는 구조가 필요하다.


AI가 농업에 뿌리내리려면

빅데이터가 실패했던 이유는, 수치를 곧바로 정답으로 착각했기 때문이다.

AI도 같은 오류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답을 주는 것보다 질문하는 방식을 설계하는 것이 먼저다.


예를 들어, 농부가 AI에게 묻는다.

“다음 일주일간 야간 평균 온도를 몇 도로 맞춰야 할까?”

이 질문에 AI가 곧바로 수치를 제시한다면, 그것은 또 다른 “범위값의 함정”에 불과하다.

정말 필요한 것은 반대로 묻는 것이다.

어떤 작물을 키우고 있나요?

정식한 지 몇 주가 지났나요?

지난주 환경 설정 값은 무엇이었나요?

현재 작물의 생육 상태 데이터는 어떤가요?


전략을 세우려면, 반드시 진단이 먼저다.

AI는 그 과정에서 필요한 근거(=데이터)를 사용자에 물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지금 우리가 AI에 기대해야 하는 것은 “정확한 답”이 아니라,

진단과 전략을 연결하는 대화 구조를 만드는 일이다.

다시 말해, 다음 단계에서 중요한 것은, Input과 Output 데이터들 사이의 연관성과 상관관계를 맵으로 그려내는 작업이다.


아직 AI가 ‘정확한 수치’를 알려줄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

그리고 그 겸손에서 출발해, 올바른 질문을 설계하고, 맥락을 읽어낼 수 있도록 만드는 것.


그때 비로소 AI는, 현실과 동떨어진 정책용 도구가 아니라

현장에서 농부와 함께 전략을 만들어가는 동반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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