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알약중강약 Feb 03. 2023

외국인 손님의 한 마디


평화로운 어느 날의 오후, 동탄에서 최고로 유명하신 소아과 원장님의 오전 진료에 넋이 나간 나와 근무약사 형은, 반쯤 정신을 잃은 채로 번갈아가며 점심 식사를 마쳤다.





근무약사 형은 양치질을 하러 잠깐 화장실에 가셨고 나는 벽에 기대어 사진 속의 개구리처럼 쉬고 있는 와중, 한 외국인 손님께서 "hello..?" 하시며 약국 문을 열고 들어오셨다.






약국의 점심시간은 병원의 점심시간과 동일하도록 시간을 맞추기 때문에, 일반 회사와는 달리 보통 12시30분 ~ 1시30분 이거나 1시~2시 까지인 경우가 많다. 당시 시계를 보아하니 약 1시 40분쯤 되었을까, 오후 실장님이 오시기 까지는 약 20분, 근무약사 형이 오려면 약 3분정도의 시간이 남았으니, 어떻게든 이 상황을 나 혼자만의 힘으로 타파해야 했다.





약대를 가기위해 토익 900을 넘긴 방구석 영어 전문가로써 전혀 당황하지 않고 자신있는 표정으로 외국인 손님을 바라보며 말을 이어갔다. 





"Good afternoon !" 






그러자 외국인 손님께서는 "Good afternoon~" 하시며 나에게 "Nicorette 2" 라고 말씀하셨고, 'Nicorette 2 가 무슨 단어지, 무슨 말이지, 무슨 뜻이지' 하고 머리를 미친듯이 굴리다가, 이내 니코레트 금연껌 2mg 을 뜻한다는 것을 의미하고 씨익 웃으면서 니코레트를 집어들었다.





(이것이 바로 니코레트, 왼쪽의 하얀 글씨가 2mg 짜리이다.)






전혀 영어 못하는 티가 안났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미소를 지으며 니코레트를 건네드리자, 외국인 손님께서는 이비인후과 처방전을 내미시며  "I'll calculate with this" 라고 말씀하셨다. 




'아 윌 칼큘레이트 위드 디스.. 이거랑 같이 계산하신다고..?' 하는 생각을 하며 "Okay Okay~" 를 자신있게 외치고, 화장실에서 돌아오신 근무약사 형한테 처방전을 드렸다.



잠시 후, 근무약사 형이 약을 조제하신 후 나에게 약을 건네주셨다 (조제실과 카운터 사이에 작은 구멍이 뚫려있어 그 구멍으로 처방전을 건네주거나 약을 받거나 합니다)




심호흡을 하고 처방전을 보니, 내가 다 아는 약인데 이걸 도무지 설명 할 수가 없는 것이다. 머릿속으로 땀을 한바가지 흘리다가 겨우 생각해 낸 단어를 외국인 손님께 말씀 드렸다. 




"I..I will.. call my boss"  




그러고는 조제실 안쪽으로 들어가 형을 불러왔다




"형 , 밖에 외국인 손님 계시는데 복약지도를 영어로 못하겠어요. 니코레트도 같이 사신대요" 하며 울상을 짓고있자 근무약사 형은 나를 보고 씨익 웃으며  "내가 할게" 하며 위풍당당하게 투약구로 발걸음을 돌리셨다.




(그의 뒷모습이 이리도 크고 듬직했던가!)






"All of these medicines are medicines to treat a sore throat. You can take the medicine three times a day. The white medicine is an anti-inflammatory analgesic, and the yellow medicine next to it is a medicine that reduces cough phlegm. And this little half pill is an antihistamine, which can make you a little drowsy. If it's okay, you can stop taking the medicine."




해석: "이 약들은 모두 목감기를 치료해주는 약입니다. 약들은 하루 세번 드시면 됩니다. 하얀 약은 소염진통제고 그옆에 노란약은 기침가래콧물을 줄여주는 약 입니다. 그리고 이 조그마한 반알은 항히스타민제 인데 조금 졸릴수도 있습니다. 괜찮으시면 약은 중단하셔도 됩니다"






저 늠름한 뒷모습이란! 카투사 출신인 근무약사 형의 현란한 영어솜씨에 대한민국 공군출신인 나는 속으로 눈물을 줄줄 흘리며 엄지를 치켜들었다. 복약지도가 끝난 형도 나를 보고 씨익 웃으며 엄지척을 해주셨다. 그러자 조용히 듣고계시던 외국인 손님께서는 우리의 모습을 보고 장난기가 발동하셨는지 정확한 발음으로 말씀하셨다.








"하루 세번 먹으면 되는거죠?" 








내가 살면서 외국사람한테 그렇게 또렷한 한국어 발음을 들어본 적이 있던가, 이내 벙찐 모습의 형과 나를 본 외국인 손님께서는 "아 저 한국에서 15년 살았어요. 여기 위에있는 영어학원에서 선생님 하고 있습니다" 하시며 아주 또박또박 정확한 한국말로 말씀하셨다. "친절한 설명 감사해요 앞으로 자주 올게요" 하는 말씀과 미소를 남긴 채 약국을 떠나가신 손님을 뒤로하고, 우리는 허탈감인지 안도감인지 모를 요상한 기분으로 오후 근무를 준비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