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국의 비수기로 꼽히는 여름무렵, 밖은 30도가 넘어가는 날씨였지만 약국 내부는 에어컨 덕에 굉장히 쾌적했다. 처방전도 봄철에 비해서 반 이상으로 줄었고, 여름에는 감기나 비염등 계절성 질환도 없는 편이라 모처럼 평화로운 약국을 즐기고 있었다.
"오늘 한가한데요" 하는 국장님의 말씀이 들렸고, 속으로 '앗 국장님, 그말씀은 굉장히 진부한 클리셰인데..' 하고 생각함과 동시에, "정말 그렇네요. 여름이라 그런가봐요" 라고 답하며 컴퓨터앞에 앉아서 열심히 쉬는 중, 벽쪽에서 쿵 하는 소리가 들렸다.
'무슨 소리지?' 하고 생각했지만, 학원끝난 아이들이 뛰다가 벽에 부딪혔나보다 하면서 계속 앉아서 쉬고있었다. 그렇게 1분쯤 지났을까, 잠시 후 어느 한 아주머니께서 굉장히 놀란 표정으로 약국으로 뛰어들어오셨다.
"지금 밖에 사람이 쓰러져 있어요!"
너무 놀란 나는 허겁지겁 약국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보았다. 30대 초반쯤으로 보이는 여성분이 건물 통로에 그냥 쓰러져 계신것이 아닌가. 속으로 진짜 오만가지 생각이 다들었다.
'CPR(심폐소생술) 해야하나? 아주머니께서 CPR을 알고계실까? 내가 알려드리면 잘 하실수 있을까? 119에 먼저 신고를 해야하나? 왜 여기 누워계시는 거지? 아까 그 쿵소리가 설마 벽에 부딪히신건가?' 하는 수많은 생각을 하며 아주머니와 나는 환자분을 열심히 깨우기 시작했다.
"선생님 선생님 제 말 들리시나요?" "아이고 젊은 아가씨가 왜 여기 쓰러져있어!"
다행히 그 분은 정신을 차리셨고, 아주머니께서 그 분을 부축해서 약국 안으로 함께 들어오셨다.
국장님께 자초지종을 말씀드렸더니, 국장님께서 나오셔서 그 분께 물을 한잔 떠다드렸다. 그 분께서는 물을 조금 드시고 천천히 작은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제가 사실 임산분데, 요 앞에 화장실가다가 너무 어지러워서 정신을 잃었어요. 정말 감사드립니다."
국장님: "괜찮으세요? 아까 벽에 부딪히신 것 같은데 얼른 병원 가보셔야 할 것 같아요. 남편분께 지금 연락드릴 수 있으세요?"
"지금 남편이 회사라 당장은 못 올것 같아요."
국장님: "그럼 저희가 구급차 불러드릴께요. 꼭 병원가셔서 검진 받아보세요."
라고 말씀하셨고, 아주머니께서는 옆에 앉으셔서 그 분을 열심히 달래주셨다.
아주머니:"진짜 얼마나 놀랐겠어 무슨일이야 정말"
"정말 너무 감사드립니다. 아 그런데 제가 여기 앞에 네일샵에서 네일하다가 온거라, 언니한테 말씀 드려야 할 것 같아요."
나: "제가 다녀오겠습니다. 제가 가서 말씀 드릴테니까 여기 앉아서 좀 쉬고계세요."
"정말 감사합니다. 죄송한데 언니한테 오늘꺼 그냥 차감해달라고 말씀 좀 전해주세요. 죄송합니다."
나: "알겠습니다. 걱정말고 쉬고계세요."
(약국 앞 네일샵)
그렇게 약국 앞에 있는 네일샵의 문을 열고 가서 말씀을 전해드렸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저 요앞에 oo약국인데요. 방금 손님께서 화장실가다가 쓰러지셔서 저희 약국에서 잠깐 쉬고계시거든요. 네일 오늘꺼 차감해 달라고 죄송하다고 전해드리라고 하셔서 제가 대신 왔습니다."
네일샵 사장님: "쓰러지셨다고요?!"
네일샵 사장님께서는 그 말을 들으시고, 자리에서 뛰쳐나와 약국으로 가셨다.
"아니 언니 무슨일이야 진짜 어디가 아픈거야? 어지러웠어?"
"네 좀 어지러웠나 봐요. 지금은 괜찮아요. 죄송해요 예약했는데 제대로 못하고.."
"아니야 그런거 신경쓰지마, 오늘꺼 차감 안할테니까 다음에 와서 꼭 받고가요."
"아니아니 진짜 차감해주세요. 오늘은 제가.."
"그런 소리 하지 말고, 다음에 건강해져서 다시와요. 임산부가 아파서 어떻게 해 진짜.."
잠시 후, 119 구급대원들께서 도착하셨고, 산모분은 구급차를 타고 대학병원으로 가셨다.난 실습이 끝나서 산모분을 다시 뵐 수 없었지만 후에 국장님께 전해듣기로는, 약국으로 전화하셔서 너무 감사드린다고, 별 이상없이 괜찮다고 하셨다고 한다. 참으로 아찔한 경험이였다.