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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MTD Jun 06. 2024

홍해인의 심리 알아보기

tvN 드라마 <눈물의 여왕>과 대상관계이론

최근 종영한 '눈물의 여왕'이라는 드라마는 티비엔 역대급 시청률을 기록했다. 좋은 영화나 드라마는 주제는 다양하더라도 언제나 '인간의 내면을 디테일하게 묘사를 잘한다'는 공통점이 있는 같다. 이 드라마에서도 홍해인의 아픔이 사랑을 통해 치유되는 과정을 아주 아름답게 잘 묘사했다고 생각한다.


정신분석을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눈물의 여왕의 서사는 멜라니 클라인으로 대표되는 '대상관계이론'을 아주 잘 보여줄 수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홍해인, 백현우, 해인의 엄마 이 세 인물을 통해 대관계의 주요 내용들을 살펴보려고 한다.


클라인은 영국의 정신분석가로서 아동에 대한 정신분석, 다시 말하면 아동도 심리치료가 가능하다고 본 선두주자였다. 당시 정신분석의 창시자 프로이트의 딸, 안나 프로이트와의 논쟁을 통해서 자신의 이론과 견해를 더욱 공고히 하기도 했다.


대상관계이론의 골자는 이렇다. '아기가 최초의 대상과 맺는 관계경험은 사람이 성장하여 청소년기, 성인이 되어서 맺는 관계에도 영향을 미친다' 여기서 최초의 대상이란 누구일까? 바로 엄마이다. 물론 엄마가 아닌 경우에는 초기 양육자를 말한다. 대상관계이론 역시 초기 경험을 중요하게 본다.


누군가는 '또 유아기 때 경험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그 얘기구나?'라고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초기경험을 중요하게 보는 것과 결정론은 차이가 있다. 오히려 결정된 것 같은(타고난 기질 같은) 성격이 실제 대상과의 경험을 통해 어떻게 변화되고 좀 더 나은 모습으로 성숙할 수 있는지 잘 보여주는 이론이다. 모든 게 결정됐다고 보면 심리상담이라는 분야는 이미 없어졌을 것이다.




아기가 세상에 태어나서 살아가기 위해 사용하는 심리적인 기술이 몇 가지 있다. 중요한 세 가지만 얘기해 보려고 한다. '내사introjection'라는 개념이 있다. 이는 타인과의 경험, 타인의 말, 감정, 행동을 내면화시키는 것을 말한다. 쉽게 말하면 보고, 듣고, 느끼는 경험을 내 안으로 가져오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아기가 위험한 물건(가위나 칼 같은)을 만지려 할 때 뒤에서 약간은 상기된 엄마의 목소리가 들린다. "어 그거 안 돼~ 만지면 안 돼"라는 말을 한 후, 엄마는 물건을 멀리 떨어뜨려 놓는 조치를 취한다. 이런 경험을 한 아이는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저 대상이 '안 돼'라는 말을 하면, 손을 갖다 대는 행위를 하면 안 되는구나"라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게 된다. 이것이 엄마와의 경험('안된다'는 언어, 상기된 감정, 물건을 멀리 놓는 행동)을 내사했다고 볼 수 있다.


어쩌면 이를 두고 '학습'이라는 개념과 혼동할지도 모르겠다. 물론 위 예시는 학습이라는 개념으로도 설명이 되고, 사회화라는 말로도 설명이 될 것이다. 그러나 내사라는 개념은 의식적으로, 이성적으로 무언가 배운다는 것과는 좀 다른 개념이다. 주변에 아기가 있는 분들은 다 알겠지만, 아기란 존재는 가르치는 것만 배우지 않고, '이거는 하지 마'라고 해서 안 하지 않는다. 내사는 무의식적인 과정을 포함하기 때문이다. 경험 자체가 내 몸에 배는 것이라고 이해하는 게 더 정확할 것이다. '아이는 부모의 뒤통수를 보고 배운다'라는 격언이 내사의 모습이라고 볼 수 있다. 이를 통해 해도 되는 것, 하면 안 되는 것 등 상황에 따라 어떤 말이나 행동을 해야 하는지 습득하게 된다.


