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회복되며 발병 이전의 상태로 돌아감에 따라 삶의 모습도 이전의 상태로 빠르게 되돌아가는 것 같다. 한두 달 전만 해도 '이제 글 쓰는 거 정도는 할 수 있겠다. 기록들을 남겨봐야지' 하며 블로그를 준비했었는데, 얼마 전부터 운전이 가능해지고 외부 활동이 더욱 활발하게 가능하게 되면서 여러 가지가 상황이 바뀌었다. 그리고 그것이 더 탄력을 받아 다시 예전처럼 모든 것을 하고 싶어지는 마음에 사람들과의 만남도 잦아지고 외출이 더 빈번해졌다. 일어나서 운동 다녀오고 집에 와서 씻고 책을 보고 하는 단순한 일상에서 벗어나는 것이 가능해지자마자 그것을 안 한 것이다. 어떻게 보면 당연할 것이다. 거의 6개월 동안, 반년 가까운 시간 동안 눌려있던 스프링이 팅~하고 날아가 버리는 것 같다. 코로나가 끝나가면서 '보복 소비'라는 말도 나왔다. 그동안 참아왔던 것들 다 누리고 즐기겠다는 보복심리에서 소비라는 것이다. 나도 비슷한 맥락이지 않을까 싶다.
블로그 첫 글에서 마음먹었던 것과는 다르게 글을 쓰다 보니 어떤 압박감이 있었던 것 같다. 자유롭게 써보고 싶었는데 어느 순간 형식이 생기고, 순서나 정확성에 집착했던 것 같다. 본래의 목적은 그때 나의 생각 나의 감정을 기록하는 것이었는데도 말이다. 몸이 회복되어 외부 활동이 많이 진 것도 있지만, 어떤 압박감 때문에도 영향이 있던 것 같다. 이제 라도 다시 글을 써보기 시작하는 것은 부담감이 없는 곳이기 때문이다. 스프링은 몇 주간 튕겨져 나갈 만큼 나간 것 같다. 이제 다시 지난 시간을 돌아보면서 기록하고 싶어졌다. 머릿속으로는 계속 글감들을 생각하긴 했다. 처음 운전을 다시 시작한 날의 감격, 반년 전 병문안 왔던 친구들을 만나 만세 하며 회복을 자랑한 순간들, 회복되어 감에 따라 마비되기 직전에 했던 내 삶의 고민들이 다시 찾아온 것들.. 등 여러 가지가 있다. 그런데 이런 것들에 대한 계획은 무의미한 것 같다. 그냥 내가 노트북 앞에 앉아있을 때 생각나는 것들을 자유롭게 써 내려가는 게 더 좋다. 그리고 그게 더 나에게 의미 있는 글들이 될 것 같다.
요즘은 팔이 다 나아가니 다시금 취업 준비를 하고 있다. 길랑 바레와 함께 모든 일들을 중단되었었고 마찬가지로 수입도 없는 상태이다. 참 아이러니했던 것은 마비가 시작된 전날 내 분야에서 취업하기 괜찮은 자격증에 합격한 것이다. 그날 시험 결과를 확인하며 '이제 제대로 취업할 수 있겠다'라는 생각을 하며 기뻐했었다. 그런데 바로 다음날 멈추다니 아이러니하다.
글쓰기를 쉬는 동안 이런 생각도 들었다. 내가 이 길랑바레 증후군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아닐까. 나는 학부는 심리학을 공부했고, 석사에서도 상담을 공부하고, 현재는 박사과정에서 정신분석을 공부하고 있다. 오히려 나의 이러한 심리학적 지식들이 이 '신체마비'에 대한 의미 부여로 너무 과도하게 하지는 않을까라는 생각이다. 특히나 정신분석에서 신체마비가 의미하는 것은 프로이트를 읽어본 사람이라면 잘 알 것이다. 이런 생각은 내가 심리학적 지식을 잘 몰랐다면 이는 생각에서 출발한 것 같다. 그랬다면 그냥 운 없게 백신 부작용에 걸려서 잠시 모든 것을 쉬게 된 것, 약간은 억울한, 그 정도로만 생각하지 않을까 싶었다. 그런데 내가 하던 가라? 가 있어서 그런지 증상에는 심리적 정신적 요인을 있다는 생각에 너무 많은 의미들을 갖다 붙이지 않았나 싶다.
또 한편으로는 이제 의미 부여 작업, 심리적 분석 작업을 할 만큼 했나 보다 싶기도 하다. 물론 그것에 끝이 있겠냐마는 여기서 의미를 부여하다 보면 나에서도 모자라고 3대를 거슬러 올라가도 끝이 없다. 이 내면을 돌아보는 시간들을 통해서 깨달아야 할 것들이나 기억해야 할 것들을 하며 좋은 시간도 당연히 있었다. '내가 그랬구나, 그렇게 지냈었구나' 하며 돌아보기도 했다. 중요한 것은 균형인 것 같다. 어느 한쪽으로 치우쳐져서 '이런 것 때문에 나에게 이런 일이 있구나'만 생각하거나 '에이 운 나쁘게 나만 이런 일이 생겼네'하며 내면으로 전혀 들어가지 못하거나 가 아닌 둘 다 공존할 수 있는 상태, 그것을 버티면서 현실 기능을 잘 수행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지난 마지막 글을 마치고서는 '그다음에는 무슨 일들이 있었지, 어떤 생각을 했지?'에 초점을 맞춰져서 기억 복원에만 초점을 맞춰진 글을 쓰다 보니 글쓰기가 싫었던 것 같다. 그래도 다시 내가 하고자 하는 것에 초점을 맞춰 글을 쓰니 술술 써지고 좋다. 숙제 같은 글이 아니라 쓰고 싶을 때 쓰는 글을 써야겠다. 운동 카테고리도 만들고 올렸었는데, 당분간은 뭘 올릴지 고민해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