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때까지 내 별명은 선비였다. 수줍음이 많고 쉽게 부끄러워하는 나는, 입을 꼭 다물고 조심성 있게 행동했다.
나는 나 대신 남을 보는 시간이 많았다. 특히 내 말이나 행동이, 남들에게 호감을 사는지가 주된 관심사였다.
거울을 보는 대신 남들의 표정이나 행동을 봤고,
내면의 목소리를 듣는 대신 남들이 쉽게 던진 말들을 주어 담았다.
그래선지 남들에게 쉽게 흔들렸다.
뿌리가 단단하지 않았기에, 외풍에 쉽게 휘둘렸다.
스스로 가지를 뻗을 줄 몰라, 햇볕이 따스히 쬐이는 곳으로만 고개를 내밀었다.
자존감, 내게는 그것보다 타존감이라는 말이 어울렸다.
내 자존감에는 늘 근거가 필요했다.
똑똑한 사람으로 생각하기 위해선, 남들보다 뛰어난 성적을 받아야 했다.
성실하고 근성이 있다고 여기기 위해선. 남들 앞에서 쓰러지는 모습을 보여주면 안 되었다.
증명하고, 또 증명해야 했다.
게다가 나는 내가 이루어낸 것에 늘 인색했다.
내가 계획한 꿈이나 목표는 마라톤 결승선이 아니었다.
그저 몇 km씩 떨어져 있는 식수대의 물과 간식쪼가리에 불과했다.
숨 좀 돌리고, 다시 달려야 했다.
그럴 때마다, 이제 뒤를 돌아보기로 했다.
이번 연말에 내가 해낸 일들, 그리고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을 떠올려봤다.
공부 말고는 다른 활동들을 하지 못했다. 그래서 부끄러움이 없었다.
원하는 만큼의 성적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후회가 들지는 않았다.
친구들의 수가 부쩍 줄었다. 이젠 내 곁엔 소중한 사람들뿐이다.
나는 꽤 괜찮은 삶을 산 것 같았다.
감정은 그네를 타는 것처럼 늘 요동친다.
그네가 가장 높은 곳에 도달하기 위해선
누군가 밀어주는 것도 중요하나,
우선 나도 다리를 쭉 뻗는 법을 배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