두 번째로는 동일시라는 개념이 있다. 이 개념은 다양한 상황에서 쓰이는데, 어떤 대상을 닮아간다는 의미로 쓰이기도 하고, 어떤 대상을 나의 일부처럼 생각할 때도 동일시라는 말을 쓴다. 이 대상관계학파의 맥락에서는 후자의 의미에 가깝다. 아기는 엄마라는 대상을 나의 일부처럼, 소유물처럼 경험한다고 한다. 아기는 사실상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엄마와 한 몸이었다. 출산이라는 과정을 통해서 몸은 분리되었지만, 심리적으로는 아직 분리가 일어나지 않을 상태라고 얘기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는 '투사projection'가 있다. 이것은 내사와 반대되는 개념으로서, 내 안에 있는 것을 밖에 있다고 여기는 심리기제이다. 이를 빔프로젝터에 빗대면 이해가 쉽다. 빔프로젝터를 통해 스크린에 영상을 쏜다. 그러면 영상이 스크린에 나오는 것처럼 보인다. 이처럼 투사라는 개념은 나의 것이라고 여기기 싫은 것, 내 안에 있으면 불편한 것을 외부에 있다고 '여기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환상을 많이 포함하고 있는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사실 나는 화가 많이 나지만 지금 내가 화가 난다는 것을 인정하기 싫을 때, 대상에게 '왜 나에게 화를 내냐'라고 하는 경우가 전형적인 투사이다. 유아의 예시를 들어보자. 아기는 불편한 경우가 아주 많다. 그래서 자주 울면서 의사표현을 한다. 배고픈 느낌, 졸린 느낌, 기저귀가 젖어 불편함을 느낄 때 등 아기는 언제나 운다. 그런데 이 불편한 느낌들은 사실 아기 내부에서 발생하는 불편감인데, 아기는 아직 이런 불편함을 있는 그대로 경험할 능력이나, 해결할 능력이 없다. 이때 투사를 해서 '외부의 무언가가 나를 불편하게 하는구나, 나를 괴롭히고 못살게 군다'라고 밖으로 던진다. 그러면 엄마는 그 불편감을 해결해 준다. 결과적으로 문제는 해결되고 그 불편감을 해소하게 된 것이다.  




본론에 들어가기 전에 장황한 개념 설명을 한 이유는 재밌는 드라마 내용을 원활하게 설명하기 위해서였다. 드라마에서는 후반부에 공개되는 장면인데, 해인은 아기가 유산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아기와 관련된 모든 용품, 가구, 인테리어를 싹 다 치워버린다. 배우자인 현우의 동의 없이 독자적으로 한 행동이다. 그러고 나서 왜 이걸 다 뺐냐고 묻는 현우에게 쏘아 부치듯이 말한다.


해인 : 아기가 나 때매 사라졌다고 말하고 싶지?

현우 : 뭔 소리야, 그런 생각한 적 없어. 당신이 슬픈 만큼 나도 슬ㅍ...

해인 : 가식 떨지 마! 너도 말하고 싶잖아. 다 나 때문이라고!

현우 : ...관두자. 내가 너랑 무슨 말을 하겠냐.


참 마음 아픈 대화이다. 많은 시청자들이 이 장면을 보고 안타까움을 느꼈을 것이다. 저 말을 할 수밖에 없는 해인이의 아픔을 우리는 알기 때문이다. 해인이 저렇게 반응할 수밖에 없는 것이 설명되기 위해서는 먼저 과거경험을 이해해야 한다.


해인에게 있어서 '죽음'이라는 이슈는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의 죄책감을 불러일으키는 이슈이다. 어릴 때 나를 구하려다가 오빠가 죽었기 때문이다. 근데 그보다 더 치명적인 것은 그 사건으로 인해 계속해서 거절하고 받아주지 않는 엄마와의 경험이다. 청소년기와 성인이 된 이후에도 여전히 오빠의 죽음을 '홍해인을 구하려다가'라고 여긴다. 해인에게 있어서 죽음은 '죄책감'과 '대상의 거절 경험'과 연결되어 있는 이슈이다.


어린 해인은 엄마에게 다가가보려 노력해도 밀어내고 거절하는 경험을 지속적으로 했고 이를 '내사'하게 된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나의 일부와 같았던 그 대상이 더 이상 나를 받아주지 않고, 거절하는 것은 인간의 내면에 생각보다 큰 영향을 미친다. 초기 대상과의 경험이 축적되면 그것이 내 안에 자리를 잡는 것이다. 그 자리 잡은 것을 '내적 대상'이라고 한다.  


