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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알 Jul 01. 2023

너의 모든 것이 아름답다

꽃이라고는 나와 상관이 없을 줄 알았다.

꽃다발도 싫다. 화려함 뒤에 시듦이 싫어서.

꽃다발을 선물 받으면 얼른 누군가에게 건네준다.

그러던 내가.. 시듦을 사랑하기 시작했다.


늙어감이 싫어서 끊임없이 시간을 잡아보려 아이크림도 바르고 열심히 콜라겐도 먹어본다.

모 광고에서 예쁜 연예인이 '나도 먹는데 넌 안 먹니?'라는 말에 얼른 샀다. 헐.. 쟤도 먹어? 그러다 또 열심이 시들.

꽃의 시듦도 애완동물의 시듦도 나의 시듦도 다 싫다. 아직은 거부하면 거절이 된다고 여기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던 나에게, 생각의 전환을 가져온 것이 '식물'이다.

몇 달 전 작은 꽃화분을 받았다. 손바닥만한 화분에 담긴 꽃은 금세 거뭇거뭇 지기 시작했다.

아..이것도 꽃다발 같은 것인가? 시들기 시작하니 그 더운 날 베란다 밖으로 내다 놓고 물도 주지 않았다. 빨리 말라죽으라고. 이렇게 쓰니 참 그 식물에게 나쁜 인간이네.

드디어 6월..바짝 말라서 줄기를 들으니 화분이 톡 떨어졌다. 버리자. 살까? 죽었을까? 웬일로 호기심이 생겼다. 그것이 정말 호기심만이었을까? 알 수 없는 마음에 이끌려 흙을 다시 담고 말라버린 식물에 가지치기를 한 뒤 물을 흠뻑 주었다.

잎이 살아날까? 정말 그럴까?


주말이 지나고 3~4일 후쯤 신기하게도 줄기와 쭈글쭈글 했던 잎이 통통해지기 시작했다.  내가 식물은 잘 모르지만, 살아나고 있다는 느낌은 안다. 내가 죽일 뻔 해놓고, 식물에게 '장해. 정말 잘했어'라고 말하고 있다.

사실 난 죽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두려웠다.

죽일까 봐.. 그래서 멀리했고. 그래서 죽일 뻔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속의 생명이 나에게 말을 걸은 것 같다.

이제는 작은 새싹까지 틔우는 그 아이를 보며, 잘 키우겠노라 다짐하고 매일 잘했다고 잎을 어루만져준다.

시듦은 초라함이 아니라 또 다른 단계로 가는 문은 아닐까?

흙으로 만들어져 또 흙으로 돌아가듯,

끝이 아니라 다시 시작하는 또 다른 단계.

난 꽃을 보며 시듦을 무서워하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그 결심의 의미로,

요즘은 직장에 버리려고 내놓은 식물들을 살리는 일을 하고 있다.  벌써 두 개나 살렸는데 이전 시든 사진을 못 찍어둔 것이 아쉽다. 얼마나 이쁘게 자라고 있는지 그 이전 상태가 가늠이 안될 정도이다.


저 시멘트 바닥을 뚫고 나온 식물처럼.

삶의 의지를 함부로 꺾어버리지 말고

행여나 나의 혀로 그런 일을 하지 않도록 주의하자.

생명 속의 위대함을 믿어보자!

식물이든 사람이든, 그리 대해보자.

나의 시듦도 타인의 시듦도 너그럽게 수용할 수 있는 마음을 갖게 되길 바라보며.


추신:누가 이 꽃 이름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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