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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완 Jan 01. 2024

뗏목단

물 흐르는 대로 살기

어렸을 때부터 경쟁에 익숙했다. 초등학교 때는 영재반, 중학생땐 과학고 대비반, 고등학생이 되었을 땐 의대 특별반. 다음 단계를 그리는 것이 익숙했고, 당연하다 여겼다.


혹자는 대한민국 사교육에 대해 나 대신 안타까워하거나 분해할 수도 있으나, 나는 수험생으로 살아가며 크게 스트레스를 받아본 것 같지 않다. 되려 공부를 하는 동안 학생의 본분을 다하는 것 같아 내심 뿌듯한 적도 많았다.


의대에 오면 그래도 이 삶의 방식에 종지부를 찍고, 숨을 돌릴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합격의 기쁨은, 예정보다 한 시간이나 기다려야 했던, 수능성적표 발표날 3분에 그쳤다.


삼수 그리고 코로나로 얼룩진 예과생활을 보내고, 나는 본과생이 되었다. 9시부터 5시까지 교수님들만 바뀌는 수업. 생전 처음 맞닥뜨리는 암기량. 밤샘은 필수인 시험기간. 내가 수험생활 때 그토록 원하던 삶이 맞는지 의문이 들었다.


한 학기가 끝나고 확인한 학점이나 등수를 보면 안타까움은 배가 되었다. 내 노력이 숫자 몇 개들로 끝이 났다. 내 기대 밖의 숫자들이 나오면, 속으로  닭똥 같은 눈물을 흘렸다.


연 이 치열한 내신 경쟁이 끝나면, 다음에는 뭐가 기다리고 있을까. 습관처럼 다음 단계를 그려봤다.

국가고시? 인턴과 레지던트 시험? 그리고 개원?

아, '미생'의 김대리가 말한 것처럼 삶은 임없이 문을 여는 과정이구나.

'공부하려니 힘들지? 그러다... 결국에는 평범해진단다.' 나이를 지긋이 먹은, 아버지뻘 선배님이 씁쓸히 내뱉으셨다. 학창 시절이 점수 몇 자로 끝나듯이, 어쩌면 내 인생은 명함에 조그맣게 적힐 글자 몇 자들로 정리될지 모른다.

 

평범함. 고작 그게 문 뒤에 있었던 거구나.


'뗏목단'이라는 말을 들었다. 아등바등 사는 대신 물 흐르는 대로 사는 사람들을 칭하는 말이다.


주변 풍경을 둘러볼 줄 아는,

힘이 다하면 놓아버릴 줄 아는,

그런 뗏목단들이 한편으로  속 편해 보이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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