내적대상은 내 마음 안에 '대상은 이러이러한 존재야'라는 대상표상이다. 쉽게 말하면 대상에 대한 이미지가 형성되는 것을 말한다. 좋은 경험을 내사하는 아기는 좋은 내적대상이 형성될 것이고, 나쁜 경험을 내사한 아이는 나쁜 내적대상이 형성다. 해인 같은 경우는 오빠의 죽음 이후 엄마와의 경험을 통해 '대상은 나를 거절하는 존재야'라는 나쁜 내적대상이 형성되었을 것이라고 예상해 볼 수 있다. 이 내적대상이라는 개념이 중요한 이유는 단순히 엄마와의 관계가 문제가 아니라, 다른 모든 사람과 관계할 때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청소년기 해인이 전학을 가는 장면에서 한 학생이 이런 말을 한다. "홍해인 쟤는 끝까지 싸가지 없다"  이 대사를 통해 해인은 친구관계가 원활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해인의 내면에는 나쁜(거절하는) 내적대상이 형성되어 있기 때문에, 친구와 대화를 해보거나 제대로 경험해 보기도 전에 '대상은 나를 거절했어, 나를 싫어해'라고 이미 판단했을 것이다. 이런 사람은 관계에서 어떤 태도가 나올까? 일단 방어적인 성향이 될 것이다. 왜냐면 이미 대상은 나를 공격하고 있는 것이 해인의 심리적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 모습이 '싸가지'없다는 소리를 듣는 까칠한 형태로 나타날 수도 있고, 모든 사람과의 관계를 끊어 소위 '소심한' 형태의 모습이 될 수도 있다. 그것이 거절하는 대상들 속에서 나를 지키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다시 해인과 현우의 대화로 돌아가보자. 자신의 아기가 유산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해인이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내가 또 누군가를 죽였어'라는 생각과 엄청난 죄책감이 해인을 사로잡았을 것이다. 이 감당하기 어려운 죄책감과 끔찍한 생각을 처리하는 방법은 앞서 말했듯이, 바로 투사하는 것이다. 아마 다음과 같은 무의식적인 사고 있었을 것이다.


'나 때문에 아기가 죽었어, 내가 또 누군가를 죽게 했어, 오빠가 나를 구하다가 죽었을 때부터 엄마는 나를 항상 거절했지, 이 사건을 통해서도 난 또 거절당하고 버림받을 거야, 나는 왜 이럴까, 나 같은 건 차라리 죽는 게 나을지도 몰라'


해인의 자아는 이 생각을 억압해야만 한다. 이 생각을 의식했다가는 정말 자기 삶을 포기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를 밖으로 내보내기(투사)를 선택한다.


이를 겪은 현우는 황당함과 분노를 느끼며 대화를 중단해 버린다. 결과적으로 해인의 마음속에 있던 '나쁜 대상'이 실제 대상을 나쁘게 만들어 버린 것이다. 이것은 투사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투사적 동일시'라는 개념으로 이어지는데, 이에 대해서는 다음 글에서 자세히 다뤄보려고 한다. 중요한 것은 해인이의 초기 경험이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이다.




이 드라마의 백미는 끝없이 밀어내는 해인과 꿋꿋하게 버텨주는 현우의 모습이다. 다양한 사건과 상황들 속에서 해인은 현우를 사랑하기도 하고, 증오하기도 한다. 다시 말하면 해인의 마음속에서 현우는 '좋은' 사람일 때도 있고 '나쁜'사람 일 때도 있다. 이를 왔다 갔다 하지만 현우는 언제나 그 자리를 지키며 해인에게 사랑을 준다. 이런 해인의 마음 상태를 클라인은 '편집분열적 자리'라고 했다.


용두리에서의 일들, 독일에서의 사건 등 현우와의 경험을 통해 해인은 신뢰할 만하고, 따뜻하고 좋은 경험들을 많이 내사하게 된다. 자신의 내적대상과는 다른 경험을 하게 된 것이다. 원래는 이쯤 하면 떠나야 하는데 떠나지 않고, 버려질 것 같은데 품어주고, 밀어내는데 사랑을 주는 대상 경험을 한다. 이를 통해 해인의 내적 대상은 조금씩 변화의 여지가 생긴다. 대상으로부터 박해받는 느낌이 줄어들고, 내 안에 부정적인 것들을 다룰 수 있는 능력이 조금씩 생겼다고 해석해 볼 수 있다. 이런 심리적 변화를 볼 수 있는 대목은 바로 병원에서 해인과 엄마의 대화하는 장면이다.


해인: 나 같은 딸, 나도 힘들었을 거야. 그러니까 다 엄마 잘못은 아니야.

엄마: 해인아, 엄마가 미안해. 엄마가 진짜 잘못했어.

(서로 포옹하며 운다)


여기서 해인의 말이 의미하는 바는 매우 크다. 이는 언제나 나를 거절하고, 공격하고 못살게 굴던 그 대상을 위하는 말이고, 그 대상을 걱정하는 말이다. 초점이 나에게서 대상에 대한 관심으로 넘어간 놀라운 전환이다. 물론 작중 불치병이라는 극적인 상황이 있긴 하지만, 해인이 이 말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내적대상의 변화로 인해 '나는 공격받고 있다'는 느낌이 약해졌기 때문이다. 비로소 엄마를 객관적인 시선으로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이후 엄마는 해인의 식단을 짜주기도 하며 해인에게 따뜻한 대상이 된다. 원가족과의 회복은 해인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그렇기 때문에 이후 현우와도 좀 더 안정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게 된다. 드라마에서는 그 사이 많은 사건들(수술하기까지의 여정, 수술 후 기억을 다시 되찾아가는 과정)이 있지만, 조금 건너뛰어서 드라마의 마지막으로 가보자. 둘은 서로 느끼는 바를 솔직하게 말할 수 있게 된다.


해인: 우리가 그렇게 된건 아주 큰 이유는 아니었을 거야. 마음과 다른 말들을 내뱉고 괜한 자존심 세우다가 멍청한 오해들도 만들었겠지. 용기 내서 노크하는 것보단, 닫고 혼자 방에 들어가서 당신을 미워하는 게 가장 쉬웠을 거야. 근데 이제 안 그래 볼 거야.

현우: 나도 그랬어, 매일 사소한 일상 속에서 싸우고 실망하는 건 좀 두려웠어. 근데 하나 확실한 같이 있을 수 있어. 망가지면 고치고, 구멍 나면 메워가면서 너덜거리고 완벽하지 않아도 그냥 그렇게.


유산 이후의 대화와 매우 대조적이다. 서로의 과거를 통찰하고 자신의 어려움을 말로 표현했다는 것은 매우 놀라운 성장이라고 볼 수 있다. 해인은 자신의 솔직한 감정과 부정적인 감정을 다루고 있다. 현우 또한 두려움을 언어화하고 있다. 현우의 마지막 말은 정말 이론에 부합하는 대사이다. 완벽함만을 추구하거나, 부정적인 것을 인정하지 못하는 상태가 아니라, 나의 못난 부분, 대상의 아픔을 품고 함께할 수 있는 상태. 클라인은 이를 '우울적 자리'라고 했다.


정리를 해보면 해인은 아기에 트라우마적인 사건을 겪었고 나쁜 경험들을 내사했다. 그 경험들이 내재화(내사+동일시)되어 나쁜 내적대상이 형성되었다. 이는 모든 인간관계에 영향을 미쳤고, 원활한 관계를 맺을 수 없는 독선적이고 자기애적인 성격이 되었다. 이는 타고난 성격이라기보다는 생존을 위해 만들어진 성격이다. 이는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인생 전반에 걸쳐서 해인을 괴롭게  '오빠는 때문에 죽었어'라는 마음속 언어와 '유산'이라는 사건이 겹치면서 나쁜 내적대상이 활성화되었고 관계가 어그러졌다. 그러나 현우는 해인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사랑했다. 결과 해인은 좋은 내적대상을 내사할 있게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스스로 부정적인 것들을 감당할 만한 능력이 생겼고, 비로소 대상과 편안하고, 안정적인 관계를 맺을 있게 되었다.




글이 길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못다 한 이야기들이 많다. 다음 글을 통해서는 다루지 못한 백홍쀼의 모습들과 클라인 이론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편집분열적 자리, 우울적 자리, 투사적 동일시를 다뤄보려고 한다. 이 글에서 설명되지 못한 '좋음'과 '나쁨'에 대해서얘기해 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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